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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호 교장의 마음의 반창고] 누구에게나 있는 위기와 갈등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는 2학년생 세호가 교장실을 찾아왔습니다. 큰 뿔테 안경을 쓴 세호는 덩치가 꽤 컸습니다. 하지만 감청색 조끼에 단정하게 넥타이를 맨 모습은 유순해 보였습니다.

자리를 상담테이블로 옮겨 앉았습니다. 그리고 팔씨름을 하자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세호가 큰 소리로 웃으며 손을 잡았습니다. 두툼한 손이 힘이 있어 보였지만 생각보다 약했습니다.

팔씨름을 마치고, 지금 기분을 물었습니다. 재미있다고 했습니다. 살면서 가장 재미있던 일들에 대해 들려 달라고 했습니다.

밖에서 구경하며 돌아다닐 때 재미있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주로 보는지 물었습니다. 컴퓨터 안에 들어가는 여러 부품들과 그 부품 안에 들어가는 저항 프로세서 같은 것을 구경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주로 그런 것이 많이 모여 있는 용산으로 가서 부품들에 욕심을 내보며 구경한다고 합니다. 또 높은 건물과 분수, 또는 오래된 집들과 골목, 그리고 많은 건물이 보이는 높은 곳에서 바라본 경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걸어 다니는 것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세호는 또 사람들과 모여서 놀 때도 아주 재미있다고 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습니다. 평소에 인터넷에서만 얘기하던 사람들과 정식 모임을 가져 같이 오락실을 가고 단체로 밥도 먹으며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는 일,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들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박람회 같은 곳으로 가서 사람들과 놀거나 그 전날에 함께 숙소 같은 곳을 잡아 하룻밤 자는 것도 엄청 즐겁고 새롭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한 느낌을 묻는 질문에 “평소 떠올리지 않았던 것을 오랜만에 떠올릴 수가 있어서 그런지 신기하다”고 대답했습니다.

세호에게 ‘재미있다’의 반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별로’라고 합니다. 별로였던 일들은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잠시 생각하더니 학교에서 수업하는 것과 집에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호의 꿈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라고 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영어 등을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합니다. 게임 프로그램 관련 수학책을 집에서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도 합니다. 공부하는 책을 카톡으로 찍어 보내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세호는 30세 정도에 성공하고 싶다고 합니다. 성공한 일상을 그려 보았습니다. 돈을 모아 집을 사고, 그곳에서 아침에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서 산책을 하고, 집에 들어온 뒤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 책을 하나씩 읽으며 게임에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고, 가끔은 사람들과 약속을 잡아 하루 정도는 집을 비우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상담을 마치면서 ‘이제를 뭐하지’를 떠올릴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난생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선생님을 알게 돼서 정말 좋았다”고도 했습니다.

세호는 최근 용돈이 모자라 알바를 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7곳에서 면접을 보았는데, 아직 안 됐다고 합니다. 치킨집과 고깃집에서 면접을 보았다면서 “앞으로 되겠죠” 하고 편안하게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밖에서 더 구경하며 돌아다니고 싶다”고 합니다. 잠깐 내비친 가정사로 보아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세호는 그동안 혼자 소화해야 하는 불편한 감정들을 해소하기 위해 밖으로 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해결되지 않은 사랑에 대한 욕구로, 자신이 사용해야 할 엄마 사랑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었던 듯합니다. 앞으로 정말 좋아하는 컴퓨터와 관련한 일을 통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위기나 갈등이 그저 불필요한 소동 정도로 인식되도록 몇 번의 상담을 더 할 예정입니다.

모험놀이 상담가 방승호는 누구?

국내 최초 ‘모험놀이 상담가’로 불리는 방승호 교장은 아이들과의 심리적 교감이나 스킨십 놀이를 통해 학생들의 아픈 구석을 잘 치유하는 교육자로 유명하다. 방 교장의 <기적의 모험놀이>와 ‘선생님의 똑똑! 상담실’(소년조선) 등의 저서와 칼럼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글로 알려져 있다. KBS <아침마당>의 목요특강과 유니세프 전직원 대상 특강 등을 통해 유명 강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방 교장은 앨범을 3집까지 낸 ‘가수 교장선생님’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노래 역시 목적은 ‘교육’이다. 모험놀이 상담가 방승호의 칼럼은 스포츠경향을 통해 매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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