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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늘] 이은주 사망 12주기…다시 조명되는 연예인의 쓸쓸한 뒷면

12년 전 오늘은 배우 이은주가 짧은 인생을 마감한 날이다.

고 이은주가 <불새>에 출연하던 모습. 사진 MBC 제공

이은주는 2005년 2월 22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모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은주의 오빠는 이날 오후 1시 20분쯤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은주의 방에는 자신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엄마 미안해 사랑해’란 혈서가 발견됐다. 이와 별도로 ‘일이 너무 하고 싶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다’ ‘돈을 벌고 싶었다’ ‘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 힘듦을 알겠냐’ 등의 내용이 담긴 유서도 나왔다.

고 이은주가 남긴 유서. 아래 ‘엄마 미안해 사랑해’라는 혈서와 함께 이씨 집 방에서 발견됐다. 사진 연합뉴스

유족은 이은주가 영화 <주홍글씨>를 촬영하면서 노출 연기를 한 것 때문에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우울증을 보였으며, 이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온라인 상에는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한 동기에 대해 여러 추측이 난무했다. “영화에서의 과다 노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주장에 이어 “유서에서 마지막 통화자로 묘사된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유도했다”는 의혹 제기도 있고, 과거 큰 파문을 일으켰던 ‘연예인 X파일 책임론’도 자주 눈에 띄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그런 선정적인 추측들은 고인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면서 자제를 호소했다.

다만 이은주가 과거 분당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상담을 통해 “만사가 귀찮고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며 하루 1시간밖에 못잤다”고 호소한 뒤 우울증 완화제를 받아간 사실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경기도 분당경찰서는 입관식 직전 “이은주 자살 사건을 일반 변사사건으로 종결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유족들이 부검을 원치 않아 시신이 유족에게 인계했다”고 밝히면서 “더이상의 사망경위 등에 대한 수사는 없다”고 설명했다.

고 이은주의 빈소가 차려진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한 유족이 실신한 듯 엎혀나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유족들은 23일 오후 3시쯤 유족 회의를 열고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에 앞서 세상을 떠나는 ‘참척(慘慽)’의 경우 일반적으로 화장을 한다”며 장례 형식을 결정했다.

이은주는 가족의 오열 속에 화장용 오동나무관에 안치됐다. 그의 어머니와 오빠는 무척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친지들은 힘 없이 찬송가와 성경책을 들고 입관 장소로 들어갔다. 40여분 동안 진행된 입관식 직후 끝내 이씨의 어머니는 실신했다. 입관식에 참석한 한 유족은 “직접 만져봤는데도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고 밝혔다.

고 이은주가 여러 영화에 출연하던 모습. 사진 나무엑터스 제공

분당에 위치한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는 바다, 전인권, 정혜영, 션, 이병헌, 차태현, 유준상, 홍석천, 이종수, 한석규, 김태우, 설경구, 홍은희, 팀, 소유진, 김정현, 추자현, 신은정, 도지원, 김지수, 김주혁, 김민정, 성현아, 김태우, 엄지원, 안재욱, 에릭 등 평소 친분이 두터웠거나 같은 작품에 출연한 동료 연예인들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특히 바다는 이은주의 급작스런 죽음에 3일장 기간동안 계획되어 있던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바다는 새벽까지 빈소에 머물다가 귀 통증을 호소, 급히 병원을 찾기도 했다. 다시 빈소를 찾은 바다는 믿기지않는 친구의 죽음을 재삼 떠올리고 눈물을 쏟았다.

이은주의 팬들도 슬픔을 함께 했다. 이은주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날 이은주의 다음 팬카페에는 하루 24만 명의 누리꾼이 찾아와 12만8천여 개의 추모글을 남겼다. 이씨의 네이버 팬카페에는 27만 명이 넘는 누리꾼이 찾아와 추모 글 4천598여 개를 올렸다.

고 이은주 추모 카페

25세 젊은 배우가 비관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이은주가 떠나고 12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연예계에는 화려한 은막 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앓는 스타들이 적지 않다. 이들이 연예인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심신의 건강을 지키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보내는 건 어떨까.

▼ 고 이은주가 남긴 유서 전문

엄마 사랑해. 내가 꼭 지켜줄꺼야. 일이 너무나 하고 싶었어.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는게 되버렸는데 인정하지 못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 힘듦을 알겠어…

엄마 생각하면 살아야 하지만 살아도 사는게 아니야. 내가 꼭 지켜줄꺼야. 늘 옆에서 꼭 지켜줄꺼야.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았어. 혼자 버티고 이겨보려 했는데… 안돼… 감정도 없고… 내가 아니니까. 일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맨날 기도했는데 무모한 바램이었지. 일년 전이면 원래 나처럼 살 수 있는데 말야.

아빠 얼굴을 그저께 봐서 다행이야. 돈이 다가 아니지만 돈 때문에 참 힘든 세상이야. 나도 돈이 싫어. 하나뿐인 오빠. 나보다 훨씬 잘났는데 사랑을 못받아서 미안해. 나 때문에 오빠 서운한 적 많았을꺼야. 가고 싶은곳도 많고 하고 싶은것도 많았는데. 먹고 싶은것도 많았는데.

가족끼리 한 집에서 살면서. 10년뒤 쯤이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다 해보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가장 많이 가장 많이 사랑하는 엄마,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내가 꼭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

마지막 통화, 언니…고마웠고 미안했고 힘들었어. 마지막 통화 언니-꼭 오늘이어야만 한다고 했던 사람. 고마웠어-아무것도 해줄수 없는 날 사랑해줬던 사람들-만나고 싶고 함께 웃고 싶었는데…일부러 피한게 아니야. 소중한 걸 알지만 이젠 허락지 않아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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