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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완성시킨 최태웅-문성민 브로맨스 “이런 우승 스토리 흔치 않죠”

현대캐피탈의 최태웅 감독(왼쪽)과 문성민이 지난 7일 여의도 현대캐피탈 본사 앞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당신이 나를 완성시켰어(You complete me).”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남자 주인공이 사랑을 고백할 때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로맨스물에서나 어울릴 법한 말이지만 2016~2017시즌 프로배구에서 이 스토리라인이 히트를 쳤다. 10년 만에 현대캐피탈을 챔피언으로 이끈 최태웅(41) 감독과 토종 공격수 문성민(31)은 서로의 존재를 통해 배구인생 퍼즐을 완성했다.

최연소 챔프전 정상에 오른 최 감독은 두번째 시즌 만에 첫 감독상을 품었다. 리그 정상급 공격수로 활약하면서도 우승이나 상과는 거리가 있었던 문성민은 생애 첫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를 받은 데 이어 2시즌 연속 정규리그 MVP까지 받았다. 국내 선수가 MVP 2관왕에 오른 것은 V리그 최초. 문성민은 “최태웅 감독님을 만나 다시 태어났다”고 말했다. 우승할 때 나오는 흔한 스토리와는 다른 사제지간의 정이 느껴진다. 남자들간의 끈끈한 정을 뜻하는 ‘브로맨스’가 제법 어울리는 사이다.

최 감독도 “우승을 하더라도 이런 스토리가 나오는 팀이 없지 않나”며 “사실 둘이 있을 때는 특별한 표현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시선 때문에 다른 선수들에게 더 다가서려고 하는데 어차피 이렇게 된거 이 스토리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면서 껄껄 웃었다. 쑥쓰러워하던 문성민도 “사실 감독님이 다른 선수들도 잘 챙겨주시는데 미디어에 그렇게 노출된 것”이라면서도 그런 상황을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챔프전에서 1차전을 내준 최 감독은 2차전에서 5세트 혈투 끝에 승리한 뒤 문성민에게 미안해하면서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훔쳤다. 1차전에서 부진했던 문성민에 대해 “큰 경기에 약하다”고 직설적으로 지적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문성민은 섭섭해하기보다 오히려 감독에게 미안해했다. 어떤 지도자보다 선수 편에 서서 배려하려는 최 감독의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2차전부터 마음을 다잡은 문성민은 현대캐피탈의 역전 드라마 중심에 섰다. 우승이 확정되자 문성민도 최 감독과 뜨겁게 포옹하며 눈물을 흘렸다. 최 감독은 “4·5차전 경기를 보면서는 나도 놀랐다. 부담감을 이겨낸 선수들의 경기력이 무서울 정도였다”며 “무엇보다 성민이가 앞장서서 표정이 밝아지니 팀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시리즈를 통해 ‘눈물’의 아이콘이 됐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는 ‘눈물’이 연관 검색어로 올라 있다. 최 감독은 “시상식에서도 울었다는 분들이 많은데 절대 아니다. 요즘 너무 피곤해서 눈이 충혈돼 받는 오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는 정말 눈물 없는 사람이다. 현역 때는 선배나 코치한테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훈련했다. 그런데 성민이 앞에서는 벌써 세 번째다. 내 아들도 아닌데”라고 말했다.

무려 10년 차 선·후배지만 이들에게선 ‘각별함’이 느껴진다.

국가대표 세터였던 최태웅과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는 대학생 문성민은 2006년 대표팀에서 처음 만났다. 2010년 6월부터는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고 한 코트에 서면서 두터운 신뢰를 쌓았다. 2015~2016시즌을 앞두고 현대캐피탈 초보 감독과 주장이 된 뒤로는 서로에게 날개가 돼줬다.

첫 시즌 챔프전에서 실패를 맛본 뒤, 단 둘이 경기도 인근으로 다녀온 2박3일 여행도 화제였다. 문성민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스타일임을 잘 아는 최 감독의 스킨십이었다. 문성민은 “감독님이 저랑 더 대화하시려고 자리를 만들었는데 내가 살가운 스타일이 아니라서 많은 얘기는 못했다. 대신 맛있는 것 먹고 좋은 데 보고 왔다”고 했다. 하지만 최 감독이 ‘이번에 한번 더 갈래?’라는 물음에는 ‘절친’ 신영석을 추천하면서 완곡하게 거절했다.

현대캐피탈의 최태웅 감독(오른쪽)과 문성민이 지난 7일 여의도 한 커피숍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웃고 있다. 김영민 기자

그렇지만 우승의 스포트라이트가 자신들에게만 집중되고 있는 것에 마음은 편치 않다. 최 감독은 인터뷰 내내 “내가 코칭스태프에 일을 너무 많이 시킨다. 이제 2년차 감독인데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받아주는 코칭스태프가 너무 고맙다”고 강조했다. 문성민도 수상 소감을 밝히는 자리마다 “팀이 잘 움직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희생한 동료 덕분에 팀이 우승할 수 있었고, 내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라며 공을 돌렸다.

여전히 꿈처럼 느껴지는 우승이다. 최 감독은 “시상식 때 축하를 많이 받아서 조금 실감이 났는데 막상 끝나니 누군가 와서 ‘재경기 해야 한다’고 말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다. 어쩌면 우승했던 그날 느낌을 잊기 싫은 마음 같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나 우승의 달콤함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둘은 현대캐피탈 왕조를 다시 세우는 데 의기투합했다. 최 감독이 “우승을 하고 보니 또 하고 싶다. 통합 우승도 해보고 싶다. 할 수 있을 때 계속해야 한다”고 하자 문성민은 “감독님은 늘 우승 뒤에 위기가 올 거라고 말씀하셨다. 고참이자 주장으로 그 위기를 뛰어넘고 싶은게 욕심”이라며 화답했다.

문성민은 돌아올 새 시즌에도 주장을 맡는다. “가끔 성민이가 경기에서 뛰는 것을 보면서 ‘우리팀에 용병이 한 명 더 있네’라고 생각할 정도로 듬직하다. 주장으로서도 강한 카리스마로 팀을 잘 끌어줘 만족한다”는 최 감독은 말에서 문성민을 향한 더 단단해진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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