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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애·김성신의 북톡카톡] ‘음식일기’에 담은 인생이야기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

북톡카톡 시즌2의 히로인 홍선애. 그녀의 직업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다. 경제와 건강, 그리고 교양 분야가 그녀의 전문영역이다. 방송인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카메라 앵글 밖에서의 홍선애는 어처구니없을 만큼의 고지식함과 독서에 관한 한 가장 순수한 열정을 가진, 조금 엉뚱한 청춘이기도 하다. 톡방의 주인장 김성신의 직업은 출판평론가다. 방송과 강연, 집필 등 온갖 수단을 통해 책의 흥미로움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그는 늘 재미를 찾는다. 책에 관한 격 없는 수다를 서평으로 기록해 보자는 ‘북톡카톡’ 칼럼도 그의 아이디어다. 책읽기가 연애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아가씨 홍선애. 꽃중년을 자처하는 수다쟁이 아저씨 김성신. 두 사람의 즐거운 책 수다 ‘북톡카톡’ 일흔여섯 번째 이야기는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시노다 나오키 지음/앨리스간)이다.

성신:선애는 혹시 일기 쓰는가?

선애:대학교 때까진 썼는데, 일기 안 쓴 지 한참 됐네요.

성신:대학 때까진 기억하고 싶은 일이 많았나봐?

선애:그냥 감성이 충만했죠.^^ 선생님은 일기 쓰세요?

성신:난 초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부터 주욱~ 안 쓰지! 내 인생을 기억하기 싫어서…ㅋ

선애:자신의 인생을 정직하게 되돌아보는 것이 결코 심리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에요.

성신:맞아! 일기를 쓰려면 용감함이 필요해.

선애:일기를 숙제처럼 억지로 쓰게 했던 건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에요.

성신:억지로 쓰라고 하면, 거짓말만 늘겠지.

선애:학교에선 왜 일기쓰기를 그렇게 강요할까요?

성신:표면적으로는 학생들에게 사색하고 반성하는 습관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겠지만, 제도나 조직에 인간을 순응시키려는 숨은 뜻이 있지 않을까?

선애:정직의 중요성이 인식의 바탕에 깔려 있지 않다면, 일기쓰기 강요는 곧 거짓말의 강요가 될 수도 있죠.

성신:맞아! 그런 혐의가 짙은 것이, 일기숙제라는 것은 누군가가 내 일기를 읽는다는 거잖아? 상대가 교사든, 부모든 누군가 읽는다는 것을 전제하면, 진짜 내밀한 나만의 생각을 일기장에 쓸 수 있을까?

선애:누구를 좋아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겠네요. 나쁜 생각도 표현하면 안 되고요.

성신:그렇지. 그러니 결국 강요되는 일기쓰기는 자칫 가식의 필요성과 거짓말의 유용함 같은 것을 배우게 만드는, 일종의 반교육이 될 수 있지.

선애:미셀 푸코의 책이 떠오르네요. <감시와 처벌>.

성신:이 시점에서 가장 적절한 책 선택이군! 미셀 푸코는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하지. ‘복종’ ‘시간표에 의한 인력관리’ ‘규율에 대한 강조’, 감옥에서 주로 활용됐던 이런 프로그램들이 군대·학교·병원·공장 등을 포함한 사회 전체에 적용됐다고 말이야. 결국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지.

선애:강요된 일기도 거의 같은 맥락이네요.

성신:강요된 일기는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미시적 파시즘’의 시작이라고 나는 생각해.

선애:일기 하나로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런데 일기를 왜요?

성신:최근에 아주 희한한 책을 한권 봤거든. 그런데 그게 일기더란 말이지. 무슨 책이게?

선애:알지요.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 일종의 식사일기던데요. ㅎㅎ

성신:이 책 진짜 묘하게 재미있고, 묘하게 감동을 주는 책이지 않아?

선애:심지어 존경스럽기도 해요. 일기를 쓴 기간이 무려 23년이잖아요. 책으로 묶은 것만 그 정도이고 지금도 계속 쓰고 있을 테니….

성신:그것도 순전히 자신이 먹은 것만 기록한 일기라니! 기발하지 않아? 그런 일기를 쓰게 된 사연도 재미있고….

선애:그림까지 직접 그린 일기더라고요. 다 큰 어른의 그림일기라니! ^^;;

성신:여행회사 직원이었던 시노다 씨는 1990년 전근을 가게 되면서 현지의 음식들을 기록해 보기로 처음 결심했다고 하지. 자칫 흐트러질 수도 있는 자취생활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고 해. 곧장 대학노트를 사서 거기에 매일 하루 세끼 자신의 식사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지.

선애: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한 나이가 27살이었는데, 세월이 흐르고 흘러 50살의 중년이 됐고, 그 기념으로 이 책을 펴냈다죠.

성신:사람이 꾸준히 뭔가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뭔가 찡한 감동이 있어. 그치?

선애:사실 ‘그냥 내가 먹는 세끼를 기록해 보자!’ 이건 뭐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결심은 아니지 않아요? 그런데 거기에 겹겹이 세월이 쌓이면서 뭔가 멋지고 독창적인 것이 만들어졌어요.

성신:그게 집념이나 집착이라면, 우리가 감동까지 받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뭐랄까… 이건 좀 달라!

선애:맞아요. 달라요. 그런데 대체 뭐가 달라서 우리가 감동까지 받는 걸까요?

성신:내 생각에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존중’이랄까?

선애:아!

성신:‘나는 무엇으로 어떻게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더없이 성실하고 꾸준하게 대답하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어.

선애:삼시세끼란 인간 생명에 관한 하나의 상징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네요. 그런데 선생님은 어떻게 그런 지점을 찾아내세요?

성신:요소를 분해해 다른 것으로 바꿔 끼워 넣어보지. 가령 이 책에 실린 음식들이 이런 평범한 음식들이 아니라, 기기묘묘하거나 값비싼 요리들이었다면 감동이 있었을까? 이런 식으로 말이야.

선애:신기하긴 했겠지만 감동까지는….

성신:이 삼시세끼 식사일기가 단지 미각만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식사와 더불어 그날 그 시간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도 간략하게 메모해 놓았잖아? 가령, 아내와 혼인신고를 마치고 함께 먹은 튀김 소바, 딸이 태어나던 날 먹은 스시… 또 이런 걸 장황하고 감상적으로 적은 것도 아니고, 아주 짤막한 메모처럼 적었지.

선애:맞아요. 그리고 이 책에 들어 있는 시노다 씨의 일기는 누굴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애당초 아니었어요. 그러다 보니 담백함 그 자체로 느껴졌어요. 그리고 저자가 먹은 음식의 맛보다는 그의 인생이 그림처럼 머리에 펼쳐지더라고요.

성신:우리가 이 책에 감동을 받는 부분이 바로 그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어. 저자의 인생이 보이니까. 그리고 그게 우리처럼 평범하니까 쉽게 투영할 수도 있고.

선애:누가 막 잘난 척 하면서, ‘난 이런 것도 먹어 봤는데, 넌 못 먹어 봤지? 메롱~’ 만일 이런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면, 이 책을 읽지도 않았을 거예요.

성신:‘그래! 못 먹어 봤다. 너나 실컷 처드세요.’ 그런 심정이나 들었을 테지! ㅋㅋㅋ

선애:음식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나간 날의 흐린 기억들도 음식을 통해 감각으로 되살아나는 경우도 많잖아요.

성신:사랑하는 가족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말이야… 나는 그 기막힌 슬픔 속에서도 어느 순간 꾸역꾸역 입에 음식을 밀어 넣고 있더란 거지.

선애:삶이란 그렇게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성신: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참담하기도 하고. 삶이란 것이 원해 그런 거잖아.

선애:이 책은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이 매일 자신이 먹은 것들을 기록해 놓은 것에 불과하지만, 읽는 우리는 바로 그것을 모티브로 인생 전체를 되돌아보고 성찰하게 되더라고요.

성신:이 책의 가장 희한한 점이 바로 거기라고 생각해. 저자가 책을 쓴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읽은 우리가 완결시키는 거야. 각자의 인생을 각자가 떠올리면서…

선애:대단한 책이네요. 가벼움과 무거움이 동시에 느껴져요.

성신:책은 하나도 안 심각한데, 읽다보면 독자만 심각해지는 이상한 책!

선애:ㅎㅎㅎ 정말 그러네요.

성신:일기라는 것이 원래 그렇잖아. 그냥 자신의 하루를 적기만 하면 되니까 가장 쉬운 일 중 하나지. 하지만 가장 정직하게 자신을 대면해야한다는 점에서는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위이기도 하잖아.

선애:자신의 인생 매 순간, 그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조리 정면으로 대응하겠다는 태도라면, 맞아요. 그건 정말 용감한 거죠.

성신:어때? 이렇게 풀어보니까 재미있지?

선애:대단한 통찰력! 선생님이랑 책 얘기하면 뇌의 막힌 부분이 뻥 뚫리는 기분이에요.

성신:그래? 그럼 뚫어뻥회사나 차려야겠다.

선애: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재개그!

성신:아재들은 역시 아재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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