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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호의 PM 6:29]김태형이 ‘1군 버스’에서 11명을 내리게 하는 법

두산 김태형 감독. 김기남 기자

두산 김태형 감독은 주저함이 없다. 선수 시절, 주장을 맡았을 때부터 그랬다. 몸값이나 이름값이 위에 있는 선수라도 기본에 많이 어긋난다 싶으면 따로 불러놓고 거침 없는 교육을 했다. 그런 김 감독도 알게 모르게 선수 ‘눈치’를 살필 때가 있다.

누군가를 엔트리에서 정리해야하는 순간, 김 감독은 해당선수 앞에서 움츠러든다. 2군행이 가까워진 선수가 감독과 눈 한번이라도 마주치려 씩씩하게 인사를 할라치면, 괜히 눈빛을 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그게 참,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고 했다.

이를테면 포스트시즌 엔트리를 선별할 때 그렇고, 지금처럼 개막 엔트리를 추릴 때 또 그렇다.

더구나 두산은 선수층이 10개구단 중 으뜸으로 두꺼운 팀이다. 아쉽게 1군 잔류에 실패하는 선수가 그만큼 더 많다. 두산이 국가대표로 차출됐던 8명의 숨고르기를 도우면서도 시범경기 라인업에 큰 구멍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겹겹이 층을 이룬 백업 멤버 덕분이다.

두산 선수들은 지금, 개막 엔트리 경쟁을 하고 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 현장직원 등 총 63명이 이동하느라 기존 구단 버스 2대와 별도로 두산 핸드볼 팀의 미니버스까지 빌려 쓰고 있다. 선수 38명은 개막 엔트리 27명에 들기 위한 막바지 시험을 보고 있다.

김 감독은 이 중 1군 탈락이 불가피한 11명의 마음가짐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들이 2군행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시선을 두고 있다.

선수를 일일이 따로 불러 메시지를 주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담당 코치를 통해 전한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2군으로 보내는 선수와 마주할 때면, 김 감독이 자주 꺼내는 말이 있다.

“10개구단 모두가 너를 보고 있다. 낙심하지 마라. 항상 즐겁게 해라.”

김 감독은 선수의 가치 평가라는 게 팀내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한다. 이는 ‘다른 팀이라면 주전감’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두산 선수들에게는 새로운 동기가 될 수 있다. 프로 선수라면 어떤 공간에서라도 우선적으로 가치 평가를 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한 팀의 감독 입장에서 트레이드 또는 2차 드래프트 같은 시행 가능한 이적 루트를 직접 언급할 수는 없다. 두산은 또 야수 쪽에서 트레이드 요청을 자주 받지만, 지금은 구단 차원에서 목마른 곳이 거의 없어 이를 받아들이고 추진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김 감독은 혹여 팀내 경쟁 상황만 보고 실망하거나 주저앉을 수 있는 선수의 마음가짐을 환기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도무지 흔들릴 것 같지 않은, 팀내 주전구도가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게 야구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이를 두고 “한 순간이다. 기회라는 게 한 순간에 온다”며 “넘볼 수 없는 자리는 없다”고 말했다.

올해 두산 주전으로 시즌을 맞는 허경민·김재환·오재일·박건우 등도 불과 한두 시즌 전에는 주전 라인업에 없던 이름들이다.

김 감독은 시범경기 둘째 주를 마치고 2군으로 가야하는 선수들이 짧게는 몇개월 뒤 길게는 내년 이맘 때 즈음 어떤 모습일지 단정하지 못한다. 그럴 수도 없다. 다만 어떤 식이든, 김 감독은 피할 수 없는 2군행 통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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