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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호의 PM 6:29] ‘최태원 쇼’는 리바이벌될 수 있을까

한화 이동훈이 지난 24일 대전 KIA전에서 홈스틸에 성공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 제공

2013년 5월23일, 삼성-LG전이 열린 대구구장. 1-1로 맞서던 6회초 2사 1·3루에서 희한한 ‘홈스틸’이 나왔다.

삼성 포수 이지영이 투수 윤성환의 공을 받아 돌려주려는 순간, LG 3루 주자 권용관이 홈을 파고들었다. 윤성환이 공을 받아 급히 홈으로 던졌으나, 몸을 던진 권용관이 더 빨랐다. 삼성 선수들은 황당해했다. LG 선수들은 환호했다.

권용관의 질주는 홈스틸로 기록되지 못했다. 논란 끝에 야수선택으로 표기됐다. 그러나 그날의 홈스틸은 역전 만루홈런보다 힘이 셌다. LG는 그날을 계기로 완전히 다른 레이스를 시작했다.

LG는 홈스틸을 결승점을 뽑고 3-2로 승리하며 독주 중이던 삼성과 3연전을 위닝시리즈로 마무리했다. LG는 삼성을 만나기 전까지 15승20패로 7위까지 처져 있었다. 2003년부터 지속된 ‘가을야구 불발’의 역사가 11년째로 늘어갈 가능성이 짙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LG는 삼성전 위닝시리즈를 시작으로 9연속 위닝시리즈 행진을 이어갔고 그 여세로 정규시즌 2위까지 올라섰다.

당시 3루 코치 박스에 있던 최태원 주루코치는 지금 한화의 1루코치로 자리를 옮겨와 있다. 최 코치는 당시 이지영이 공을 잡아 투수에게 넘길 때 ‘아리랑 볼’로 슬며시 토스하는 습관 한 가지를 쥐고 있었다. 시즌 중, 한번쯤 시도 타이밍을 살피던 중 홈스틸을 감행할 찬스를 잡은 것이었다.

최 코치는 지난 24일 대전 KIA전에서 다시 한번 주먹을 불끈 쥐어볼 만한 장면을 만났다. 2-2이던 8회말 2사 만루에서 KIA 임창용이 공을 던지려할 때, 3루주자 이동훈이 홈스틸에 성공했다. 한화 선수들 역시 환호했다.

사실, 그날의 작품은 최 코치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었다. 더그아웃의 김성근 감독이 공을 오래 쥐고 있는 임창용의 움직임을 살피며 이동훈에게 사인을 줬고, 그게 실행에 옮겨진 것이었다.

그러나 작품 주인을 가릴 문제가 아니었다. 최 코치는 굉장히 흐뭇했다. 겨우내 캠프에서 선수들과 소통하며 얻어내려 했던, 선수들의 의식전환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한화는 올해 시범경기에서 유례 없이 열심히 뛰었다. 시범경기 팀 도루 공동 2위(12개)에 올랐는데, 그보다 단타를 2루타로 만들거나 연속안타에 1·2루가 아닌 1·3루로 찬스를 키우는 베이스러닝이 자주 나온 것이 더욱 돋보였다.

최 코치는 “스프링캠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뛰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말을 자주 했다. 말하자면 ‘아, 쟤도 뛰네. 그럼 나도 뛸 수 있어. 이게 되는 구나’라는 생각을 공감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두려움을 버리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에 가장 신경을 썼다”고 덧붙였다.

야구의 달리기는 육상과는 다르다. 육상이 물리적 스피드와 반응 속도의 싸움이라면, 야구의 달리기는 뛰는 타이밍을 잡는 것부터 시작한다. 도루를 하려면 상대 배터리 습관을 파악하고, 도루 시점의 구종까지 읽어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한 베이스를 더 가려면 타구 바운드 방향과 해당 외야수의 어깨 등에 대한 계산이 따라줘야 한다. 대부분은 주루코치가 선수들과 함께 만드는 데이터베이스를 기초로 이뤄진다.

뛰는 야구가 무서운 것은, ‘뛴다’는 신호만으로도 상대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거포와의 승부는 타석의 결과로 끝나지만, 빠른 타자와 승부에서는 다음 상황을 두고 거듭 가정을 해야 한다. 피로도가 클 수밖에 없다. 그만큼 뛰는 팀은 가볍게 달릴 수 있다. 화려한 베이스러닝 하나가 큰 반전 효과를 갖고 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 코치는 “팀이 반전을 하는 데는 주루 플레이 만큼 좋은 게 없다. 감독님께서 주문하신 게 여러 개 있고, 준비도 했다. 또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2008년부터 9년간 포스트시즌에 실패하고 있는 한화는 비로소 뛰기 시작했다. 바람은 계속 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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