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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맹호 민음사 대표 금관문화훈장 추서

“나는 책이 인간을 성숙시키는 DNA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통해 인간은 성장하고 완성돼요”(박맹호)

지난달 22일 84세로 별세한 출판계 거목 고 박맹호 민음사 출판그룹 회장에게 정부가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50년 동안 출판계에 종사하며 출판 문화 발전을 위해 공헌한 고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해 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금관문화훈장은 문화훈장(1~5등급) 중에서도 1등급에 해당하는 훈장이다.

박맹호 회장은 1933년 충북 보은군 장신리 비룡소에서 부친 박기종과 모친 이아지의 2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1952년 서울대 문리대 문학부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한 후30대 초반까지 ‘문청’(문학작가를 지향하는 청년)으로 살았다.

1953년 ‘현대공론’ 창간 기념 문예 공모에서 박성흠이란 필명으로 단편 ‘해바라기의 습성’이 당선됐다. 1955년에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자유 풍속’을 투고해 1등으로 뽑혔다. 하지만 자유당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 문제가 돼 당선이 취소되는 비운을 겪었다.

엄혹한 시대가 문학작가 박성흠의 미래를 막았지만 역설적으로 한국 출판계에 큰 행운이 됐다. 후일 그는 자서전에선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여러 소설을 읽으며 ‘소설은 천재가 쓰는 것’이라는 절망을 느꼈다”며 “그래서 소설에 대한 꿈을 접고, 차라리 다른 천재를 발굴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출판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33살이던 1966년 민음사를 창립했다. 첫 책 <요가>가 1만5000부나 팔려 성공했지만 두 번째 로 기획한 소설책이 크게 실패해 어려움도 겪었다. 당시 약사였던 부인이 ‘활명수를 팔아 민음사를 살려냈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박맹호 회장이 이끄는 민음사는 1970년대 들어서 경영이 안정화 되면서 양질의 인문교양 서적과 한국 문학에 주요작품을 잇따라 출간했다. 1977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계속된 ‘이데아 총서’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 등을 통해 명성을 얻었다. ‘대우학술총서’는 1983년부터 1999년까지 <안티 오이디푸스> <사회생물학> 등 고전 424권을 내놨다. ‘오늘의 시인 총서’와 ‘세계 시인선’은 출판물에 가로쓰기의 본격적인 도입을 가져왔고 ‘오늘의 작가상’은 한국 문학의 현재를 대표하고 미래를 제시한 소설가들을 조명했다.

박 회장은 1980년대 암울한 시대에 ‘출판인 17인 선언’을 이끌어내 정부와 불화를 겪으면서 세무 사찰을 받아 출판사가 존폐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1998년 첫 권을 낸 후 1000만부 넘게 팔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문학전집 시장 부활을 선도하기도 했다.

출판인으로 그의 삶은 천재가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가 아닌 ‘사회가 필요로 하는 분야’에 투신해 일궈 낸 최대치를 보여줬다.

박맹호 회장은 생전 출판이라는 산업에 대해 “반 박자 앞서야 하는 시간의 예술”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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