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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파적인 씨네리뷰] ‘어느날’ 사랑없는 젊은남녀는 뭘 하고 노나요?

봄날이다. 벚꽃이 날리고 남녀는 사랑을 한다. 4월 어느날 연인이 손을 잡고 여의도의 벚꽃을 보러 가는 건 하나의 불문율이자 관습이 됐다. 영화관이라고 가만 있을까, 그 틈새를 파고 들고 로맨스가 담긴 영화를 건다. 봄바람을 타고 온 영화 <어느 날>(감독 이윤기)이 지난달 30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골자는 익숙하다. 보험회사를 다니는 강수(김남길)는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중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환자 미소(천우희)를 만난다. 여느 남녀가 등장해 서로 만남을 이어가는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 여자 그대로가 아닌 그의 영혼과 마주한단 거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미소는 강수만을 둔다. 미소는 오로지 강수에게만 보이고 강수는 그런 미소와 함께하며 웃는다. 둘은 서로를 알아가며 멜로드라마가 취하는 노선을 답습하지만, 관계는 거기서 멈출 뿐 발전하지 않는다. 귀신과 인간의 만남이라는 장애물이 존재하는 것 외에도 강수는 아직 아내를 잃은 슬픔에서 제대로 헤어나오지 못했고, 미소는 가족사(史)로 골치가 아프다. 제 코가 석자인 둘은 적절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연인도 아닌 그렇게 친구도 아닌 ‘사랑과 우정 사이’를 유지한다.

영화 ‘어느날’ 포스터 사진. 오퍼스픽쳐스

이 쯤에서 관객들의 머리 위 떠오르는 물음표는 일반적인 정보처리과정의 결과다. 메가폰을 잡은 이윤기 감독은 <멋진 하루> <여자, 정혜> <남과 여> 등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알 수 있듯 전형적인 로맨스영화를 만든 연출가다. 이 영화 역시 그 일련의 작품들과 유별하지 않고, 등장하는 두 배우 역시 잘생기고 예쁜데다 젊기까지 하다. 영화의 두 기둥, 감독과 배우의 조건이 작정한 듯 관습적 해석을 이끈다. 이 반전 아닌 반전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남녀가 만나 사랑만 한다면 얼마나 구태의연할까. 젊은 남녀가 만나 사랑 까짓 것 안하면 또 어떤가. 허나 이리 남녀가 만나 사랑않고 다른 무엇을 한다손 쳐도 여름날 무엇처럼 축 늘어져 버린다면, 흔한 사랑한 것보다 못하지 아니한가. 한 수 접고 들어보자 싶어도 둘이 만나 벌인 판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울고, 석양을 바라보고, 소리 지르고, 사고도 난다. 로맨스를 탈피하고 새 껍질을 입고자 했으나 그 수준은 신파를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는 붕 떴고 관객은 ‘보기’ 위해 힘쓰다 보니 진이 빠진다.

영화 ‘어느날’ 스틸컷 사진. 오퍼스픽쳐스

이 아스라한 이야기를 잡아주는 힘은 배우들 뿐이다. 어떤 장르이든 또 이야기이든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구축한 김남길과 믿고 보는 배우로 발돋움한 천우희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눈여겨 볼 일이다. 줄곧 어딘가 사연 있는 인물을 맡아 묵직한 연기를 선보였던 두 배우는 어쩌면 좀 더 가볍고 우리네 현실과 맞닿아 있는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천우희는 최근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간 맡아온 역할들과의 간극을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밝게 웃으며 연기하는 천우희를 어색하게 느낄 관객들을 염두한 말이었지만 기우라 생각될 만큼 영화를 든든하게 받쳐든 그다. 어딘가 새는 구석이 있는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그 구멍을 좁힐 수 있었던 건 십중팔구 배우들의 공이다. 5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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