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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 “AI는 두렵지만 함께하고픈 상대”

박정환 9단, 미위팅 9단, 가토 히데키 딥젠고 프로젝트 대표, 이야마 유타 9단(왼쪽부터)이 시상식 무대에 서 있다.

“제 바둑이 많이 성장했을 것 같아요.”

한국랭킹 1위 박정환 9단이 다시 한번 세계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박9단은 우승의 기쁨보다 ‘패자’에 대한 두려움부터 전했다. 인간바둑계를 침공한 인공지능(AI)의 기세가 강렬하고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박9단은 최근 일본기원 관서총본부에서 막을 내린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일본의 1인자 이야마 유타 9단, ‘일본판 알파고’로 불리는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딥젠고’, 중국의 2인자 미위팅 9단을 연파하며 초대 챔프에 올랐다.

한·중·일을 대표하는 최강자들 외에 AI ‘딥젠고’가 출전한 이번 대회는 개막 전부터 세계적 관심을 모았다. 인간과 AI가 어우러져 자웅을 겨루는 첫 대회이기 때문이다. 그 무대에서 박9단은 인간에게도, 신기함을 넘어 이제 두려움의 대상으로 다가온 AI에게도 승리했다. 2015년 2월 LG배 이후 2년1개월 만에 기록한 생애 세 번째 세계 제패이기도 했다.

박9단은 40개월 연속 국내랭킹 1위를 지키고 있는 한국바둑의 에이스다. 현재 세계 1인자로 평가받는 중국의 커제 9단과도 4승4패로 어깨를 나란히 한다. 지난해와 올해만 놓고 보면 3승1패로 커제 9단을 압도할 정도로 강력한 실력을 갖췄다. 하지만 세계대회에서 기대만큼 성적을 내지 못해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우승 후 박9단은 스포츠경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대회를 통해 내 바둑이 많이 성장했을 것”이라며 “올해에는 여러 세계대회에서 좀 더 좋은 성적을 남길 수 있을 듯하다”고 우승 소감을 전했다.

박9단은 대회에 참가할 때만 해도 우승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딥젠고의 실력이 상당히 강하기에 어떻게든 2등만 하는 게 목표였다고 했다. 사실 딥젠고는 이번 대회에 앞서 1622국을 소화하며 1316승306패(승률 81.1%)를 기록했다. 그중 프로들과도 615승240패로 71.9%의 높을 승률을 올렸고, 이후에도 계속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려움을 갖기에 충분한 상대였고, 딥젠고는 이번 대회에서 실제로 일본의 1인자 이야마 유타 9단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딥젠고는 박9단과의 대결에서도 박9단을 위기에 몰아넣을 만큼 위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끝내기 때 치명적 약점을 보여서 문제이지, 그 전까지는 세계 최강자들에게 절대 밀리지 않는 기력을 과시했다.

박9단 역시 “이야마 유타와 미팅위 등 일본·중국 최강자들과의 승부도 어려웠고, 특히 딥젠고와의 대국은 초·중반에 내가 큰 실수를 저질러 후반까지 상당히 나빠서 원래 돌을 거두는 게 정상이었다”며 “준비한 것이 많아서 끝까지 열심히 둬 행운을 잡을 수 있었다”고 딥젠고의 기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번처럼 인간과 AI가 함께 어우러지는 대회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런 대회가 계속 열린다면 좋을 듯하다”며 “대회에 참여해 함께할 수 있다면 영광스럽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의 실력이 너무 강하고 계속 늘고 있기 때문에 좋은 점 못지않게 두려운 기분도 커진다”고 덧붙였다.

AI와 인간의 승부는 바둑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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