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천년 전 신라가 눈앞에서 펼쳐진다…황룡사 역사문화관

황룡사 구층목탑 1/10 축소모형. 사진|경주시청 제공

‘천년 신라’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황룡사’다. 진흥왕대에 만들어진 장륙존상(丈六尊像), 진평왕이 하늘로부터 받았다는 허리띠[천사옥대(天賜玉帶)], 그리고 선덕여왕대에 만들어진 구층목탑(九層木塔) 등 신라삼보(新羅三寶) 중 이보(二寶)가 이곳에 있었고, 그 유명한 솔거의 금당벽화가 그려진 곳도 황룡사다.

황룡사 역사문화관 전경. 사진|경주시청 제공

■호국염원이 담긴 동양 최대의 국찰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경주 월성의 동쪽에 궁궐을 짓다가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절로 고쳐 짓기 시작해 17년 만에 완공됐다. 이후 574년에 금동 장륙존상을 주조해 금당에 모셨다. 장륙존상은 높이 5m가 넘는 크기로 나라의 안위를 염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라 3대 보물 중 하나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인도의 아소카왕이 철 5만7000근과 금 3만분으로 석가삼존불상을 만들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배에 띄워 보낸 것이 신라에 닿았다. 어디에서도 완성하지 못한 불상이 신라에 이르러 드디어 완성됐는데, 그것이 바로 황룡사 금동 장륙존상이 됐다”고 한다.

이후 선덕여왕 12년(643)에는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의 권유로 석가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바람을 담은 구층목탑을 짓는다. 백제의 장인 아비지가 645년에 완공하는 구층목탑의 각 층은 신라를 둘러싼 적국을 상징한다. 높이 80m가 넘는 거대한 구층목탑은 불력을 빌려 당시 신라를 에워싸고 있던 동북아의 아홉 나라를 복속시킨다는 호국의 염원을 담고 있다. 한국 고건축사의 대표적 문화유산이자 조성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 건축물로 추정되기도 한다.

황룡사는 93년간에 걸친 국가사업으로 조성된 신라의 국찰이었다. 신라 왕실의 권위와 호국을 상징하는 3가지 보물 중 천사옥대(천주사에 있었다고 전해짐)를 제외한 2가지 보물이 있었다는 것에서 황룡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의 땅이 곧 부처가 사는 땅이라는 신라인들의 불교관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곳으로, 규모 역시 대단했다. 동서로 288m, 남북으로 281m에 이른다. 불국사의 8배가 넘는 동양 최대의 사찰이다.

‘신라 국찰’ 황룡사는 국가에 대사가 있을 때마다 왕이 친히 찾아와 백고좌(고승 100명을 모시고 설법하는 큰 법회)를 열던 신라 호국정신의 모태가 되는 성지다. 왕조를 달리한 고려시대까지도 그 호국불교의 정신이 변하지 않았음을 옛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황룡사 역사문화관 역사실 내부. 사진|경주시청 제공

■황룡사지 발굴과 역사문화관 건립

그렇게 옛 기록에 남아 있던 황룡사의 본격적인 발굴 조사는 1976년부터 8년 동안 진행됐다. 당시 체계적인 신라유적 발굴과 보존 정비계획을 위해 국립 현장발굴기관인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이 나섰다.

발굴 결과 2m 크기의 치미(고대의 목조건축에서 용마루의 양 끝에 높게 부착하던 장식기와)와 신라삼보 중 유일한 잔존유물인 장륙존상 머리와 나발편을 비롯해 찰주본기와 대형 망새 등 4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특히 일본 후지시마 교수가 주장한 일탑일금당(一塔一金堂:탑과 금당이 하나씩 한 줄로 서게 배치) 설을 뒤집고 일탑삼금당(一塔三金堂:탑을 중심으로 금당 3채가 둘러싸고 있는 형식)이었음을 밝혀내는 고고학적 성과를 올렸다.

이후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황룡사지 복원정비 사업이 시작됐다. 2025년까지 21년에 걸쳐 진행되는 ‘경주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황룡사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연구가 이어지는 것이다.

황룡사 복원정비는 이렇듯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만큼 복원사업의 비전과 황룡사 유적을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역사문화관 건립이 추진됐다. 건립 과정에서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황룡사 역사문화관 건립 중 “신라 연못 터가 있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통해 연못 유구(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가 훼손되지 않도록 했음을 밝혀 오해의 소지를 없앴다.

황룡사 역사문화관 역사실에 전시 중인 여러 유물들. 사진|경주시청 제공

■신라 역사문화의 산실, 황룡사 역사문화관

이후 마침내 지난해 11월 황룡사 역사문화관이 문을 열었다. 기존 유적지와의 연계를 위해 황룡사지 서쪽에 터를 잡았다. 황룡사 복원사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첫 삽을 뜬 지 3년4개월 만이다. 역사문화관은 황룡사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사체험의 장’으로 자리한다. 역사문화관은 앞으로 황룡사 복원사업의 홍보는 물론 전시·연구·관리 기능을 함께 수행한다.

건축적인 면에서 역사문화관은 연면적 2892.10㎡에 건축면적 2250㎡의 규모로, 1층은 전통건축의 기단을 형상화하고 2층은 전통 한옥요소와 동기와 지붕을 표현하는 등 신라 천년의 수도 경주의 이미지를 살렸다.

주요 시설로는 우선 역사문화관 정면에 전면 유리창으로 조성된 목탑전시실에 황룡사 구층목탑 1/10 축소모형이 자리한다. 약 8m 높이의 목탑모형 제작에는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 구조안정성 검토, 3D BIM(건축정보모델링) 설계 등에 8년의 세월이 소요됐다. 이 모형에는 모두 4만2000개의 목부재와 8만5000장의 동기와가 사용됐으며, 막새 문양은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기와 문양을 새겨 넣었다.

역사실에는 황룡사 구층목탑 복원안 1/20 축소모형 6점과 천년 신라 역사이야기, 황룡사지 발굴 역사스페셜, 황룡사 연대기와 황룡사 중문, 경주남산 옥룡암 황룡사 목탑 마애석 부조를 재현해 놓았다.

고건축실에는 장륙존상 불두를 중심으로 황룡사 구층목탑 최상층 모서리를 실체 크기로 재현한 조형물과 중금당 장륙존상, 10대 제자상, 황룡사 기초 토목층과 출토유물 복제품, 황룡사 보상화문 전돌 120여점을 함께 전시했다.

이외에도 3D영상실, 신라왕경 파노라마, 야외 전망대, 크로마키 황룡사 포토합성 체험 등이 준비돼 관람객들에게 많은 볼거리와 즐거움을 제공한다. 특히 3D영상실에서는 황룡사의 창건 배경부터 구층목탑의 축조, 고려시대 몽고의 침략으로 황룡사가 소실되기까지의 과정을 생동감 있는 영상으로 표현해 황룡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대한민국 역사문화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황룡사 역사문화관 개관은 2025년까지 21년에 걸쳐 진행되는 ‘신라왕경복원 사업’에 속하는 여정 중 하나다. 현재 황룡사 남문담장 외곽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가 시행되고 있으며, 올해까지 중문지와 담장지 보완 발굴 및 중문 복원 설계, 강당 복원 연구 등 심화연구가 이어진다. 또한 황룡사지와 역사문화관을 찾는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542대를 주차할 수 있는 잔디 블록의 자연친화적 주차장도 마련된다.

한편 신라왕경복원 사업 관계자는 “황룡사 복원은 오늘 이 땅에서 신라인들의 후예로 살아가는 경주시민의 염원인 동시에 우리 국민의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우는 역사적인 사업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면 “서울을 비롯한 많은 지역의 시민들이 그 현장을 직접 체험해 보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