라이프

[천지수의 책 읽는 아틀리에] 밥 딜런의 음악과 삶 ‘BOB DYLAN 아무도 나처럼 노래하지 않았다’

intro

천지수는 화가다. 로마국립미술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2003년에는 ‘지오반니 페리코네’ 이탈리아미술대전(La pittura 4 edizione ‘Giovanni Pericone’)에서 대상을 받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아티스트로서 갈증을 느낀다. 그러던 2008년, 그녀는 혈혈단신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리고 탄자니아에서 암석벽화 복원작업에 참여한다. 사자처럼 지낸 그 2년간의 아프리카 생활은 천지수가 예술가로서 자기정체성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천지수에게 아프리카는 ‘맹렬한 생명’ 그 자체였다. ‘천지수의 책 읽는 아틀리에’는 사자의 영혼을 가슴에 새긴 화가 천지수가 ‘책의 밀림’ 속에서 매일매일 미술적 영감을 사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다섯 번째 책은 구자형의 ‘BOB DYLAN 아무도 나처럼 노래하지 않았다’(북바이북)이다.

“산타클로스가 정말 있나요? 가르쳐 주세요.”

1897년, 당시 여덟 살 난 미국 소녀 버지니아는 ‘뉴욕SUN’지에 이렇게 편지를 쓴다. 이 편지를 받은 신문사는 신문의 사설로 답을 해주기로 결정한다. 이 사설은 경험 많고 지혜로운 프란시스 처치 기자가 쓴다.

‘세상에 사랑과 믿음과 착한 마음이 존재하는 것처럼 산타클로스는 분명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들만큼 확실하고 중요한 것은 없다.’

바로 이런 내용을 담은 사설은 이후 이 신문사가 폐간될 때까지 50년간 매년 크리스마스에 실리게 된다. 이것은 오늘날까지 세계 언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설 중 하나다.

2016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출간된 ‘BOB DYLAN 아무도 나처럼 노래하지 않았다’는 음악평론가이자 싱어송라이터인 구자형씨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밥 딜런의 삶과, 철학, 그리고 음악의 발자취를 따라간 책이다.

작가가 평생에 걸쳐 사랑한 뮤지션을 묘사하는 내용이기 때문인지 확실히 이해의 수준이 남다르다. 구자형은 밥 딜런을 ‘신의 눈동자를 갖고 노래한 사람’으로 표현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밥 딜런의 시선을 사유했다. 나는 평생토록 그의 노래를 들으며 그의 입만을 보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노래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구자형의 문장은 나의 모든 감각을 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밥 딜런의 세계를 보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았다.

신의 시선? 그래, 그것은 가장 적확한 표현이었다. 숭배를 위한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었다. ‘바람만이 알고 있는 대답’을 듣고 세상에 전해줄 수 있었다면, 밥 딜런은 이미 보았던 것이다. 구자형은 그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그에게는 언젠가 사라질 것들의 품에 안겨 지내기보다는, 보이는 바람 부는 길 위에서의 보이지 않는 바람 부는 길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생각했다. ‘화가인 나는 대체 어떤 눈동자를 가져야만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천지수 작가의 ‘Knockin‘ On Heaven’s Door’(61x72.5cm, Oil on Canvas).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나는 눈을 감고 마음으로 밥 딜런의 시선이 머물렀던 곳들을 따라갔다. 끔찍한 세상의 모든 고통과 슬픔들이 보였다. 보고 싶지 않았다. 볼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밥 딜런의 목소리는 마치 크고 서늘한 손처럼 내 볼을 감싸고는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비극은 뭐냐고.

‘끝없는 전쟁에 끝없이 희생되는 아이들!’ 그의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붓을 들었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고, 그래서 전쟁이 없어지지 않는 거라면, 차라리 사람을 죽이는 전쟁무기들이 모두 마법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난감 탱크와 총을 가지고 놀고 있는 내 아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내 아이의 눈에는 저 총구로부터 팝콘과 아이스크림이 튀어나오고 있을지 몰라.’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다. ‘맛있겠다!’ 거대한 핵폭발 사진을 보면서 꼭 거대한 아이스크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의 이미지를 붙잡았다.

핵이 폭발하는 순간 그 끔찍한 불기둥과 연기가 초코시럽이 올라간 거대한 아이스크림으로 변한다. 그 폭발로 수많은 파편이 젤리와 사탕으로 변해 사방팔방으로 떨어진다. 수풀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 공격을 시작한 탱크의 포신에서는 달콤한 팝콘이 발사된다. 중무장을 한 군인의 총구에서는 달콤한 시럽까지 뿌려진 폭신한 마시멜로가 튀어나온다.

길의 한가운데에서 평화롭게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그림자. 밥 딜런의 노래가 울려퍼지자 모든 지옥 같은 전장이 순식간에 ‘아이들의 천국’으로 변한다. 이 그림의 제목은 ‘Knockin‘ On Heaven’s Door‘로 정했다. 이 노래에 나오는 천국(Heaven)은 죽음을 뜻하지만, 내 그림에서는 아이들이 꿈꾸는 천국이다. 아이들이 천국의 문을 두드리면 세상의 모든 달콤한 것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산타클로스가 정말 있나요?’ 119년 전 한 소녀의 이 물음에 대해 대답해야 할 의무는 프란시스 처치와 밥 딜런을 거쳐 이제 내 앞에 놓여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없는 것이 아니야. 믿음과 희망, 용기, 그리고 산타클로스처럼 사람에게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것들은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우리는 그것들을 가치라고 부르지!’ 어린 아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 준다.

‘가치가 바로 아이스크림이란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