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세상의 기원, 내 몸 안의 우주 ‘마이 버자이너’

북톡카톡 시즌2의 히로인 홍선애. 그녀의 직업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다. 경제와 건강, 그리고 교양 분야가 그녀의 전문영역이다. 방송인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카메라 앵글 밖에서의 홍선애는 어처구니없을 만큼의 고지식함과 독서에 관한 한 가장 순수한 열정을 가진, 조금 엉뚱한 청춘이기도 하다. 톡방의 주인장 김성신의 직업은 출판평론가다. 방송과 강연, 집필 등 온갖 수단을 통해 책의 흥미로움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그는 늘 재미를 찾는다. 책에 관한 격 없는 수다를 서평으로 기록해 보자는 ‘북톡카톡’ 칼럼도 그의 아이디어다. 책읽기가 연애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아가씨 홍선애. 꽃중년을 자처하는 수다쟁이 아저씨 김성신. 두 사람의 즐거운 책 수다 ‘북톡카톡’ 일흔네 번째 이야기는 <마이 버자이너>(옐토 드렌스 지음 / 김명남 옮김 / 동아시아)이다.

성신:이번 정권 들어 해괴하거나 참담한 일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지난해 말 행자부에서 발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 통계였어. 그거 보고 선애는 어떤 생각이 들었어?

선애:정말 미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임기 여성 수가 지도에 그려진 것을 보니 우리 여성이 마치 소나 돼지처럼 가축 취급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신:왜 안 그랬겠어. 여성을 인격적 주체가 아닌 그야말로 출산의 도구쯤으로 인식한 거잖아. 완전히 가축으로 본 거지.

선애:그 통계를 보고 뭘 어쩌란 거죠? 내 참 기가 막혀서….

성신:그것을 보면서 나는 나향욱의 ‘국민개돼지론’이 저들에게는 이미 보편적 상식의 단계에까지 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어. 그냥 술 처먹고 내뱉은 실언이 아니라는 거야.

선애:어떻게 해야 하죠?

성신:싸워야지!

선애:여성운동가들이 그때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들고 있던 문구가 떠올라요. “내 자궁은 국가공공재가 아니다!”

성신:최근 한국 사회의 갈등은 이념투쟁처럼 포장돼 있지만, 실상은 ‘수준투쟁’이라는 생각이 들어. 저열한 수준과의 싸움! 문제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낮은 수준까지 내려가서 싸워야 하는 것에서 오는 참담함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점이지.

선애:맞아요. 이 참담함을 어떻게 극복하죠?

성신:결국 이게 인간의 존엄성 문제잖아? 그래서 절대로 지면 안 되는 싸움이야. 끝까지 싸워야 해!

선애:그렇죠. 맞서 싸우는 동안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는 게 아니니까 말이죠.

성신:싸움은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무식하거나 나쁜 사람이야. 싸움에도 종류가 있거든.

선애:어떤 종류요?

성신:비겁한 싸움과 숭고한 싸움. 비겁한 싸움은 승률과 이익만을 계산하는 싸움인 반면 숭고한 싸움은 인간이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싸움이지!

선애:그러네요. 페미니즘 투쟁은 숭고한 싸움의 전형이네요. 승률이나 이익에 상관없이 끝까지 가야 하는 싸움이기도 하고.

성신:그러면 이 싸움의 양상은 어떠해야 할까? 모든 싸움이 주먹질은 아니잖아?

선애:우리 모두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싸움판을 벌이는 것 아닐까요?

성신:와우~ 타고난 싸움꾼인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싸움판을 만들어 가는 거야. 보편적 도덕성을 무기로 말이지.

선애:게릴라전 같네요.

성신:어느 날 갑자기 위대한 지도자가 등장해 한방에 불의를 쓸어버리는 일은 이제 어려워졌지. 대신 보편적 도덕성과 상식을 무기로 게릴라전과 같은 일상투쟁을 벌여야 하는 거야.

선애:우리가 이 지면에서 책을 소개하는 행위도, 말하자면 불의와의 투쟁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죠?

성신:그렇지! 그리고 말이야, 옳지 못하거나 수준 미달의 집단이 국가권력을 잠시 장악할 수는 있어. 근데 중요한 것은 그들의 저열한 국가경영철학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야. 결국 우리가 대응하는 이 싸움판의 수준이 나라의 수준인 거지.

선애:권력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거죠? 싸움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확실한 이유네요.

성신:여성을 가축으로 여기는, 이 나라 국가권력의 수준에 대한 분개로 우리의 수다가 시작됐으니, 오늘의 ‘북톡카톡’에서는 무슨 책이 적당할까?

선애:<마이 버자이너>요!

성신:선애 많이 화났군! 암튼 내가 이 책을 지하철에서 펼쳐 읽으니 사람들이 쳐다보더군. 그러거나 말거나 하긴 했지만…^^

선애:제목부터가 삼박하잖아요? 에두르지 않고, ‘그래서 뭐 어쩔래?’라고 되묻는 듯, 느닷없고 강력한 느낌의 제목이 맘에 들어요.

성신:이 책이 10년 전에 출간됐을 때는 제목이 <버자이너 문화사>였거든. 일종의 미시사 책으로 기획된 거지. 그때는 그 제목처럼 좀 한가한 지적 호기심으로 읽었어. 그런데 페미니즘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개정판 제목이 <마이 버자이너>로 바뀐 거야.

선애:시의성에 맞게 잘 바뀌었네요.

성신:평화 시의 농기구가 전쟁 시에는 무기가 될 수 있듯이 같은 책의 제목도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지. 2016년은 한국 페미니즘 역사에 매우 중요한 한 해였어. 21세기에도 여전한 반페미니즘적 사회 분위기와 여성혐오 범죄…. 이제 한국의 여성들은 대중적 저항의 언어를 처음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거든. <마이 버자이너>의 출간은 바로 이런 시의성을 반영한 기획이기도 하지.

선애:암튼 저는 이 책을 남자 후배들에게 권해주고 싶더라고요. 여성의 신체, 그것도 성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지식들이 20대 남성들에게는 꽤 낯설고 불편할 수 있겠지만, 젊은 남자들이 좀 제대로 된 여성관을 가질 필요가 있잖아요?

성신:<마이 버자이너>는 여성 성기의 구조와 기능으로부터 시작해서 처녀성에 관한 문화사, 여성 할례라는 이름의 클리토리스 절제 풍습, 여성성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 숭배 등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한마디로 금기와 억압의 대상이었던 여성의 성기를 중심으로 의학·신화·문학·예술·역사를 포함한 거의 모든 인문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과학적이고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야. 젊은 남성들이 ‘야동’ 시청에 앞서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지.

선애:ㅋㅋ 야동! 맞아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여성혐오 범죄의 양상을 보면, 여성을 전적으로 대상화하는 ‘포르노적 세계관’의 끔찍한 악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성신:정확한 지적! 제도권 성교육은 비현실적 수준이고, 대개는 만연된 포르노로 성을 먼저 접하게 되니까… 성의식이 아주 이상해지는 거지.

선애:모든 것의 시작은 ‘내가 나의 주인’이라는 명제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성신:내 주인이 나 말고 따로 있는 존재를 우리는 노예라고 하잖아?

선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죠.

성신:자유와 평등, 인권과 민주주의… 가장 소중한 가치들은 적선처럼 누가 내게 던져주는 것이 아니야.

선애: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네요. 그래야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거니까!

성신:쟁취란 싸워서 얻는 것인데, 그러니까 늘 쉬지 않고 싸우며 살아야 하지! 그럼 이제 선애는 나와는 뭘로 싸울래?

선애:선생님과도 싸워야 하나요?

성신:당연하지!^^ 우리는 똑같이 책을 좋아하니까… 지식을 다투자고! 죽을 때까지 싸우고 겨뤄 보는 거지! 하핫~

선애:조금 늦게 태어난 제게 승산이 더 있네요. ㅋㅋ

성신:싸울 줄 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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