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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파적인 씨네리뷰] “늙으면 죽는 것보다 쓸모 없어지는 게 두려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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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내겐 아직 먼 일이라고 자신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한국 사회 노인의 삶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영화가 등장했다. 김혜자, 송재호, 허진 등 내로라하는 노배우들이 열연한 <길>(감독 정인봉)이 노년을 바라보는 깊이 있는 얘기로 봄날 극장가를 찾는다.

영화 ‘길’ 포스터, 사진 블루블랙

<길>은 대한민국을 사는 노인들의 현주소를 다룬다. 어릴 적 고향 친구인 세 남녀의 얘기를 액자 구성과 옴니버스 혼용으로 리듬감 있게 풀어낸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선 무정한 아들 탓에 고독하게 사는 할머니 순애의 하루가 그려진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건 노인의 외로움을 산뜻한 시선으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밝은 햇살이 비치는 고급 아파트도, 음악에 따라 발을 맞추는 ‘순애’(김혜자)의 고운 자태도 우리가 늘 생각하는 ‘고독한 노인’의 이미지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처절한 신파 느낌도 전혀 없다. 이 덕분에 외로워서 사람을 부르는 ‘순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뭉클하면서도 먹먹한 울림을 전한다.

눈빛 하나, 손 떨림 하나도 예술이 되는 김혜자를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연기력을 평가하는 게 송구스러울 정도다. ‘순애’ 편은 김혜자를 만나 생명체로서 숨이 붙었다.

송재호와 허진이 각각 주인공으로 나선 ‘상범’ 편과 ‘수미’ 편도 깊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노인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타인과 소통이 삶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따뜻하게 살펴본다.

의외의 배우를 만나는 재미도 있다. 박혁권, 온주완, 김승현, 안혜경 등 유명 스타들은 작은 배역이지만 헛되지 않게 존재감을 보여준다. 특히 수미의 며느리 역으로 나온 안혜경은 이 영화에서 재발견된 배우다.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에 날을 세운 연기를 생각보다 과하지 않게 잘 해낸다. 이제는 ‘배우’란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길>은 여느 상업영화처럼 화려한 볼거리나 자극적인 스토리는 없지만 두 시간 내내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부모의 의미, 노년의 삶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또한 젊은 배우들의 연기가 간혹 튀긴 하지만 김혜자, 송재호, 허진 세 명장의 힘이 워낙 강해 모든 걸 용인케 한다. 선뜻 ‘N차 관람’도 행하고픈 욕구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다.

물론 단점도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물이나 톱 배우들이 나오는 국내 영화에 비해 경쟁력은 다소 약하다. 휴먼드라마란 장르와 라인업으로는 젊은 관객들의 주머니를 열기가 쉽지 않다. 입소문이 나기를 기대해야 하는 이유다. 5월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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