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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시즌 준비하는 이승엽 “지금도 홈런이라면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삼성라이온즈 이승엽이 경북 대구 라이온즈 파크에서 본사와 인터뷰 하고 있다. 대구|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국민타자’로 불리며 한국 야구사에 가장 화려한 역사와 함께 했던 이승엽(41·삼성). 그가 마지막 시즌을 앞두고 있다.

이승엽은 2017시즌 뒤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정유년 새해,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만난 이승엽의 밝은 표정에서는 유종의 미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었다. 이승엽은 “수치상으로 기록은 떨어졌지만 지금도 홈런만큼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며 식지 않는 열정을 드러냈다.

야구선수에겐 환갑이나 다름없는 불혹을 넘겼지만 이승엽의 배트는 세월을 거슬러 빠르게 돌고 있다. 지난 시즌에도 타율 3할3리, 27홈런 118타점 91득점의 정상급 타격 솜씨를 자랑했다. 같은 시대 활약한 이병규(전 LG)와 홍성흔(전 두산)은 유니폼을 벗었다. 그러나 이승엽의 실력과 팀내 입지는 여전히 경쟁력을 갖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로 맞는 23년째 시즌. 젊은 선수들 못지 않게 땀도 흘린다. 지난 연말 하와이 가족여행 때도 배트를 챙겨 가 휘둘렀다. 새해가 밝아오자마자 라이온즈파크 훈련장을 가장 먼저 찾아 젊은 선수들과 훈련을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은퇴 시즌의 동기부여가 크다. 농구광인 이승엽은 미국프로농구(NBA) 스타인 마이클 조던을 떠올렸다.

“개인적으로 조던을 좋아한다. 조던은 마지막 은퇴할 때도 잘했다. 지금도 조던이라고 하면 30득점을 올릴 것 같은 이미지 아닌가. 마지막까지 잘해서 팬들의 기억에 영원한 홈런타자의 마음을 갖도록 하고 싶다.”

그는 이어 “지난해까지는 좋았지만 올해는 또 어떨지 장담할 수 없다. 시즌을 잘 준비해서 많은 경기에 출전하고, 많은 선수들과 팬들과 교감을 갖고 싶다”고 덧붙였다.

삼성라이온즈 이승엽이 경북 대구 라이온즈 파크에서 본사와 인터뷰 하고 있다. 대구|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그러나 어깨는 무겁다. 팀이 위기 상황에 서 있는 가운데 맞는 은퇴 무대다. 삼성은 지난 시즌 구단 역사상 최악의 9위라는 성적으로 마쳤다. 2010년대 들어 4번의 통합 우승과 5번의 한국리즈 진출이라는 화려했던 역사가 단 한번의 급추락으로 가려졌다. 주축 선수들이 빠져나간 내년 시즌 전망은 더 어둡다.

이승엽은 “9위라는 성적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인 목표보다 지난해 완벽하게 무너졌던 팀을 다시 한번 우승에 올려 놓는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은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새 구장에서 은퇴를 앞두고 두 시즌 모두 ‘가을야구’를 못한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 비관적인 얘기가 많으니 더 보란듯이 뒤집어 보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스스로를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려놨다. 이승엽은 40대의 나이에 중심타자로 다시 한번 30홈런을 조준하고 있다. 줄어든 배트 스피드를 만회하기 위해 하체 중심이동을 키우면서 팔스윙은 조금 짧게 가져가려는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몸 상태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나타냈다. “나이가 들면 몸이 아파 은퇴하는 선수가 적지 않은데 나는 아픈 데가 없다. 오랜만에 공을 치면 배트도 굉장히 무겁게 느껴지고 안돌아가지만 지금도 괜찮다. 컨디션이 좋다. 몸을 착실하게 만들면서 부상만 조심하면 될 것 같다.”

오직 야구만 생각하면서 달려온 22년이다. 철저한 자기 관리 덕분이다. 지금도 이승엽의 일상은 야구 외에 집, 가족 뿐이다. 취미는 골프 정도다. 이승엽은 “밤 늦게 돌아다닐 일이 없으니 새벽 4시면 일어난다. 그러니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극심한 슬럼프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방출된 뒤 2011시즌 오릭스 버펄로스로 이적했을 때만 해도 2년 안에 은퇴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후 다시 친정팀으로 돌아와 5시즌을 더 뛰고 있다.

이승엽은 “꿈꾸는 대로 이뤄졌다. 역대 한국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가장 행복한 선수였다고 자부한다”며 “야구하면서 진짜로 행복했다. 일본에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많은 공부가 됐던 시기다.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아직 은퇴 이후의 삶은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다만 야구로 받았던 사랑을 베풀 구상은 해놨다. 그는 “제 인생에서 야구를 떠나 말할 수 있는게 10%도 안된다. 야구로 받은 것을 베풀고 싶다. 3억원을 떼 놨는데 언젠가는 내 이름이 걸린 재단을 만들고 싶다. 그게 은퇴 뒤에 가장 먼저 할 일”이라고 밝혔다.

이승엽은 인터뷰 내내 “아직도 야구가 너무 좋다. 희한하게 더 좋아진다”고 했다. “다시 태어나도 야구를 할 것 같다”고 했지만 은퇴 번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분명히 그었다. 이승엽은 “저도 아쉽지만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 1~2년 뒤로 은퇴를 미뤘을 때 ‘그 때 은퇴하지’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아쉽더라도 올해가 은퇴할 최적기라고 생각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플레이하겠다”며 은퇴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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