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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늘] 소록도 ‘자혜의원’ 설립일…“바다는 한센인의 눈물, 바람은 한센인의 한숨”

“소록도 바다는 한센인의 눈물이요, 바람은 한센인의 한숨이다”

전남 고흥군 소록도(小鹿島)는 단순히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 섬이 아니다. 이곳에는 한센인의 한이 서려 있다.

자혜의원(국립소록도병원의 전신) 모습. 사진 국립소록도병원 제공

1916년 2월 24일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소록도에 ‘자혜의원’(현재 국립소록도병원)을 설립했다. 이듬해 5월 17일 자혜의원은 정원 100명, 환자 73명으로 공식 개원했다.

자혜의원은 일제하 폭행, 감금 등 인권유린과 차별·편견의 대상이 돼야 했던 한센인의 삶과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적 현장이다. 과거 조선총독부는 한센병 환자를 강제로 이주시켰다. 국내 유일의 강제 격리 시설 지역이었던 소록도는 한때 한센인 포함 6000여 명이 거주했다.

한센인이란 한센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일컫는다. 한센병은 미코박테리아 일종의 나균과 나종균에 의해 발생하는 감염병이다. ‘문둥병’ ‘나병’ ‘대풍’ ‘대풍라’ 등으로 불렸던 이 병은 오늘날 간단한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센병 환자들은 신체적인 고통을 받았을 뿐 아니라 사회로부터 모진 천대를 받았다.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인권 유린이 자행됐던 소록도 갱생원 감금실. 사진 김기남 기자
소록도 중앙공원. 사진 박재찬 기자

국립소록도병원을 찾으면 붉은 벽돌로 둘러싸인 ‘검시실’을 볼 수 있다.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에는 한센병 환자의 시체를 해부해 실험용으로 쓰던 수술대와 검시대, 세척 시설까지 그대로다. ‘감금실’은 형무소나 마찬가지다. 한센인들은 일본인의 눈에 거슬리기라도 하면 법적 절차도 없이 좁은 방에 갇혀 한 달 이상 매질을 당하고 끼니를 굶어야 했다.

국립소록도병원을 둘러싼 6000여 평의 중앙공원은 수목원처럼 예쁘다. 소나무, 향나무, 종려나무 사이로 사슴들이 뛰논다. 하지만 이 공간은 사실 한센인들의 강제 노역으로 이뤄진 공간이다. 공원 곳곳에 한센인의 피, 땀, 눈물이 번져있다.

일제는 한센인의 남녀 별거제를 엄격히 실시하다 1936년쯤 정관절제수술(정관수술)을 의미하는 ‘단종수술’을 받은 경우에 한해 부부가 동거할 수 있도록 했다.

폐허로 남은 소록도 한센인촌. 사진 국가기록원 제공

놀라운 사실은 한국 정부가 출범한 뒤인 1949년에도 국내 병원은 부부 동거를 원하는 경우 정관수술을 강제로 받게 하는 규정을 두고 시행했다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 병원 내 출산을 금지시키고, 출산을 원하면 퇴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퇴원을 원하지 않는 이들은 임신중절 수술을 받게 했다. 사실상 대부분의 여성 한센인이 낙태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 정부는 1970년대까지 한센인 격리정책을 유지했다. 낙태 수술은 1980년대 후반까지, 정관수술은 1992년까지 공식적으로 행했다.

지난 2016년 6월 21일 서울고법 민사30부와 변호인 관계자들이 20일 고흥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한센인에 대한 강제 낙태와 정관 수술에 대한 특별재판을 가진 후 소록도 자료관을 살펴보며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사진 이준헌 기자
지난 2016년 6월 21일 서울고법 민사30부와 변호인 관계자들이 20일 고흥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한센인에 대한 강제 낙태와 정관 수술에 대한 특별재판을 가진 후 소록도 자료관을 살펴보며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사진 이준헌 기자

한센인들의 소송은 2007년 ‘한센인 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 등에 관한 법률’(한센인사건법)이 제정되며 설치된 한센인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가 정부 기관인 국립 소록도병원 등에 격리됐던 피해자들을 가려내며 시작됐다. 이후 2011년 10월 첫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으로 모두 6차례 관련 소송이 제기됐다. 전국적으로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는 539명에 이른다.

그리고 지난 2월 한센인 단종과 낙태 조치에 국가가 배상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처음으로 나왔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한센인들에게 시행한 정관·낙태 수술은 동의·승낙이 없었다면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태아의 생명권 등을 침해하는 행위이다”라며 “한센인들의 임신과 출산을 사실상 금지해 자손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뤄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물론이거니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하거나 제한했다”고 전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2006년 3월 27일부터 지난해 5월 12일까지 한국 한센인 590명에게 1인당 800만 엔(약 1억 원)씩 보상했다.

소록도와 뭍을 이어주는 소록대교. 사진 한국관광공사 제공

지난 2009년 소록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길이 1천160m의 연륙교 ‘소록대교’가 개통됐다. 이제 고흥에서 소록도로 가는 길은 10분이면 충분하다.

한센인들이 눈물로 채운 바다를 지나 한숨 섞인 바람을 헤쳐 세상에 바로 서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닐까.

오늘은 101년 전 소록도에 억지로 발을 디뎌야만 했던 한센인들이 그토록 바라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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