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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훈의 창사 메일] 한국전 필승 외치는 중국의 ‘말 못할 사정’

중국 대표팀의 훈련 모습이 보이지 않게 천막으로 둘러싼 보조경기장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훈련한 21일 중국 후난성 창사 허룽 보조경기장. 주위에는 중국 축구팬 ‘치우미(球迷)’가 걸어놓고 간 걸개 몇개가 눈에 띄었다. “한국전 필승” “끝까지 최선을” “중국 화이팅” 등이었다. 23일 한국과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6차전을 앞둔 중국대표팀에 대한 애절한 소망이 느껴졌다.

중국은 최종예선 반환점을 돈 현재 2무3패로 A조 최하위다. 이미 가물가물해진 월드컵 출전의 꿈마저 한국에게 패하면 거의 무산된다. 중국의 현실적인 바람은 거의 물건너간 러시아행 티켓에 목을 매기보다는 공한증(恐韓症)을 극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고 싶다는 것일 게다.

훈련장 입구를 막고 잇는 중국 경찰.

중국은 역대 한국전에서 1승12무18패로 크게 밀린다. 이번에 공포의 상대인 한국을 꺾는다면 ‘해도 안 된다’는 분위기를 ‘한 번 해보자’는 쪽으로 바꿀 수 있다.

중국은 한국전 승리를 위해 지난 1월 경기 장소를 예정된 쿤밍에서 창사로 옮겼다. 쿤밍은 해발 1890m 고지대. 대표 선수들을 일찍 소집해 고지대 적응력을 높인 뒤 한국을 잡겠다는 게 원래 구상이었다. 그런데 쿤밍에서 지난해 11월 열린 월드컵 최종예선 5차전 카타르전에서 중국 선수들의 체력은 막판 급속히 떨어졌다. 중국축구협회가 고민 끝에 한국전 장소를 창사로 옮긴 말못할 사정이다.

창사는 중국축구계에서는 ‘궈주푸디(國足福地·축구 대표팀 행운의 땅)’로 불린다. 중국 축구대표팀이 2005년부터 이곳에서 치른 A매치에서 4승4무로 무패행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축구대표팀 리테 코치도 “창사의 복된 기운을 받아 한국을 꺾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희망과 바람과 달리 현재 중국 분위기는 그리 좋지만은 않다. 수비수 런항(허베이)이 소집 초기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런항은 지난해 9월 한국원정에서 중국이 2-3으로 패할 때 큰 실수로 2실점을 자초했다. 런항의 선발에 대해 중국팬들과 언론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인 이유다. 런항은 심지어 최근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국족죄인(國足罪人)”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국족은 중국축구 대표팀을 뜻한다.

공격진은 골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이 최종예선 5경기에서 넣은 골은 2골. 그것도 1차전 한국전에서 2골을 넣은 뒤 4경기 무득점이다. 중국 언론들도 최대 문제는 무기력한 공격진이라고 했다. 마르셀로 리피 중국대표팀 감독은 지난해 한국전에서 골을 넣은 위하이(상하이 상강)와 하오쥔민(산동 루넝), 최근 중국프로축구에서 프리킥 골을 터뜨린 ‘지한파’ 미드필더 황보원(광저우 헝다·전 전북 현대), 지난해 6차례 A매치에서 2골을 기록한 20세 공격수 장위닝(네덜란드 비테세)을 불렀다. 어떻게 해든 골을 넣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대목이다.

멀리서 찍은 중국대표팀 훈련장면.

리피 감독은 최근 창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은 세계적인 대국이다. 축구도 그와 같은 수준에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이탈리아 우승을 이끈 리피 감독은 중국프로축구 광저우 헝다 감독을 하다가 지난해 10월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대표팀 감독으로 치른 3차례 A매치 성적은 1승2무다. 중국 언론들은 “한국전을 포함해 28일 최종예선 7차전 이란 원정이 리피 감독에게 최대 시험대”라며 “이전 가오홍보 감독 체제 하에서는 한국에 2-3으로 졌고 이란과 0-0으로 비겼다”고 비교했다.

창사는 중국의 영웅 마오쩌둥의 고향이다. 한·중전 장소인 허룽 스타디움은 중국 공산당이 선정한 개국 영웅 10명 중 한 명인 허룽의 이름을 땄다. 경기장은 5만5000석 규모. 입장권 최저가가 180위안(약 2만9000원)으로 비싼 편이지만 수많은 중국팬이 경기장에 들어찰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팬들은 러시아월드컵 출전이 사실상 힘들어진 뒤 대표팀에 대한 실망감이 깊어진지 오래다. 그런 실망감이 세계적인 명장을 영입한 뒤 희망으로 바뀔까. 아니면 또 다시 공한증을 앓으며 더 깊은 절망에 빠질까. 중국팬들의 희망 고문이 23일 오후 8시35분 이 곳 창사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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