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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배의 그림으로 보는 인류학]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에르가스틴의 조각’

에르가스틴의 조각(기원전 445~438)

유럽 문화의 기원을 그리스·로마에서 찾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지만, 그리스의 위치가 이탈리아와는 다르게 살짝 동쪽으로 치우쳐 있어 그런지 유럽인들이 그리스 문화에 대한 동경이 생기고 나서도 그리스까지 여행가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이후 유럽 강대국들은 그리스의 유적들을 도둑질하는 일이 잇따랐습니다. 런던의 영국 박물관, 파리의 루브르, 베를린의 페르가몬 등에는 유물 도굴단들의 행적이 많은 수장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조각은 1789년 프랑스의 포벨이라는 사람이 파르테논 신전 앞에 흩어진 조각을 들고 나온 후 1794년 구피에 남작이 그리스로부터 프랑스로 반입하고, 1798년 루브르에 옮겨 놓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루브르는 ‘가지고 왔다’고, 마치 주인 없는 물건을 주운 것처럼 표현하지만, 우리는 그 뜻을 잘 알고 있죠.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런 종류의 유물 반환 소송과 문의가 각종 기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나 제자리로 돌아간 것은 극히 적습니다.

“이 부조 조각은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건물 지붕과 기둥 사이 공간에 들어가는 부조 형태의 조각)의 일부분이다. 원래 이 조각의 배경에는 파란색이, 그리고 인물들에게는 짙은 황금색이 칠해져 있었다. 이 장면은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며, 모든 아테네인들이 참가한다는 뜻의 판아테네 대축제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들의 폴리스 아테네를 지키는 여신 아테네에게 바치는 축제를 위해, 여신처럼 꾸민 여성들이 행렬을 이루는데, 이들을 가리켜 에르가스틴이라고 한다.”

이 조각은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상징 ‘파르테논 신전’의 일부입니다. 영국 박물관이나 파리의 마들렌 성당, 독일의 발할라 사원 모두가 이 파르테논을 모델로 하고 있죠. 도로에서 만나면 저절로 긴장하게 되는 롤스 로이스 차량의 라디에이터 그릴 역시 이 파르테논 신전을 옮겨다 놓은 모양입니다.

“그리스 클래식 예술의 모범인 이 부조는 우리에게 사실주의와 추상 사이의 완벽한 조화를 드러낸다. 독일의 철학자 괴테는 이 조각을 설명하면서 인간처럼 보이는 신들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신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들을 보여준다고 언급했다.”

기둥들로만 구성돼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조각이 보여주듯이 신전 지붕 아래, 그리고 벽에도 빼곡하게 색깔까지 입혀져서 사람들의 모습을 닮게 조각돼 있던 이 신전의 존재감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 조각품의 제작연도가 정확한 것은 파르테논 신전이 건설될 당시 그리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 아래 아테네가 가장 번영을 누렸고, 이 건축이 그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괴테가 이야기했듯이 어쩌면 여기에 있는 인물들은 신들이 아니라 축제에 참가한 인간들일지 모릅니다. 이렇게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뿐 아니라 원래 파르테논 신전의 부조들은 신들도 등장하고, 말을 탄 기마부대도 등장하는 등 그 구성과 완성도에서 사람들을 감탄하게 합니다.

“조각은 어느 것 하나 세밀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입고 있는 의상의 늘어진 부분이 조각된 부분과 접혀진 매듭이나 천들의 리넨 천 질감 등은 여기에 등장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생기를 입힌다. 근육과 혈관들이 도드라져 새겨져 있는 이 모든 표현에서 우리는 거장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항상 생각합니다. ‘기원전 400년 전에 만들어졌는데도 이렇게 탄성이 나올 만큼 세밀하고 정확한 작품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고요. 그렇게 하기까지 수많은 과정이나 어려움들이 있겠지만,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미술사학자 안현배는 누구?

서양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가 예술사로 전공을 돌린 안현배씨는 파리1대학에서 예술사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예술품 자체보다는 그것들을 태어나게 만든 이야기와 그들을 만든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라와 언어의 다양성과 역사의 복잡함 때문에 외면해 오던 그 이야기를 일반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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