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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애·김성신의 북톡카톡] 당신의 닫힌 머릿속을 열어주는 책 ‘연필의 힘’

북톡카톡 시즌2의 히로인 홍선애. 그녀의 직업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다. 경제와 건강, 그리고 교양 분야가 그녀의 전문영역이다. 방송인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카메라 앵글 밖에서의 홍선애는 어처구니없을 만큼의 고지식함과 독서에 관한 한 가장 순수한 열정을 가진, 조금 엉뚱한 청춘이기도 하다. 톡방의 주인장 김성신의 직업은 출판평론가다. 방송과 강연, 집필 등 온갖 수단을 통해 책의 흥미로움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그는 늘 재미를 찾는다. 책에 관한 격 없는 수다를 서평으로 기록해 보자는 ‘북톡카톡’ 칼럼도 그의 아이디어다. 책읽기가 연애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아가씨 홍선애. 꽃중년을 자처하는 수다쟁이 아저씨 김성신. 두 사람의 즐거운 책 수다 ‘북톡카톡 일흔세 번째 이야기는 <연필의 힘>(가이 필드 지음 / 홍주연 옮김 / 더숲)이다.

성신:누가 선애를 보고 ‘그림 같다’고 한다면… 선애는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선애:좋죠! 그것은 외모에 대한 극찬 아닌가요?

성신:그런데 말이야. 세상엔 추하고 흉한 그림도 있는데, 사람들은 어째서 ‘그림 같다’는 표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까?

선애:오호~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성신:만약 어떤 바보가, 가령 나 같은 멍청이가… 선애에게 ‘책 같다’고 그런다면?

선애:헙! 흠… 그건 별로인데요.

성신:아무래도 그렇겠지? 딱딱하고, 어렵고, 네모나게 생긴 그 무엇인가를 연상할 테니까 말이야.

선애: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원초적 이미지랄까요. 언어표현에 있어서는 그게 중요하겠죠?

성신:그렇지. 그런데 ‘그림’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온갖 이미지를 자유롭게 떠올릴 수 있을 텐데, 왜 멋지고 아름다운 것을 반사적으로 연상하는 걸까?

선애:화폭에 담기는 그림의 내용보다는, 인간은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그 자체를 긍정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요?

성신:나도 그렇게 생각해. 뭔가 기막히게 아름다운 것을 본다면 우린 그것을 기억에 남기고 싶어 하잖아? ‘그림 같다’는 관용어는 그런 인간의 본능에서 기인한 것 아닐까 싶어.

선애:그리는 행위에 대해 인간은 본능적 선망을 가진 듯도 하네요. 말씀 나누다 보니, 최근에 읽은 <연필의 힘>이라는 책이 생각나요.

성신:나는 개인적으로,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마구 분출되는 그런 책이 좋더라.

선애:선생님 취향이세요?

성신:물론 특별한 주제에 대해 치밀하고 깊게 파고드는 책도 매력적이지만, <연필의 힘> 같은 책은 뭐랄까? 상상 속에서 뛰노는 것 같달까… 그래선지 읽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려.

선애:평범한 연필 한 자루로 할 수 있는 ‘짓’이 정말 그렇게 많을 거라곤 상상도 못해 봤어요. 말씀대로, 연필이 그리는 세계에서 맘껏 뛰노는 것 같은, 그런 만화 같은 느낌이랄까요.

성신:스케치와 낙서, 드로잉 같은 연필의 기초적인 활용법부터 연필의 탄생과 역사, 연필로 시작해 예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대한 예술가들의 이야기까지, 연필이라는 주제를 놓고 다양한 이야기를 펼치는 아주 흥미로운 책이더군.

선애: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알게 되면 재미있고 신기한, 연필에 대한 그런 이야기들! 심지어 연필을 만드는 향나무는 14년이 돼야 연필을 만들기에 적합하다는 것도 이 책 때문에 알게 됐죠.^^

성신:하하 맞아! 도통 쓸모없는 지식들이 우리에게 주는 편안한 즐거움이랄까. 1년에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연필의 수는 150억~200억개나 되고, 이를 모두 연결하면, 지구를 7바퀴 반을 돌 수 있다는 식의… ㅋㅋ

선애:매사에 필요와 효용성을 따지는 것은 재미가 없잖아요. 쓸모가 없을수록 더욱 순수한 즐거움에 빠져들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성신:그러고 보니 <연필의 힘>은 굉장한 깨달음을 주는군.

선애:‘효용을 버리면 즐거움을 얻는다!’ 뭐 이런 깨달음이랄까요? 우리 인생에도 도움이 되겠어요!^^

성신:아무튼 나는 이런 책이 좋아! 한없이 집요한 잡다스러움!

선애:마치 어린 아이들이 장난에 몰입하듯, 저자는 정말 천진난만하더라고요. 세상에 고작 연필 한 자루로 이렇게 엄청난 수다를 떨다니! ^^;;

성신:그러게 말이야! 그리고 그런 천진난만함에, 지식인적인 체계성이랄까… 그게 합쳐지니까, 정말 이전에 없었던 관심이 만들어지더라고. 이런 식이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흥미롭지 않겠어?

선애:맞아요! 연필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책이지만, 이 책을 읽는 우리로 하여금 오만가지 방향으로 관심을 넓혀가도록 만들어 주더라고요. 자신의 관심을 체계화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고요.

성신:아까 선애가 ‘쓸모’라는 단어를 언급했잖아? 그것도 꽤 의미심장한 단어란 생각이 드네.

선애:어떤 맥락에서요?

성신:우리는 매사에 ‘쓸모가 있어야 한다’고만 생각하잖아? 쓸모가 없으면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그 쓸모라는 것이 대개 이익을 추구하는 효용성 따위가 아니냔 말이지.

선애:바로 그래서 인생이 재미없어지는 거군요! ^^

성신:그렇지! 효율과 이익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잖아? <연필의 힘>은 연필처럼 보잘것없는 물건일지라도, 내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면, 그때부터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아주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깨닫게 해주더라고.

선애:‘사랑’과 같네요. 김춘수의 ‘꽃’이 생각나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성신:바로 그거지! 사랑을 알았으니 이제 연애해도 되겠다! ㅋㅋ 제발 책 좀 그만 읽고 연애도 좀 하고 그래.

선애:책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할 텐데요.

성신:에잇! 책처럼 얼굴 네모나게 생긴 사람이나 만나랏!

선애:그럼 연필 같은 사람을 만날까요? <연필의 힘>에서 저자는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연필 한 자루만 있으면 그림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평범한 일상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연필은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들고, 생각하게 하고, 중요한 것을 잊지 않도록 기록하게 한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 매력적이지 않겠어요?

성신:오호! 나름 오묘하군. 웃고 울게 만들고, 생각하게 하고, 잊지 않도록 하는 사람… 좋네!

선애:맘에 드시나요? ^^

성신:연필같이 뾰족하게 생긴 사람? 암튼 빨리 찾아서 데리고 와봐! ^^ 아무튼 <연필의 힘>은 읽는 내내 귀에서 소리가 들리는 느낌이었어. 연필이 종이 위에서 사각거리는 소리 말이지. 아주 신기한 책이야.

선애:그 소리 정말 좋아요. 눈 밟는 소리만큼이나!

성신:청와대 압수수색 들어가는 특검의 발걸음 소리만큼이나…!

선애: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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