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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챔프’ 김해림 “사드 중계 보복? 오히려 더 유명해졌어요”

“TV 중계팀에 섭섭한 마음은 없어요. 그 분들도 그렇게 찍고 싶지는 않았을 거예요.”

처음엔 좀 황당했다. 프로골프 대회 중계에서 우승 순간에 주인공의 얼굴을 내보내지 않았다니….

하지만 마음씨 넓은 그답게 주변 상황을 이해하고 훌훌 털어버렸다. “오히려 이슈가 돼서 감사해요”라고 할 정도로.

김해림이 지난 19일 중국 하이커우 미션힐스 골프장에서 열린 SGF67 월드레이디스챔피언십 마지막날 연장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뒤 손을 들어 기뻐하고 있다. /KLPGA 제공

지난 19일 중국 하이커우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2017년 첫 대회 SGF67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해림(28·롯데)은 시상식 후 숙소에 돌아가 인터넷 기사를 보고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았다. 말로만 듣던 중국의 ‘사드 보복’ 여파가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까지 미칠 줄이야….

한국, 중국, 유럽 여자프로골프 투어가 공동 주최한 이 대회에서 롯데 소속인 김해림이 연장전 끝에 우승하자 중계를 맡은 중국 CCTV는 김해림의 얼굴을 화면에 크게 잡지 않았다. 한국 정부에 사드 부지를 내놓은 롯데 소속 선수였기 때문이다. 우승 퍼트 때는 발만 보여주었고, 우승 확정 세리머니를 펼치는 선수들도 작게 처리했다. 김해림 모자의 ‘LOTTE’란 글자가 보이지 않게 시상식 때도 카메라 앵글을 아래에서 비쳤다.

김해림이 지난 19일 중국 하이커우에서 열린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고 밝게 웃고 있다. / KLPGA 제공

김해림은 한국으로 돌아와 2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하이커우에서 우승 먹었습니다. 비록 얼굴없는 플레이어였지만, #햄볶아요”라고 올렸다.

스스로 ‘얼굴없는 플레이어’라고 했지만 김해림은 오히려 더 ‘유명’해졌다. 중국의 옹졸한 태도에 분노한 팬들의 격려와 축하, 칭찬이 더 많이 쏟아졌고 미디어에서도 사회적 이슈로 관심을 보였다. “지난해 그냥 우승했던 때보다 더 많이 주목을 받았어요. 내가 이런 상황에서도 우승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도 기분 좋고.”

다만 현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디펜딩 챔피언으로 나설 내년 대회 때면 한국과 중국의 갈등이 해소되길 바랄 뿐이다. 시상식 때 김해림은 “정치는 잘 모르지만, 한·중 교류가 활발하게 되살아나길 바란다”고 말해 현지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김해림은 지난 겨울 동안 식사요법과 근육운동을 착실히 하면서 드라이버샷 비거리를 10m 가량 늘렸다. 그 덕에 김해림은 대회 첫 날부터 상위권으로 나섰고, 마지막날 배선우(23)와의 연장전에서도 이길 수 있었다.

“파5에서 연장전이 열린게 저한테는 이점이 됐어요. 저는 투 온이 가능했고, 선우는 힘든 위치에 있었으니까. 전에는 선우랑 비슷하게 쳤거든요.”

KLPGA 투어 데뷔 9년 만인 지난해 5월 교촌 허니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우승을 따낸 김해림은 이후 메이저대회 KB금융스타챔피언십에서 2승을 거두며 늦바람을 내고 있다. 올해는 첫 대회부터 우승했으니 내친 김에 시즌 4승을 목표로 정진하고 있다. 상금랭킹 3위가 우선 목표지만, 상반기 성적이 좋으면 상금왕으로 상향 조정할 계획이다.

상금의 10%를 꼬박꼬박 기부해 ‘기부천사’로 잘 알려진 김해림은 “지금까지 3억원 가까이 기부한 것 같아요. 목표가 10억원인데 그러면 많이 우승해야해요”라고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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