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을 알면 2017년 영화가 보인다.’
지난 4일 개봉한 <사랑하기 때문에>와 <여교사>를 시작으로 한국영화도 정유년 새해 개봉 릴레이를 시작한다. 올해 기대작들은 대부분 지난해의 흥행 기조를 이어 선 굵은 남성 영화를 지향하며 남성들의 호흡이 중요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또한 오랜시간을 묵힌 사극들도 관객들의 선택을 기다릴 태세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흥행감독들의 복귀는 충무로 활력을 되돌려 줄 카드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관객들의 영화 선택 수준이 과거 보다 크게 높아져 흥행 배우들 못지않게 감독의 역량과 지난 작품들을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실제로 지난해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나 <아가씨>의 박찬욱 감독은 비교적 대중성을 갖기 어려운 코드의 작품들을 했지만 감독의 역량 자체로 평단과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얻었다. 올해 이 기세를 이을 감독들은 즐비하다.
■ 흥행작의 바로 뒤를 이어라
감독의 입장에서 평생 하나의 대표작을 만드는 일 자체도 쉽지 않지만 이를 또 연이은 흥행 연타로 이어가기는 더 힘들다. 비록 <해운대>와 <국제시장>으로 ‘쌍천만 감독 시대’를 연 윤제균 감독이나 두 번째 ‘쌍천만’을 기록한 최동훈 감독(<도둑들> <암살>) 등의 사례를 그대로 따르긴 힘들겠지만 흥행 감독들의 귀환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천만 관객 영화를 달성했던 감독들에게 눈길이 모인다.
2015년 <베테랑>으로 천만 고지를 넘긴 류승완 감독은 이번에는 <군함도>로 기세를 잇는다. 일제 강점기 실제 존재했던 일본 군함도를 배경으로 강제 징용된 후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400여 명의 조선인의 이야기를 다뤘다. <베테랑>에 이어 다시 황정민이 타이틀 롤을 맡았고, 소지섭과 송중기, 이정현 등 화려한 캐스팅이 눈길을 끈다. 특히 최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일본과의 갈등이 본격화돼 국민정서가 좋지 않은 부분이 오히려 이 영화에는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새해 ‘쌍천만’에 가장 가까운 감독이 류승완이다.
2013년 <설국열차>로 935만 관객을 동원한 봉준호 감독은 올해 글로벌 프로젝트 <옥자>를 선보인다. 2006년 영화 <괴물>로 괴생명체의 등장과 한국사회의 민낯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봉감독은 <설국열차>에서 쌓은 글로벌 제작 공력을 합쳐 <옥자>를 탄생시켰다. 영화는 정체불명의 거대동물 옥자가 강원도 산골에서 소녀와 함께 살다 갑자기 세상에 알려지면서 겪는 일을 다뤘다.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 폴 다노, 릴리 콜린스 등 할리우드 톱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화제가 됐다.
2013년 영화 <변호인>으로 천만을 넘긴 양우석 감독은 새해 <강철비>를 준비했다. 1970~1980년대로 돌아가 정의의 의미를 분석했던 그는 웹툰 <스틸 레인>을 영화화한 이 작품에서 남북관계 속에서 발생한 사건을 스릴러의 작법으로 녹여낸다. 이미 정우성과 곽도원이 출연을 확정해 기대감을 높였다.
■ 권토중래, 왕년의 히트작 감독이 돌아온다
영화계에 전해 오는 가장 극적인 이야기는 극적인 긴장감을 가진 영화 속 줄거리가 아니라 실패를 거듭하다 또는 시련을 딛고 거장으로 올라서는 감독들의 면면을 확인할 때다. 과거 히트작을 냈지만 그 이후 다소 침체기를 겪다 올해 비장의 작품으로 모래바람을 몰고 돌아오는 감독들도 있다.
<신세계>의 박훈정 감독은 <V.I.P>를 들고 돌아온다. 2013년 황정민, 최민식, 이정재 주연의 <신세계>로 한국식 느와르의 새 지평을 연 박 감독은 팬덤을 구축했지만 최민식과 함께 한국 호랑이 CG(컴퓨터 그래픽) 재현에 도전했던 <대호>가 전국 관객 180만도 못 미치는 성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팬들에게 줄기차게 <신세계> 속편 제작요구를 받아 이를 결국 고사하기도 했던 박 감독은 북한에서 온 인물이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이를 쫓는 대한민국 특별수사팀, 북한 공작원, 미국과 한국의 정부 소속 요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V.I.P>를 구상했다. 장동건과 김명민이 중심을 잡고 박희순, 이종석, 조우진 등 캐스팅도 화려하다. CG가 없는 실사 영화에 다시 도전하는 박 감독의 성적은 팬들에게 더욱 큰 관심사다.
2009년 <국가대표>로 700만을 넘겼다가 2013년 역시 CG 영화 <미스터 고>로 130만을 겨우 넘기며 체면을 구겼던 김용화 감독도 <신과 함께>를 준비했다. 인간의 죽음 이후 저승의 세계에서 사후 49일 동안 인간사에 개입하면 안 되는 저승사자들이 어쩔 수 없이 인간의 일에 얽히며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하정우, 차태현, 주지훈, 김향기, 마동석 등이 출연한다. 이 소재는 지난해만 하더라도 사후세계를 다룬다는 난해함이 우려를 샀지만 비슷한 소재인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tvN 드라마 <도깨비>가 크게 흥행하면서 근심을 덜었다.
2005년 영화 <웰컴 투 동막골>로 크게 이름을 알린 박광현 감독은 12년 만에 명성 회복을 노린다. 다음 달 개봉하는 <조작된 도시>를 연출하는 박 감독은 범죄액션 장르를 골라 장르 특유의 쾌감을 관객들에게 전할 예정이다. 온라인에서는 활발한 활동을 하지만 평범한 백수인 주인공이 우연히 살인자로 조작돼 몰리는 상황에서 그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줄거리다. 한류스타로 올라선 지창욱과 <응답하라 1988>로 이름을 알린 안재홍 그리고 심은경이 함께 한다. 12년 동안 강산은 변했지만 과연 연출자의 감은 그대로일지 관객들의 선택이 임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