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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파적인 씨네리뷰]투쟁은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나는 부정한다’

진실을 파헤치는 법정물은 대개 ‘가족’을 등장시켜 감정적 공감을 유도하기 마련이다. 단골 가게 사장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나선 변호사의 이야기 <변호인>(2013), 아들의 무고함을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 <재심>(2016), 가족의 안위를 위해 진실을 덮고 권력에 합승하려던 가장의 이야기를 그린 <보통사람>(2017) 등이 그렇다. 이러한 편견을 뒤엎고 이성적으로 문제에 접근한 ‘물건’이 나왔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 공식 포스터. 사진 (주) 티캐스트.

<나는 부정한다>는 한국의 위안부 문제만큼이나 미해결과제로 남은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총칭) 문제를 소재로 한 영국 영화다. 홀로코스트 분야의 권위자 데보라 립스타트(레이첼 와이즈)는 홀로코스트의 존재를 부인하는 역사학자 데이빗 어빙(티모시 스폴)에 맞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해내기 위한 투쟁을 벌인다. 그 과정에서 학살행위의 잔혹함을 표현하거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투쟁에 집중하기보단,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두 사람의 두뇌 싸움에 초점을 뒀다.

영화는 극적인 재미보다는 사실성에 승부수를 던졌다. 의상이나 장소를 1990년대 영국에 맞췄고, 소송과정에서 홀로코스트에 관련한 각종 자료를 제시해 신빙성을 높였다. 1996년 9월 5일부터 2000년 1월 11일에 걸쳐 진행된 총 32번의 공판과 334페이지의 판결문의 내용이 극에 압축됐지만,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변호인단과 함께 법정에서 나오는 데보라 극 중 사진. 사진 (주)티캐스트.

데보라 립스타트의 변호인단은 철저히 이성적인 판단에 기대 변론을 펼친다. 기억의 왜곡으로 인해 허점이 생기는 걸 피하고자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증인으로 법정에 세우지 않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직접 둘러보며 법정 질문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변호인단에 대한 경계를 풀지 못하고, 유태인에 대한 감정적 동요 사이에서 갈등하는 연기를 펼친 레이첼 와이즈의 연기는 작품에 현실성을 더해준다.

데보라 립스타트 역을 맡은 레이첼 와이즈 극 중 사진. 사진 (주) 티캐스트.

<보디가드>(1992), <볼케이노>(1997)를 만든 73세의 거장 믹 잭슨 감독이 정공법으로 만든 영화라 울림은 꽤 묵직하다. 양 측은 예상치 못한 반론과 주장을 제시하며 서로에게 강한 펀치를 날린다. 그래서 핑퐁 치는 맛을 보는 긴장감이 있다. 진실은 저절로 밝혀지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한국의 위안부 문제에 시사하는 점도 있다.

데이빗 어빙 역을 맡은 티모시 스폴 극 중 사진. 사진 (주) 티캐스트.

그러나 끝날 때까지 지울 수 없는 의문들이 아쉬움을 남긴다. 데보라가 자신을 돕는 변호사들을 오해하고 오해를 푸는 과정이 꼭 필요했을까, 앤서니 줄리어스(앤드류 스캇)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데보라를 이용한 것일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 없다.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것으로 그려졌던 재판관이 데이빙 어빗에게 유리한 발언으로 데보라에게 충격을 안길 때, 황당한 이유로 소송의 결론이 나왔을 때도 관객은 찝찝함을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영국드라마 <셜록>에서 모리아티 역을 맡았던 앤드류 스캇과, 셜록의 형 마이크로프트 홈즈 역의 마크 게티스가 변호인단으로 재회했다. 오는 26일 극장가에서 만날 수 있다.

■고구마 지수 3개

■수면제 지수 4개

■흥행참패 지수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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