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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아시안게임] 피겨 최다빈과 김나현, 경쟁과 우정사이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가 막을 내린 지난 25일 일본 삿포로 마코마나이 빙상장.

최다빈(17·수리고)은 완벽한 연기를 펼쳐 126.24점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쇼트프로그램에서 61.30점을 기록한 최다빈은 총점 187.54점으로 개인 최고점을 경신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동계아시안게임 사상 첫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이었다.

경기 후 취재진들로부터 수많은 질문 세례가 이어졌지만, 최다빈은 활짝 웃을 수 없었다. 동갑내기 라이벌이자 절친인 김나현(17·과천고) 때문이었다. 만신창이인 몸상태로 이번 대회에 참가한 김나현은 같은 날 프리스케이팅 경기에 나섰지만, 통증을 못 이기고 대부분 점프를 구사하지 못한 채 연기를 마쳤다. 친구가 아픔을 참고 하는 연기를 지켜보는 것이 결코 마음 편할 리 없었다.

최다빈(오른쪽)과 김나현 | 최다빈 인스타그램

최다빈과 김나현은 김연아를 동경해 피겨를 시작한 ‘연아 키즈’다. 2005년 피겨에 입문한 최다빈이 2007년 빙판에 오른 김나현보다 시작은 빨랐다.

어렸을 때부터 과천빙상장에서 함께 스케이트를 탔다. 그 때만 하더라도 누구인지는 알았지만, 코치도 다르고 급수도 먼저 시작한 최다빈이 더 높아 그리 친하지는 않았다.

그랬던 둘이 가까워지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인 2011년부터. 또래들보다 우월한 기량을 자랑했던 둘은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히게 됐고, 이어 함께 태극마크를 달게 되면서 매일 함께 훈련하는 사이가 됐다. 서로 경쟁하는 관계지만, 매일 얼굴을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됐다.

둘은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쳐왔다. 2016~2017시즌에는 김나현이 최다빈보다 한 발 앞서갔다. 지난 1월 열린 종합선수권에서 3위를 차지한 김나현은 4위에 그친 최다빈을 누르고 세계선수권 진출권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발목에 통증을 느껴온 김나현은 대회 일정 때문에 무리해서 경기에 나서다 그만 경기를 소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종합선수권 당시 쇼트프로그램이 끝나고 눈물을 펑펑 쏟았던 김나현은 결국 지난 19일 막을 내린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는 프리스케이팅을 포기하고 말았다.

진통제를 먹어가며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투혼을 발휘한 김나현은 그러나 세계선수권은 무리라고 판단, 결국 출전권을 차순위였던 최다빈에게 넘겼다. 김나현은 “솔직히 포기하는 것이 어렵긴 했다. 하지만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대회인데 몸상태가 온전치 않은 나보다 (최)다빈이에게 양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세계선수권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던 최다빈은 친구의 힘든 결정을 말없이 받아들였다. 김나현이 어떤 기분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경기를 하겠다는 다짐으로 김나현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대신해다. 최다빈은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 있어 부담감이 있지만, 이번 프리스케이팅 경기처럼 후회없이 만족스러운 경기를 하고 싶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국가대표로 있는 한 태릉스케이트장에서 계속 마주치면서 훈련을 해야 하지만, 둘 사이에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김나현은 “라이벌이 아닌, 친구로서 (최)다빈이를 응원하겠다”고 했다. 최다빈은 “(김)나현이가 발목 통증 때문에 힘들어했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았다. 평창올림픽에서는 함께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힘내겠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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