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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한국스포츠 희망을 찾아서⑥] 학생이 직접 ‘체육수업’ 만드는 용인 고림중학교

“선생님, 저 한 번 더 해볼래요.” “좋아, 옳지, 잘한다.” “미안해. 내가 타이밍을 못 맞췄어.” “힘내. 조금만 더 버텨.” “8반 이겨라.”

지난 19일 합동 체육수업을 받고 있는 용인 고림중 학생들의 표정은 밝았고 목소리는 활기찼다. 이들은 실패를 개의치 않고 계속 도전했다. 옆에서 같은 도전에 나선 친구들도 열심히 응원했다. 반 대항 대결에서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깨끗하게 싸웠다. 대결이 끝나면 서로를 격려했고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용인 고림중 3학년 학생들이 지난 19일 협동 체육수업 시간에 문어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문어발 줄다리기는 폐타이어에 줄을 매고 잡아당기는 변형 줄다리기다. 타이어를 잡아당기면 실격패한다. 이 종목은 5월12일 교내체육대회에서 3학년만 하게 된다. 고림중 제공

고림중 체육교사 5명은 올해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학년별로 5개 반이 동시에 참여하는 협동 체육수업이다.

협동수업 종목은 철봉 오래 매달리기, 윗몸 말아올리기(윗몸 일으키기), 줄넘기, 50m 달리기, 제기차기, 피구, 발야구, 축구, 탁구 등으로 구성된다. 1~2개 반은 실내체육관에서 탁구, 윗몸 말아올리기를 하고 3~4개 반은 운동장에서 나머지 종목을 하는 식이다. 선의의 경쟁으로 기초체력을 다지는 동시에 반 대항 대결을 통해 협동심과 단합력을 키우는 게 목적이다.

학생 대부분은 수업에 열심이었다. 급우들의 응원을 받으며 철봉에 매달려 끝까지 버텼다. 2학년 서채은양은 “13초나 매달렸다”며 “친구들과 함께 하니까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30초를 넘긴 같은 반 박시현양도 “재미나서 세 번 더 했다. 철봉은 내가 제일 잘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윗몸 말아올리기는 2인1조로 진행된다. 둘간 호흡이 중요하다. 발이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잡아줘야 힘이 덜 들게 많은 횟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학년 음혜빈양은 “3월에는 10개 정도밖에 못했는데 지금은 50개를 넘긴다”며 “친구와 번갈아 발목을 잡아주니까 우정도 쌓이고 상대 입장을 더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림 중학교 체육수업

단체 줄넘기도 모두가 함께 했다. 2명은 줄을 돌렸고 나머지 학생들은 1명씩 연속으로 줄을 넘거나 2~4명이 손을 잡고 함께 뛰었다. 단체 줄넘기는 체육대회에서 반 대항 대결로 이뤄지는 정식 종목. 다른 반 학생들이 줄넘기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학생들은 지지 않기 위해 급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데 집중했다. 2학년 이연우양은 “다른 반과의 대결에서 친구들과 함께 나가 이겨야한다”며 “연습할 때 더 많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축구, 피구, 발야구 등 단체 구기 종목 수업은 반 대항으로 진행된다. 협동 수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이다. 이 또한 경쟁심과 협동심이 발현되게 마련이다. 2학년 송재유군은 “다른 반과 라이벌이 되니까 우리끼리 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2학년 송진서양은 “공을 차면서 느끼는 쾌감이 너무 좋다”며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골을 넣은 뒤 단체 세리머니도 의무적으로 해야 골로 인정된다. 상대를 조롱하는 세리머니를 할 경우 골은 무효가 된다.

협동수업은 지난해 수업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지난해 체육수업은 같은 반 학생들을 5개 그룹으로 나눈 뒤 진행됐다. 5개 그룹이 번갈아 수업 프로그램을 직접 짠 뒤 나머지 학생들이 그걸 수행하는 식이다. 각각 그룹이 프로그램 진행자인 동시에 수행자가 되는 구조다. 성별, 체격, 운동능력 등에 상관없이 상대를 배려해서 낙오자 없이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돼 있다. 이처럼 지난해 같은 반 급우들끼리 역할을 나누면서 함께 엮어낸 수업이 올해는 반이라는 경계를 깨고 학년 전체로 확대됐다. 2학년 김현준군은 “지난해에는 고정된 느낌의 수업이었다면 올해는 무척 자유로워졌다”며 “수업이 훨씬 더 재밌어졌고 반대항도 많이 하다 보니 우리 반 친구들끼리 따로 연습하는 등 단합력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용인 고림중 1학년 학생들이 지난해 체육수업 시간에 배구를 이용한 커리큘럼을 구성하기 위해 내놓은 아이디어를 화이트보드에 적고 있다. 고림중 제공

협동 체육수업 종목이나 내용을 정하는 데도 학생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 체육교사들은 학기가 끝날 때마다, 또는 월별로 학생들로부터 체육수업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다. 이를 통해 나온 의견들은 다음 학기 또는 다음 달 수업에 반영된다. 협동 체육수업이 4시간 연속으로 진행되는 것도 교사들이 수업 준비와 평가를 집중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체육수업이 매월 새로운 종목이 추가되고 수시로 새로운 방식이 적용되는 등 ‘살아 움직이는’ 이유다.

체육수업에 대한 평가도 학생들이 한다. 그게 수행평가점수에 포함된다. 100점 만점에 실기(기초체력) 40점, 경기 규칙 등 필기 20점, 심폐소생술 등 안전 실습 20점, 그리고 마지막 20점이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다. 물론 비판적인 내용이 많을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또 학생들은 학기 초기에 체육수업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다짐서’를 작성한다. 교사들도 스포츠맨십을 전하면서 최선을 다해 수업을 진행하겠다는 학생들과의 약속을 서면으로 한다. 학생과 교사가 함께 만드는, 학생이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는 체육수업인 셈이다. 그래서 고림중 체육수업에서는 낙오자 한 사람 없이 모두가 주인공이 된다.

김선문 교장은 “학생들이 교사들과 함께 체육수업을 만들어가면서 밝고 창의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여러 가지 요소가 잘 융합되면서 완성되는 체육수업, 끊임없이 연구하고 반성하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계속 성장하는 교사들을 볼 때 너무 뿌듯하다”고 말했다.

다음달 12일엔 체육대회가 열린다. 전 학년 전원이 한 번 이상 참여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반 대항이라는 기본적인 경쟁 개념에 개인보다는 단체로 호흡을 맞춰야하는 식으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문어발 줄다리기, 피라미드식 줄넘기, 짧은 바통 대신 긴 봉을 6명이 함께 잡고 하는 봉이어달리기 등이다. 전교생이 즐거운 체육활동으로 하나가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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