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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기획] 지옥같았던 스프링캠프, 그때를 아시나요?

LG 박용택이 2005년초 겨울 구단 행사에서 숯불 위를 걷는 도전으로 새 시즌 투지를 다지고 있다. 경향DB

프로야구 선수들의 겨울나기 풍속도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올 프로야구 스프링캠프는 2월1일 일제히 시작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풍경이다. 프로야구 선수에게 12월과 1월은 연봉을 받을 수 없는 비활동기간이지만 그동안은 휴식을 보장받지 못했다. 강훈련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 스프링캠프는 극기훈련에 가까웠다. 정신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더 추운 곳을 찾아가기도 했다. 선수들이 웃통을 벗고 얼음을 깨고 들어가는 풍경도 자주 연출됐다. 1989년에는 김성근 (현 한화) 감독이 이끈 태평양 선수들이 오대산 훈련에서 맨발로 행군하고, 얼음물 목욕 등 프로그램을 소화해 화제를 모았다. 그 해 태평양이 최하위에서 포스트시즌에 오르자 ‘지옥훈련’이 트렌드가 됐다. 해병대 훈련은 물론, 눈발이 날리는 산을 뛰어올랐고, 절에 들어가 명상하는 팀도 나왔다. 새벽 기상과 함께 구보로 하루를 시작해 저녁까지 강훈련이 이어졌다.

각 구단마다 웨이트트레이닝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90년대에도 오리걸음, 토끼뜀 등 훈련으로 체력을 키우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캠프지 한 낮 날씨에 단거리 셔틀런도 했다. 지금은 부상 우려 때문에 아마추어 선수조차 피하는 훈련 프로그램이다.

이광환 KBO 육성위원장은 “얼음물에 들어가는 것이 한때 유행을 타기도 했다. 이제는 선수들 몸값이 비싸져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웃었다. 이 위원장은 ‘자율야구’ ‘투수 분업’ 등 선진야구 개념으로 리그에 새 바람을 불어넣으면서 한국시리즈 우승(1994년 LG)까지 이끈 지도자다. 그는 “당시에는 ‘자율야구’라 하면 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성적이 주춤하면 훈련 부족이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진짜 프로가 된 것 같다”고 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정신력 훈련이 있었다. 2005년초 LG는 ‘패배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의미로 송판깨기, 숯불 위 걷기 등 ‘차력’에 도전하면서 분위기 반전을 노리기도 했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점차 이런 극기훈련은 찾기 어렵게 됐다. 지금은 오프시즌 선수들의 훈련에도 ‘자율’이 주어진다. 사비를 들여 선수들이 삼삼오오 모여 따뜻한 곳으로 떠나 훈련한다. 외국인 선수 제도(1998년)가 도입된 이후 국내 선수들이 웨이트트레이닝에 투자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면서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하는 선수들도 많아졌다.

강인권 두산 배터리코치는 “지금은 운동하는 환경이 너무 좋아졌다. 무엇보다 선수들 스스로가 몸을 만들어가는 쪽으로 의식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스프링캠프도 ‘훈련을 얼마나 하느냐’가 아닌 ‘훈련을 어떻게 하느냐’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야간훈련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심지어 오후 훈련도 2~3시 끝나는 팀들이 있다. 이제는 ‘잘 쉬는 것’도 훈련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시즌이 144경기로 늘어나면서 체력이 순위싸움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몸값이 치솟으면서 선수 스스로가 자기 관리하는 트렌드가 만들어진 것도 큰 이유다.

훈련시간이 적어졌다고 해서 강도까지 약해진 것은 아니다. 짧은 시간에 최고 효율을 목표로 한다. 단체 훈련보다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채워가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해외 전지훈련은 원년 우승팀인 OB가 스타트를 끊었다. OB는 1983년 대만 가오슝으로 떠났다. 삼성은 전·후기 통합 우승을 이룬 1985년 국내 프로야구단 최초로 미국 플로리다 베로비치에 위치한 다저타운에 스프링캠프를 차리면서 선진야구 유입의 계기가 마련됐다.

이후 일본, 미국 서부, 하와이, 괌, 사이판, 호주 등 전훈지가 다양해졌다. 시즌을 앞두고 열리는 2차 캠프는 시차 적응과 스파링파트너를 찾는데 유리한 일본 오키나와가 여전히 가장 각광받고 있다. 스프링캠프 일정 변화에 따라 첫 시즌을 마친 뒤 각 구단들이 내년부터 새로운 캠프지를 찾아 나설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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