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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우 감독 마음의 MVP 임영희 “감독님 마음 말 안해도 알죠”

감독은 그를 “내 마음 속의 MVP”라고 말했다. ‘진짜 MVP’ 박혜진(27)은 “언니에게 미안할 뿐”이라고 했다.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의 최고참 임영희(37)는 최고의 별이 되진 못했지만 변함없이 은은한 빛을 냈다. 감독의 신뢰와 후배의 존경을 받으며 베테랑이 가야할 길을 제시했다. 우리나이 서른 여덟, 임영희는 여전히 자신의 존재 가치를 코트에서 드러냈다.

우리은행 통합 5연패의 주역 임영희는 하루가 지났지만 우승의 감격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임영희는 21일 스포츠경향과 전화 인터뷰에서 “힘들게 연장까지 가서 이겼고, 주위에선 그래서 더 재밌고 흥미로웠다고 많이 얘기했다. 처음으로 연장까지 가서 우승을 해봐 또 색다른 기분이 든다”며 웃었다.

우리은행 임영희가 2014년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서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임영희는 챔피언결정전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했다. 2012~2013, 2013~2014 시즌 챔프전에서 MVP에 뽑힌 그는 이번 삼성생명과의 챔프전에서도 3경기 동안 평균 16점을 기록하며 팀의 중심을 잡았다. 박혜진이 MVP로 선정됐지만 임영희의 공헌도는 그에 못지 않았다. 위기 상황에서 위성우 감독이 쓰는 공격옵션 1번은 늘 임영희였다. 임영희는 챔프전 3차전에서도 힘겹게 몰고간 연장 초반 결정적인 4득점으로 승리를 가져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정규리그에서도 임영희의 활약은 변함 없었다. 평균 28분45초를 뛰면서 12.7점을 기록했다. 위성우 감독이 출전 시간을 조절한 덕분에 앞선 시즌보다 5분 가까이 덜 뛰고도 득점(13.4점)은 채 1점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꾸준함을 과시했다.

‘우리은행 왕조’의 산증인은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시즌 초반에 부상 선수도 많았고, 이승아도 팀을 떠나 많이 힘들 것으로 걱정했다”면서 “주위에선 쉽게 우승한 게 아니냐고 하지만 정말 어려운 시즌이었다”고 돌아봤다. 쉽지 않은 시즌이 예상됐기에 베테랑은 위기의식을 갖고 더 이를 악물었다. 그는 “이젠 비시즌 체력 훈련이 너무 힘들다. 운동을 따라가는게 버겁다고 느껴졌고, 시즌 때 잘 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며 “그래서 더 신경을 쓰고 마지막까지 집중했다”고 말했다.

임영희는 지난해 12월 KDB생명과 경기에서 상대 외국인선수 크리스마스의 팔꿈치에 맞아 코뼈가 휘는 부상을 당했다.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시즌 뒤로 미루고 보호 마스크를 착용하고 훈련했다. 경기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나섰다. 악조건을 스스로 감당하고 견뎌냈다.

선배의 희생과 솔선수범을 지켜본 후배들은 자연스럽게 훈련에 더 집중하게 됐다. 위성우 감독이 “마음 속의 MVP”라고 거듭 강조한 것은 그의 이런 보이지 않는 투혼이 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임영희는 “(마음 속의 MVP라는) 감독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마음인지 느낄수 있다. 겉으로 직접 표현은 잘 안하시지만 항상 배려하고 신경 써주시는 그런 마음을 느끼기에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임영희는 그동안 우리은행이 왕조를 이룩하는 동안 베테랑의 무게를 홀로 짊어졌다. “감독님은 그동안 내가 잘 해서 이기고, 나 때문에 져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고참이 이겨내고 감당하면서 후배들이 보고 성장한다고 말씀하셨죠. 그건 곧 저에 대한 믿음이니 잘 따르려고 노력했어요.”

후배들의 모범이 되기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임영희는 올 시즌 후배들의 성장이 그래서 더 반갑다. 우리은행은 이번 시즌 백업 멤버인 김단비·최은실·홍보람·이선화 등이 부쩍 성장하면서 팀이 더욱 탄탄해졌다.

임영희는 “후배들이 정말 잘 성장해줘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고 했다. 특히 늘 자신을 롤모델이라고 말하며 옆에서 따라다니며 열심히 훈련했던 김단비가 성장한 것에 크게 기뻐했다. 임영희는 오랜 무명시간을 보낸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후배들에게 “너희들은 나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에 그 이상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다독였다.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지만 임영희는 현실적으로 시즌이 끝날 때마다 은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임영희는 “주위에서 계속 더 하라는 권유를 많이 하신다. 고민은 더 해봐야겠지만 아직은 특별히 아픈 데가 없으니 선수생활을 더 이어가는게 맞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제 후배 선수들이 많이 올라섰으니 그들이 팀의 주축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뛰게 될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젠 후배들 옆에서 돕는 역할을 더 많이 해야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영희는 쑥스럽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는 “올 시즌 남편이 거의 모든 경기를 보러 와서 응원을 해줬다”면서 “경기 후 얼굴을 볼 수 있으니 버틸 수 있는 힘이 됐다. 항상 모든 것을 내 위주로 맞춰줬는데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힘겨운 시즌을 행복하게 마친 임영희는 “우승 여행을 다녀오고, 마산 친정에도 가야겠고, 남편과 여행도 좀 가야겠다”며 웃었다. 진짜 MVP 박혜진에게는 “혜진아 그만 미안해 했으면 좋겠다. 정말 니가 올 시즌 훌륭히 잘 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축하를 건넸다.

그리고 한 살을 더 먹고 치르게 될 다음 시즌의 더 험난한 도전도 두려움 없이 맞서겠다고 했다. 임영희는 “도전받는 입장이 부담스럽지만 그걸 이겨내고 우승을 이룬다면 기쁨이 더 클것이다. 비시즌 훈련을 벌써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다시 잘 준비하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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