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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과장’ 히로인 ‘꽝숙이’ 임화영 “누군지 몰라보셔야 더 힘이나요!”

배우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진짜 소원이 ‘배역 뒤에 잘 숨는 일’인 이들이 있다. 아직 이름은 누구인지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들은 이렇게 대중이 자신의 진짜 이름을 모르고 배역으로 기억해줄 때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그렇게 배역 뒤에 잘 숨는 일을 하는 이들은 주머니 속 송곳이 튀어나오듯 언젠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배우 임화영. 이 이름을 대면 잘 모르는 이가 많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드라마 <김과장> 속 ‘꽝숙이’라면?

우리나이로 올해 서른넷이 된 임화영은 드디어 사람들이 자신을 떠올릴 만한 배역을 연기생활 8년여 만에 처음으로 갖게 됐다. 물론 연기를 그동안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짝패>의 언년이, <신의>의 초향이, <시그널>의 김혜수 동생 등이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퇴마:무녀굴>에서 머리를 하얗게 염색한 석정, <여교사>의 윤미, <어느날>의 김남길의 아내 등이 다 그다. 이 정도면 정말 잘 숨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KBS2 드라마 ‘김과장’에서 오광숙 역을 연기한 배우 임화영이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스포츠경향과 인터뷰를 갖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저의 연기 방향성…. 아직 정확하게 생각해 본 것은 없는데요. 그래도 여러가지를 떠나서 그렇게 배역에 잘 녹아드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저로 인해서 작품이 잘 굴러갔으면 하는 거죠. 강한 장르물도, 따뜻한 가족 이야기도 이렇게 극과 극의 이야기도 저를 통해서 잘 풀렸으면 하는 거죠.”

그의 광고 출연 이야기를 하면 좀 더 알아보는 대중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2012년 등장했던 결혼정보회사 광고의 참한 처자, 2014년 통신 광고의 취업준비생, 2015년 항공사 광고의 보육교사가 다 그다. 광고에서는 참한 이미지가 강조됐다면 그는 영화, 드라마 연기에서는 넓은 폭을 자랑한다. 이번 ‘꽝숙이’도 마찬가지다. 그는 최근 종방한 KBS2 드라마 <김과장>에서 극중 성룡(남궁민)에게 스카우트 돼 덕포흥업 경리과 사원이 되는 다방 종업원 출신 오광숙을 연기했다. 회사 돈 빼돌리기만 즐기던 주인공이 얼떨결에 정의의 사도로 다시 서는 드라마에서 광숙이는 성룡이와 함께 극의 흥미를 돋우는 백점짜리 양념이 됐다.

“이미 감독님이나 작가님이 광숙이에 대한 이미지가 확고하게 있으시더라고요. 뽀글머리에 색조화장 그리고 옷도 과하게 입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처음에는 안 어울릴 것 같았는데 신기한 게 점점 머리와 화장이 더해지면서 느낌이 나오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촬영현장에서 광숙이로 변신하면 저도 모르게 흥이 나고 신이 났던 거죠. 여태까지 했던 연기가 조금 차분했다면 이번 연기는 연기자로서 만나고 싶은 인물을 만난 셈이었어요.”

KBS2 드라마 ‘김과장’에서 오광숙 역을 연기한 배우 임화영이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스포츠경향과 인터뷰를 갖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김과장>에 함께 등장했던 서율 역 이준호는 날이 선 캐릭터의 모습을 위해 하루 한 끼만 먹고 사람도 안 만나는 등 배역의 감정을 입으려 노력했다. 그에 비해 임화영의 현장은 신나기 그지없었다. 광숙이의 모습으로는 어떤 연기도 해도 됐다. 어떤 표정이나 몸짓을 해도 됐다. 광숙이라는 강한 개성 안에서 그는 폭넓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남궁민 등 함께 호흡을 맞추는 배우들의 배려도 임화영을 더욱 신나게 했다.

“제가 출연한 영화 <어느날>이 또 개봉을 했어요. 거기서는 감정선을 따라, 아무래도 아픈 친구다 보니 괴로운 감정이 많이 들어요. 하지만 광숙이는 또 발랄하니까 저 스스로도 밝아지는 것 같았어요. 매니저 분이 굳이 도망을 가는데도 계속 현장에서의 발랄한 모습을 찍어서 회사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시니까 그게 또 화제가 되곤 했죠.”

전통예술고등학교에서 음악연극을 전공했던 그는 서울예대 연극과를 나온 연극학도였다. 그가 처음 얼굴을 알린 작품도 뮤지컬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연극 <오월엔 결혼할꺼야>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무대연기였다. 임화영을 기르고 낳은 곳이 무대였지만 아직 제대로 돌아갈 엄두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 꼭 언젠가는 연극과 뮤지컬, 영화와 드라마를 모두 넘나드는 배우가 되고 싶다.

배우 임화영의 KBS2 드라마 ‘김과장’ 연기 장면. 사진 유본컴퍼니

“<광해…> 끝낸 것이 4년 전이에요. 항상 좋은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무대 연기도 하고 싶어요.”

임화영은 생긋 웃으면서 기자가 아닌 함께 배석한 소속사 고위 관계자를 쳐다본다. 이런 면도 광숙이를 드러내게 한 하나의 바탕이었으리라.

그는 연기 빼고는 다른 이렇다 할 취미가 없는 다른 배우들처럼 평소에는 집에만 있는 ‘집순이’다. 아직은 알아보는 사람이 많이 없어 서점에 가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책을 읽고,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떠는 일을 좋아한다. 만화도 좋아한다. 특히 1997년작 돈블루스, 게리 골드먼 감독의 애니메이션 <아나스타샤>는 그의 ‘인생 애니’와 다름없다. 디즈니, 픽사, 일본 지브리에서 나오는 다양한 애니메이션이 그의 자양분이다. 어쩌면 만화 속의 인물들처럼 영역 구분이 없고, 캐릭터 구분이 없는 진정 자유로운 연기세계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기를 하면 할수록 기존의 생각이 많이 깨어져 나가는 것 같아요. ‘아, 얘가 이런 연기도 했었구나’ ‘얘가 얘구나’ 그러한 반응이 제게는 너무 중요해요. 저라는 한 사람에서 보이는 게 아니라 극 안에 잘 버무려졌구나. 제 스스로 판단하기 보다는 제 3자의 입장에서 그만큼 잘 배역이 묻어나는 그런 연기를 하고 싶죠.”

KBS2 드라마 ‘김과장’에서 오광숙 역을 연기한 배우 임화영이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스포츠경향과 인터뷰를 갖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김과장>을 마친 그는 영화 <어느날>의 홍보 때문에 필리핀 세부 포상휴가를 함께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럴만한 일정들이 기다리고 있다. 고수, 박성웅, 김주혁과 호흡을 맞춘 스릴러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과 단편 영화 <시절>, 음악영화 <픽션 앤드 어더 리리얼리티>가 줄줄이 선뵐 준비를 하고 있다. 임화영은 이 작품들 속에서도 대중에게 섣불리 이름을 알리지 않고 요리조리 숨겠지만 이제 ‘꽝숙이’를 한 번 알아본 대중들은 그의 모습을 콕콕 집어내 기억할 준비를 했을 것이다.

“정말 ‘열어놓고 본다’는 말이 너무 광범위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만큼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고 가고 싶어요. 광숙이어서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저, 이런 친구라고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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