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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수 감독이 말하는 축구굴기

이장수 창춘 야타이 감독(61)은 자신이 처음 중국 프로축구에 발을 내딛은 1998년을 떠올리면 감회가 새롭다. 19년 전인 당시만 해도 한국과 비교하면 부족한 것 투성이었던 중국이 어느덧 ‘축구굴기’(蹴球堀起·축구를 통해 일어선다)를 외치며 놀랍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창원종합운동장에서 만난 그는 “모든 게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훈련장부터 경기장, 그리고 선수들의 수준까지 이제 중국축구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축구굴기보다 무서운 축구인기

이 감독은 1998년 충칭에서 부족한 여건에도 호성적을 내 ‘충칭의 별’로 사랑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칭다오와 베이징궈안, 광저우 헝다, 청두, 창춘 등 줄곧 중국에서 지도자로 활약했다.

그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3년 부임하면서 중국 축구가 크게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정상들과 회담에서도 축구 이야기를 하는 ‘축구팬’ 시 주석의 관심에 따라 축구산업 전반에 막대한 투자가 쏟아졌다는 것이다. ‘10억위안(약 1688억원) 클럽’의 등장이 그 상징으로 볼 수 있다. 한때 이 감독이 지도했던 광저우 헝다가 두 차례(2013·2015년) 아시아 정상에 오르면서 매년 1700억원 가까운 예산을 쏟아붇는 팀들이 여럿 등장했다. 지난해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전북 현대가 350억원 안팎을 쓴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엄청난 투자다.

이장수 창춘 야타이 감독이 15일 창원 종합운동장에서 중국의 축구굴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창원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축구굴기 효과는 외국인 선수들의 면면에서 잘 드러난다. 헐크(상하이 상강)와 하미레스(장쑤 쑤닝), 잭슨 마르티네스(광저우 헝다), 알렉스 테세이라(장쑤 쑤닝) 등 과거 유럽에서만 볼 수 있었던 선수들이 중국 슈퍼리그를 누비고 있다. 세계 최고의 연봉을 받는 선수(카를로스 테베스·약 507억원)도 중국에서 나왔다. 최근 중국축구협회가 외국인 선수 출전 규정을 5명에서 3명으로 바꿨지만, 아시아에선 독보적인 수준이다. 이 감독은 “내가 중국에서 처음 지휘봉을 잡을 때만 해도 외국인 선수의 연봉이 30만~40만달러 안팎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상전벽해”라며 “창춘도 골잡이는 300만달러를 받는다”고 말했다.

중국축구는 축구 인프라에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구단 별로 클럽하우스와 유소년시스템, 축구장 건설 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감독은 “옛날과 달리 이제 중국에선 구단마다 연습구장이 포함된 클럽하우스는 기본”이라며 “축구전용구장도 4곳이나 건설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감독은 축구굴기가 진짜 무서운 것은 막대한 투자나 외국인 선수의 면면이 아닌 놀라운 축구인기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국내에선 슈퍼매치(수원 삼성과 FC서울의 라이벌전)나 열려야 3만여 관중이 경기장을 찾지만 중국에서 그 정도는 일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중국 슈퍼리그 평균 관중은 2만4159명으로 일본(1만7803명)과 한국(7866명)을 훌쩍 따돌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중국 슈퍼리그가 2018년에는 독일 분데스리가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이어 관중 규모가 세계 3위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감독은 “중국의 축구 인기가 놀라운 것은 국제무대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라며 “만약 중국이 월드컵이라도 출전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축구굴기 효과는 15년 뒤

이 감독은 축구굴기가 15년 뒤에 진짜 효과를 드러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은 2015년 축구 중장기 발전 계획을 세우면서 진정한 축구굴기가 시작됐다. 이 감독은 “중국 축구 선수들의 실력만 평가한다면 20년 전보다 살짝 떨어진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중국 정부가 소황제 정책(한 가정에 한 아이만 허용)을 추진하면서 축구를 하는 인구가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황제 정책을 폐지하고 축구에 투자한 이상 15년 뒤에는 중국의 축구선수 층이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2020년까지 축구 선수 5000만명을 육성하는 방침을 세웠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2007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중국축구협회에 등록된 축구 선수가 71만1000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놀랍기만 하다.

이 감독은 “어떤 이들은 축구굴기가 시 주석이 임기를 마치는 순간 끝난다고 혹평을 한다. 그러나 지금의 투자가 순식간에 끝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최소한 7~8년 지금과 같은 흐름이 이어지고, 선수층이 5000만명까지 늘어난다면 어느 순간 중국 축구를 무시할 수 없게될 것”이라며 “이젠 한국 축구도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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