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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사기거래 잡는 아주 특별한 ‘어벤져스 군단’을 아시나요

오전 8시30분. 아침식사를 마치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 고준형씨(37·경기 김포시)가 자신의 일터인 옆 방으로 휠체어를 굴린다.

PC를 켜고 메신저에 접속하자 이내 전국에 흩어진 동료들이 인사를 전해 온다. 서울 도봉구의 홍현승씨(27), 성남시의 신명수씨(40), 부산시 금정구의 서정원씨(27)…. 합체된 4명의 팀원은 늘 그랬듯 PC 앞에 앉아 마음과 자세를 가다듬는다. 100m 출발을 앞둔 우샤인 볼트처럼….

“다들 행복하셨죠? 오늘도 힘차게 달려 보자고요~”

온라인 거래 사기를 잡는 ‘어벤져스’의 출동이다.

준형씨 등 4명은 2100만 회원이 이용하는 국내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 ‘큐딜리온 중고나라’에서 사기·불법거래를 잡아내는 ‘쿨거래 중고나라 지킴이팀’의 직원이다.

사기·불법거래를 잡아내는 ‘쿨거래 중고나라 지킴이팀’의 고준형 사원이 게시글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들의 존재가 특별한 것은 4명 모두 활동이 자유롭지 않은 장애인이기 때문. 준형씨와 부산의 정원씨는 지체장애 1급, 김포의 명수씨는 지체장애 2급, 그리고 서울의 현승씨는 뇌병변 1급이다.

중증장애인으로 구성된 이 팀은 사기·불법거래와 유해자료 단속 등을 전담하고 있다. 이들의 존재가 더더욱 특별한 것은 이 팀이 지난 1년 동안 모두 10만건, 하루 평균 274건의 사기거래를 적발해 낸 ‘히어로’이기 때문이다. 당초 목표였던 7만건보다 40% 이상 높은 실적을 기록해 올해 1분기 가장 우수한 성과를 낸 부서인 ‘중고나라 민트급 팀’으로 승진하는 기쁨도 있었다.

“노하우요? 한마디로 성실함이죠. 재택 근무를 하니 출퇴근이 엉망일 거야, 또는 업무 안 하고 다른 짓 할 것 같아…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몸이 불편하니 오히려 딴짓을 못 한다고 봐야죠. 한번 컴퓨터 앞에 앉으면 모니터에 집중하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어려워요.”

준형씨의 설명에 정원씨가 한마디 거든다.

고준형씨

“저희 업무 시작이 원래 오전 9시30분인데 모두 8시30분이면 모두 모니터 앞에 앉아요. 몸이 불편해 준비 과정이 오래 걸리다 보니 조금씩 더 서두르는 것이죠.”

말이 쉽지, 이들의 근무는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다. 오전 9시30분(이들은 1시간 더 일찍)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빼고 꼬박 모니터와 씨름을 해야 한다.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비장애인들이라면 잠깐씩 농땡이를 부릴 여유(?)도 이들에게는 사치다.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우는 게 더 힘든 탓이다.

그런데 이렇게 모니터만 노려보다 보니 데이터가 머릿속에 쌓였다. 지난 1년간 들여다본 수많은 아이디와 전화번호, 게시글 속에 일정한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정원씨

“판매 물품이 너무 저렴하거나 지나치게 고액일 때, 또 직거래할 때 주소지가 지방이나 산골짜기일 때는 한번쯤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어요. 또 구매자는 안전거래 서비스로 구입하고 싶은데, 판매자가 굳이 택배나 직거래를 요구할 때도 혐의를 두고 들여다보죠. 뭐라고 설명하기는 힘든데…, 한마디로 감이 온다고 해야 하나요.”

일단 사기가 의심되는 게시글이 발견되면 이들의 공조가 빛을 발한다. 재택근무 팀은 불량 게시글을 처리하는 파트와 사기 게시글을 처리하는 파트로 일을 분담하고 있는데, 팀의 성격에 약간 차이가 있듯이 각각의 장기도 다르다.

한 사람이 의심이 가지만 사기라고 규정하기에는 애매한 게시 글을 메신저에 올리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조언을 한다. 또 짧은 시간에 과거 데이터를 뒤져 증거를 찾아내 주기도 한다.

“지난해 3월 입사했는데 초기에는 정말 업무 얘기만 했습니다. 처리할 신고글이 워낙 많고, 당시에는 업무가 익숙하지 않아 사적인 대화는 엄두도 못 냈죠. 그러나 요즘은 워낙 처리속도가 빨라져 틈틈이 일상의 대화도 하곤 해요. 우리 모두 처지가 비슷하잖아요.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그게 서로를 지탱하는 힘인 것 같아요.”

홍현승씨

사실 이들 ‘어벤져스’의 성실함은 각자가 느끼는 ‘일에 대한 소중함’에서 나온다. 4명 모두 정규직이 처음일 만큼 아픔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한 후 13년간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노동부가 지원했던 직장체험으로 도서관에서 도서대출·반납 일을 하고, 장애인단체의 활동가로도 일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저작권 관련 단체에서 재택 모니터링을 했던 것인데, 계약직이라서 오랫동안 하지 못해 아쉬웠어요.”

중증장애인으로 구성된 사기거래 단속 전담 부서인 ‘쿨거래 중고나라 지킴이팀’이 한 자리에 모였다. 큐딜리온은 지난 1년 동안 10만건의 사기거래를 적발해 시민들을 보호한 이들에게 지난 19일 감사패를 수여했다. 왼쪽부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남부지사 어호선 부장, 큐딜리온 이승우 대표, 신명수, 서정원, 홍현승, 고준형(이하 사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서동운 국장.

준형씨의 말을 다시 정원씨가 받는다.

“사실 저희는 대학까지 교육을 받은 경우라 계약직이라도 나름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그래도 장애가 있다 보니 애로가 많죠. 특히 언어장애 탓에 의견을 100% 전달하기가 힘들고, 상대방도 신뢰를 갖지 못하는 눈치였어요. 우리를 너무 쉽게 대하는 경우도 흔하죠.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일을 시켜 보지도 않고 판단해 버리는 경우예요. 그런 점에서 우리 회사 큐딜리온은 환상적인 직장이고 우리는 환상적인 팀이죠.”

지난 19일, 이들 어벤져스가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다. 회사 측이 장애인의 날을 맞아 이들에게 감사패와 부상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현장에는 수상자와 가족, 큐딜리온 전 직원이 참석해 이들의 성과에 박수를 보냈다.

“지금요? 200% 만족하죠. 큐딜리온에 면접 때부터 직급이 낮든지 높든지, 나이가 많든 적든, 전 직원들이 높임말을 사용해요. 무엇보다 지난 1년여 동안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게 일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굳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기는 싫지만, 온라인상에서 생겨나는 일들이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장애인은 여러 가지 선택에 있어서 제한적이지만,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일에는 더 강점이 있다고 봅니다. 기업들도 이 점을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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