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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열정 선생’ 장혁 "연기는 액션과 리액션이다"

“연기는 자기 생각을 남에게 던져주는 거예요. 내 것을 채워가면서 또 대중에게 내 것을 던져야 하는 게 배우인데, 제가 식어있을 수 없잖아요”

1997년 SBS 드라마 <모델>로 데뷔한 장혁은 어느덧 21년 차 배우가 됐다. 그는 액션 장인, TJ, 원조 반항아, 용띠클럽 멤버 등 수식어가 많은 배우다. 그러나 그를 제일 잘 설명하는 말은 뭐니뭐니해도 ‘열정장혁’이 아닐까.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장혁은 강산이 두 번 바뀔 세월 동안 켜켜이 쌓아온 자신만의 연기 철학을 토해냈다. 그는 연기하며 무수한 벽을 만났고, 그 벽을 넘어가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 “리액션이 나를 살렸다”

“스펙트럼을 넓혀 놓아야 나이가 들어도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어요.”

장혁은 지난달 23일 개봉한 영화 <보통사람>(감독 김봉한)에서 연기 인생 세 번째로 악역을 맡았다. 관객수가 고작 35만명에 그치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악역으로 나선 그의 연기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국가를 향한 나름의 신념과 소신을 주장하는 최연소 안기부 실장 ‘최규남’으로 분해 힘이 있는 표정과 말투로 극을 장악했다.

“규남은 극 중 모든 사건을 만든 장본인이자, 어떤 사건을 파헤치면 맨 마지막에 나오는 인물이에요. 그래서 직접적으로 캐릭터를 설명하기보단 관객이 궁금하게끔 하려고 대사를 감정없이 툭툭 던졌어요. 그냥 거대한 벽, 그 시대의 시스템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배우 장혁. 사진 sidusHQ.

드라마 <추노>부터 <운명처럼 널 사랑해>, 최근 종방한 <보이스>까지, 장혁은 대중에게 악보다는 선에 서서 인간애를 말하는 배우로 익숙하다. 그는 인간미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인물을 자기 내면과 어떤 싸움을 벌이며 연기했을까. 최규남에 대한 그의 변을 들어봤다.

“배우들은 아무리 나쁜 역이라도 관객을 설득시키기 위해 노력해요. 최규남은 그저 목적을 빨리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에요. 학교 선배인 추재진(김상호)을 심문할 때도 그는 ‘제가 원하는 걸 줘요, 그럼 힘들지 않아요’라는 생각을 하고 부탁을 한 거예요. 그런데 재진이 거절하니 ‘법대로 하겠다’고 자신의 규율을 주장하면서 차가워진 거죠. 어찌 보면 사람을 도구로 본 건데, 규남을 그렇게 만든 건 시대적 상황이니까, 저는 연민을 갖게 되더라고요.”

배우 장혁. 사진 sidusHQ.

액션과 리액션은 드라마를 굴리는 내연기관이다. 이야기가 나오니 그는 이런 바람을 툭 하고 내뱉었다.

“예전엔 액션이 나를 살린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상대의 리액션이 저를 살려주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 동료배우를 살리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 “연기도 액션처럼 한다”

수준급의 절권도 실력을 갖추고 있는 장혁은 작품마다 대역 없이 액션 연기 합을 맞추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는 극 초반 가수 지영미에게 주먹을 날리는 장면 외에 액션을 찾아볼 수 없다.

“제가 액션을 좋아하고 심지어 잘하는데요. 액션 배우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기술적인 것에 치중하면 캐릭터가 산으로 갈 수 있으니 최적화된 순간에 액션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알고 보니 장혁이 연기를 해오면서 지켜온 것은 ‘액션을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연기에 대한 열정이었다.

“제가 복싱을 하잖아요. 연기도 복싱처럼 리듬감과 박자감을 느끼며 해야겠더라고요. 이 대사를 정박으로 갈지 엇박으로 갈지 같은 거요.”

배우 장혁. 사진 sidusHQ.

대체 이러한 열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전 현장에서 힘을 얻어요. 복싱선수들을 보면 무수히 많은 경기를 하면서 자기의 스타일을 만들어가잖아요. 배우도 마찬가지예요. 작품이 쌓이면서 독보적인 색깔을 갖게 되죠.”

배우 장혁. 사진 sidusHQ.

앞으로의 장혁은 어떨 것 같냐고 하니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모르겠어요. 초심을 잃고 교만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지금보다 열정이 더 불타오를 수도 있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데뷔 초 신인 당시를 떠올렸다.

“97년도에 드라마 <모델> 촬영을 하러 여의도로 가던 중 느낀 새벽공기가 아직도 기억이 나요. 그때 실수 했던 것, 떨면서 선배들 앞에서 첫 대사를 하던 기억, 현장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아직도 생생해요. 기억은 그대로인데 시간만 지나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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