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파불루머 유재덕의 칼과 책] 아름다운 몸매를 바라는 사람에게 권하는 ‘마흔 식사법’

intro

유재덕의 직업은 합법적인 칼잡이, 즉 요리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에서 20년 넘게 일했으며, 현재는 그곳에서 메뉴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요리사’나 ‘셰프’보다는 자신을 ‘음식가’ 혹은 ‘파불루머’라는 명칭으로 불러주길 원한다. ‘음식물’이나 ‘영양물’을 뜻하고, 그래서 ‘마음의 양식’ 등을 표현하는 숙어에서 종종 활용되는 라틴어 pabulum(파불룸)에서 따온 단어다.

“요리는 특별한 것이지만, 음식은 위대한 것이다!”

이것은 그의 좌우명이다. 요리는 맛을 주지만, 음식은 생명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런 이유로 그는 언제나 손에서 칼을 내려놓을 때마다 책을 집어들었다. ‘파블루머 유재덕의 칼과 책’은 오늘도 그가 주방에서 읽고 있는 책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 열세 번째 책은 <마흔 식사법>(모리 다쿠로 지음, 박재현 옮김, 반니/라이프)이다.

사무실에 앉아 손거울로 유심히 내 얼굴을 살펴봤다. 거울 속에는 내가 나라고 여기는 나는 없었다. 대신 어떤 중년의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신기했다. 나는 웃어도 보고, 무서운 표정도 지어보고, 이를 드러내며 흉측한 표정도 지어봤다. 내가 짓는 표정대로 변하는 얼굴. 따라서 거울 속의 나는 나임이 분명했다. 눈에 띄게 성글어진 머리숱과 눈가의 주름은 나로부터 흘러간 세월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었다. 나에게 낯선 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자꾸 이 문장이 입 안을 맴돈다.

유난히 바빴던 며칠 전 새벽. 주방 준비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오다가 계단에서 그만 다리가 풀려 스텝이 꼬였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난간을 잡고 사고를 모면했다. 문득 이 문구의 소설 제목이 떠올랐던 것은 바로 그때부터다. 그날부터 ‘내 몸은…’으로 시작하는 저 문장을 무한반복 되뇌고 있다.

나는 요리사가 매우 윤리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하며 살아 왔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다루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나를 무척 잘 알고 아껴주는 벗이 있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친구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요리사보다는 음식가가 아닌가 싶어.”

내가 그런 직업도 있냐고 물었더니, 아직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가 말을 이어갔다.

“요리는 특별한 것이지만, 대신 음식은 위대하잖아. 요리는 맛을 추구하지만 음식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너는 늘 손님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더라고. 그러니 요리사보다는 음식가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어.”

나는 그 친구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그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호텔의 메뉴개발 분야를 맡고 있어서 늘 새로운 재료와 조리법을 연구해야 했다. 그 궁리와 골몰의 과정에서 입버릇 삼아 ‘이런저런 것이 몸에 더 좋지’ 하는 말을 한 듯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무슨 신념이나 철학 같은 차원은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 친구는 이전까지 고작 나의 입버릇에 불과하던 말을 잡아채 나를 새로 규정해 주었다.

물론 나를 좋아해 주는 그 친구의 과찬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규정은 나를 깨우쳤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며칠 뒤 그 친구는 나를 위해 ‘파불루머’라는 단어를 만들어 봤다고 연락해 왔다. 라틴어로 ‘음식’을 뜻하는 단어인 ‘pabulum’에 영어식으로 ‘사람’을 뜻하는 ‘-er’을 붙여 새로 만든 말이라고 설명했다. 그날 나는 내가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더 맹렬하게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바로 그날부터였다. 고작 하룻밤을 새웠다고 다리도 절로 풀리는 나이. 요리는 확실히 중노동이다. 손과 머리로만 버틸 수 있는 요리사의 나이는 따로 있다. 이제 신념과 가슴으로 요리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뭔가 안다는 것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다. 매뉴얼이 아니라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세계를 다 외울 수는 없다. 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이해하면 불편한 실행이 아니라 즐거운 실천을 할 수 있다. 이해란 억지로 몸에 부착하는 형틀 같은 것이 아니다.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을 찾았다. <마흔 식사법>이라는 제목의 신간이다.

<마흔 식사법>에는 40대가 돼서도 건강은 물론 아름다운 몸매를 유지하고픈 사람들에게 매일매일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10가지 기적의 식사법을 설명한다. 그 항목은 다음과 같다.

①식사의 절반은 단백질 위주의 식품으로 한다. ②음식은 삼키지 말고 꼭꼭 씹어 먹는다. ③달걀은 마음껏 먹는다. ④가공식품의 거짓 건강에 속지 않는다. ⑤지방을 제한하면 다이어트를 망친다. ⑥밥은 한 끼 80g 정도만 먹는다. ⑦밀가루와 설탕은 최대한 멀리한다. ⑧콩, 씨앗류, 해조류, 생선, 버섯, 감자를 먹는다. ⑨공복을 즐긴다. ⑩발효식품을 잊지 않는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들 10가지 항목을 외울 수 있겠는가. 설사 외운다 한들 적재적소에 이 항목들을 적용시켜서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 요리사 경력 30년이 다 돼가는 나로서도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저 흔한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모든 항목에 대해 우리가 쉽게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원리를 아주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나이를 먹으면 필연적으로 소화흡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20대와 같은 양의 단백질을 섭취해도 동일한 양의 근육이 생기지 않는다고 먼저 알려준다. 그러고는 생명유지와 관련된 지방의 흡수력은 쇠퇴하지 않고 오히려 더 쉽게 축적된다는 점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40대에는 20대 시절과 똑같이 먹어도 살이 찌고,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두 몸매가 둥글둥글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마흔이 넘어서 체중조절을 할 때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제대로 된 ‘영양 섭취’라는 점을 일러주는데, 이렇게 우리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해 납득하도록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해가 되고 나면 우리는 응용을 할 수 있고, 생활에 쉽게 적용을 할 수 있게 된다.

<마흔 식사법>은 실제로 내가 메뉴를 개발하는 업무에도 굉장히 큰 도움을 준 책이다. 건강은 운동기구와 다이어트 식품을 구입하는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내 몸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그게 진정한 첫걸음이다. 그러니 부디 책부터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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