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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혼술남녀’ 故 이한빛PD 아버지 “아들은 해고된 비정규직 계약금 환수 괴로워했다”

tvN <혼술남녀> 조연출 사망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해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이었던 이한빛씨가 입사 9개월 만인 10월 26일(드라마 종영 이틀 후)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스포츠경향은 이날 오후 4시쯤 이한빛PD의 아버지 이용관씨(59)를 서울 도봉구의 한 병원에서 만나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이씨는 지난 13일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간농양이 발견돼 중환자실에 4일 입원 끝에 이날 일반 병실로 옮겼다.

고 이한빛PD의 부친 이용관씨가 18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이씨는 “한빛이 엄마가 먼저 쓰러질 줄 알았는 데, 내가 먼저 이렇게 됐다”며 “그간 상심이 커, 몸을 돌보지 않았더니 이런 일이 생겼다. 스트레스로 술을 마셔도 잠이 오지 않아 술을 계속 마셨더니 결국 면역력이 약해져 병이 생겼다”고 말했다. 여전히 잔 기침을 이어가던 이씨는 “아들이 죽는 그날까지, 그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한 부모의 죄가 크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2주 후쯤 퇴원할 예정이다. 아래는 아버지 이씨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사건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

“지난해 10월 21일 실종됐다. 회사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25일에서야 알렸다. 회사 사람들이 집으로 온게 아니라, 우리가 회사로 가 그 사실을 확인했다. 회사 관계자는 실종된 아들을 업무 부적격자로 몰았다. 그렇게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다음날인 26일, 아들은 주검이 돼 우리에게 돌아왔다.”

이씨의 당시 기억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씨의 동생인 이한솔씨가 지난 17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도 “CJ는 자체 진상조사에서 형의 근태 불량에 사고 원인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형이 생전 남긴 녹음파일과 모바일 메신저 대화 내용엔 (제작진의) 욕과 비난이 가득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CJ E&M 관계자는 이날 스포츠경향과의 통화에서 “공식적인 입장이 없다”며 “사건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내용을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연말부터 지난 2월까지 수개월 동안 자체 진상조사를 했다”며 “ 유족들이 공개한 다양한 녹음본이라던가 카톡 메시지 등이 공유가 됐다면 정황 증거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됐겠지만 공유가 되지 않았다”고 조사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관련 직원들의 인터뷰 조사가 대부분이었다. 유족들이 원한 관련 직원 직접 인터뷰는 협조하지 못했다. 우리 입장에서도 어려운 방법이었다”고 덧붙였다.


고 이한빛PD의 부친 이용관씨가 18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이씨의 손에는 링거 주사가 꽂혀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당시 아들이 고통을 겪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아들은 <혼술남녀>에서 해고된 계약직 스태프의 돈을 돌려 받는 역할을 했다. 신입이기에 그런 역할을 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촬영감독의 임금이 1억원이라면 선지급금이 5000만원 정도다. 촬영이 1/4가량만 진행되고 해고됐으므로 2500만원을 돌려 받는 역할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 스태프 대부분은 받은 돈을 빚을 갚거나 전세금을 넣는 등 이미 써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들은 이들에게 돈을 달라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듯 싶다. 그런 부분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나. 비정규직의 애환을 모를 리 없는 한빛이에게는 너무 가중한 업무였던 셈이다. 회사는 그런 한빛이를 일 못하는 ×으로 치부한 듯 싶다.”

이에 대해 CJ E&M 관계자는 이한빛PD의 역할에 대해 “현장에서 조연출 역을 맡았다. 지난해 1월 입사해 3개월의 OJT 기간을 거쳐 4월에 <혼술남녀>팀에 배속됐다. 막내 입장에서 현장을 챙기는 업무를 했다. 필름을 관리하고 영수증 처리를 하며 법인카드도 소지했던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연출의 구성이 정직원과 외주사로 나눠지다보니 이를 조합하는 일도 했다”고 덧붙였다. 아버지 이씨가 주장한 ‘외주PD 계약금 환수 업무는’에 대해서는 “다른 분이 하신 걸로 알고 있다. 조심스러운 것이 그 부분을 이야기하면 유족과 다른 부분이 여러 가지 나올 수 있다”고 말을 아꼈다.

-고인은 어떤 아들이었나.

“자랑스런 아이들이었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JTBC 기자직에도 합격했으나 본인이 PD직을 원해 CJ E&M에 입사하게 됐다. 동기들 중에서도 실력이 뛰어나 (전략기획부)로 발령이 나 동기들보다 한 달 늦게 tvN으로 왔다. 회사에서는 일을 못하는 사람으로 몰아 세운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아들은 사회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인턴 월급을 털어 부당해고된 노동자(KTX 승무원)들을 돕기도 했다. 평소에도 어려운 일을 자처했다. 엄마가 안쓰러운 마음으로 봤지만 좋은 일을 한다기에 말릴 수도 없었다.”

이날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측은 “사망한 이씨는 청년 사회 문제, 비정규직 문제 관심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 해서 CJ E&M에 들어갔다”고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이씨의 증언과도 맥이 닿아 있는 부분이다.


고 이한빛PD의 부친 이용관씨가 18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고인이 된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하겠나.

“우리가 적폐청산이라고 하지 않나. 바로 그들이 적폐세력이다. 아들의 죽음 이후에도 그들은 바늘하나 찔러도 아파하지 않을 이들이란 것을 알았다. 그들은 재벌이다. 부장 몇 명이 사과한다고 해서 절대로 바뀌지 않을 이들이다. 군대문화, 비윤리적인 문화가 판치는 방송환경 뿐만 아니라 대기업이 스스로 변화해야 이런 사태가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 분명한 건 자살이 아니다. 사회적 죽음이다. 타살이다. 아들의 죽음 후에도 그들은 인간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들이 죽었는데 보상을 바라고 이러겠나. 중요한 건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시스템과 기업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바꾸는 거다. 건강이 회복되면 방송국 앞에서 1인시위를 할 것이다.”

이 PD의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는 <혼술남녀>의 제작환경에 대해 “장시간 고강도 노동이 이뤄지고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대책위 측은 “꿋꿋하게 버티던 이PD가 자살을 택했지만 회사는 고인의 죽음이 개인이 나약해서 죽은 것이다고 하면서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면서 CJ E&M 측에 사과를 요구했다.

대책위 측은 CJ E&M에 ‘회사 측의 책임 인정 및 공개사과’, ‘공개적인 진상규명 및 관련자 문책’, ‘재발방지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 한편 이날 CJ E&M ‘오펜’ 센터 개관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최규식 PD는 불참했다.

<하경헌·이선명 기자·손민지 인턴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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