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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수의 책 읽는 아틀리에] 무대 위의 형틀 같은 현대를 말하는 ‘편의점 인간’

intro

천지수는 화가다. 로마국립미술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2003년에는 ‘지오반니 페리코네’ 이탈리아미술대전(La pittura 4 edizione ‘Giovanni Pericone’)에서 대상을 받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아티스트로서 갈증을 느낀다. 그러던 2008년, 그녀는 혈혈단신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리고 탄자니아에서 암석벽화 복원작업에 참여한다. 사자처럼 지낸 그 2년간의 아프리카 생활은 천지수가 예술가로서 자기정체성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천지수에게 아프리카는 ‘맹렬한 생명’ 그 자체였다. ‘천지수의 책 읽는 아틀리에’는 사자의 영혼을 가슴에 새긴 화가 천지수가 ‘책의 밀림’ 속에서 매일매일 미술적 영감을 사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여섯 번째 책은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살림)이다.

천지수 작가 ‘연기하는 자아 -편의점 인간’(72.5x61cm, Oil on Canvas).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내 앞에 놓인 캔버스를 아주 기이한 장면이 펼쳐지는 ‘무대’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여러 가지 표정과 여러 가지 포즈. 인간 군상들이 덩어리져 엉겨 있다. 여러 개의 스포트라이트가 그것을 밝게 비춰 드러낸다. 이 인간덩어리는 양가적 의미를 가진다. 하나의 의미는 빈틈없는 매뉴얼에 따르는 보통 인간(인 척하는), 그리고 또 하나는 매뉴얼을 거부하는 내면의 자아!

작가 무라타 사야카는 <편의점 인간>에서 36세의 아르바이트생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그녀는 평범한 듯 기이하고, 기이한 듯 평범하다. 지독한 평범함은 기이함을 자아내고, 그 기이함은 다시 평범함으로 수렴된다. 작가는 이 캐릭터를 통해 순수한 노동을 우롱하는 폭력적인 자본의 권력을 우리 모두가 함께 증오하도록 만든다. 한마디로 <편의점 인간>은 기이한 예술적 에너지를 줄기차게 발산하는 작품이다.

18세 때부터 시작해 무려 18년을 같은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후루쿠라. 그녀는 ‘보통’인간’ 을 ‘연기’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본인이 전혀 분노를 느끼지 않음에도, 다른 직원이 화를 내면 곧 자신도 그 화난 말투를 따라한다. 그러고서는 스스로 ‘능숙한 인간’이 됐다며 안도한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주 약과다. ‘왜 (보통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결혼을 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듣지 않기 위해. 고작 그 질문을 듣지 않기 위해! 주인공은 정말 어이없는 성품의 ;아무 남자’와 ‘아무렇게나’ 동거를 시작한다.

내 캔버스 위에는 이제 커튼 뒤에서 무대를 훔쳐보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보통 인간’을 연기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무대 위에서 분열되고 엉킨, 인간의 덩어리를 보고 있는 ‘우리’일 수도 있다.

편의점에서 ‘점원’이 되려면 제복을 입고 매뉴얼대로 행동하면 되는 것처럼, 후루쿠라는 이 세상에서도 ‘보통 인간’이 되려면 매뉴얼대로만 행동하면 된다고 여긴다. 그렇게만 하면 무리에서 쫓겨나거나 방해자로 취급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믿는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 속에 있는 ‘보통 인간’이라는 가공의 생물을 연기하는 거예요. 저 편의점에서 모두 ‘점원’이라는 가공의 생물을 연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가공의 생물’. 나는 이 단서를 따라가기로 했다. 나는 거기에서 무대를 그리기로 결정했다. 가공의 심해를 어항이라고 부르듯, 가공의 인간이라면 당연히 무대 위에 있어야 했다. 무대는 내가 나를 볼 수 있는 창문이니까 말이다. 작가는 마치 편의점 안에 설치된 CCTV처럼 주인공 후루쿠라의 평범한 일상을 극한 사실주의로 집요하게 묘사한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기이한 내면을 정확히 같은 지점에 중첩시켜 놓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예리함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내면으로 곧장 파고 들어가도록 만들어 놓았다. 정말 기묘하고도 영리하다.

<편의점 인간>의 작가 무라타 사야카는 소설이 아니라 실제로도 18년째 편의점 알바를 계속하고 있다. 이미 지난 2003년 ‘군조신인문학상’까지 받으며 일본에서는 꽤 인정받는 작가였는데도 말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런 작가의 삶과 생각이 궁금했다.

‘고문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예술이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고 책장을 덮자 문득 버나드 쇼의 이 문장이 떠올랐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어쩌면 무대 위의 형틀이 아닐까? 거기에 인간이 덕지덕지 엉겨붙어 있다. ‘보통’과 ‘정상’은 시시때때로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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