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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하키 조민호·이돈구 “기적은 라커룸에서 시작됐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는 요즈음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됐다. ‘동네북’으로 여겼던 약체가 ‘신계’로 불리는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톱 디비전(1부)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한국은 2014년 안방에서 열린 같은 대회 디비전1 그룹A(2부)에서 5전 전패로 그룹B(3부)로 강등됐던 팀이다. 3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3일 ‘스포츠경향’과 만난 국가대표 공격수 조민호(30)와 수비수 이돈구(29·이상 안양 한라)는 “백지선 매직”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조민호(왼쪽), 이돈구 선수. 김영민 기자

“한국 아이스하키는 감독님이 부임하기 전인 2014년 7월과 그 이후로 나뉘죠.”

두 선수가 찬사를 보내는 백지선 감독(50)은 동양인으로는 처음 아이스하키 최고 무대인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우승컵인 스탠리컵을 들어 올린 인물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1살 무렵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백 감독은 피를 쫓아 한국 지휘봉을 잡은지 만 3년째인 올해 제대로 사고를 쳤다. 지난달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막을 내린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2부리그)에서 오스트리아에 이은 2위로 1부로 승격한 것이다. 아이스하키 변방만 맴돌던 한국이 캐나다와 러시아 같은 강호들이 버티는 주류에 합류했다.

백 감독 본인은 부인하지만 2002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쓴 거스 히딩크와 비교하는 사람도 많다. 두 선수는 한 술을 더 떠 “백 감독이 더 낫다”고 말했다. 조민호는 “축구는 한·일월드컵 전에도 프로였지만, 우린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돈구는 “한국은 성인 등록 선수가 겨우 233명”이라며 “캐나다(9만 7000명)와 러시아(1만 2485명) 같은 강호와 같은 무대에 섰다는 것만으로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백지선 매직은 라커룸에서 시작됐다. 이돈구는 “그게 우리를 바꾼 계기였다”고 말했다. “예전 국가대표 라커룸은 총천연색이었어요. 태극마크만 달렸을 뿐, 아마추어처럼 선수들의 옷차림이나 장비 등이 다 달랐죠. 그런데 감독님이 부임하신 다음에는 발끝부터 머리까지 모두 통일됐습니다. 프로 느낌이 낫다고 할까요? 감독님이 ‘너희는 국가대표 선수라는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환경을 만들어주시니 어찌 따르지 않을까요?”

환경이 바뀌자 선수들의 자세도 바뀌었다. 공식 행사에 나설 때면 반드시 정장을 입고, 먹는 음식 하나까지 신경을 쓴다. 선제골을 내주면 포기하던 버릇도 버렸다. 오히려 마지막 3피리어드면 거짓말처럼 역전극을 쓴다. 이돈구는 “주변에선 한국의 체력과 스피드에 호평을 많이 하시죠”라며 “그런데 3년 사이에 바뀐 게 아니라 장점을 살리는 법을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호도 “감독님이 한국은 왜 스피드와 체력을 활용하는 법을 모르냐”며 “우리보고 ‘여름철 모기’처럼 상대를 괴롭히면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했어요. 실제로 이번 대회에서 그렇게 됐죠. 이젠 매 경기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조민호(왼쪽), 이돈구 선수. 김영민 기자

백 감독은 한국 아이스하키의 디테일도 바꿔놨다. 3년 전과 같은 포메이션(1-2-2)과 전술을 쓰고 있지만, 선수들이 느끼는 변화는 천양지차다. 선수들은 비디오 미팅을 예로 들었다. 영상을 돌려보는 것은 똑같지만 동작마다 의미를 부여해 선수들의 눈의 틔웠다. 조민호는 “앞선에 선 사람이 오른쪽으로 돌 때 스틱을 어느 쪽에 놓아야할지와 시선 처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등 그 이유를 낱낱이 설명하시죠”라고 말했다. 디테일에 신경을 쓰니 이젠 동료가 어떤 상황인지도 파악하게 됐다. 자연히 실수가 줄고, 실수를 해도 곧바로 주변이 돕는다. 이돈구는 “선수들 모두가 한 가족이 된 느낌”이라며 “실제로 같은 조(5명)를 이룬 선수들끼리 여행을 같이 가기도 한다. 우리도 그렇다”고 활짝 웃었다.

선수들은 아직 백지선 매직의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망신을 걱정하던 평창올림픽이 진짜 무대다. 한국은 평창올림픽에서 캐나다, 체코, 스위스와 같은 조에 속해 있다. 스위스가 그나마 우리가 1승을 도전해볼만한 팀이다.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이긴 카자흐스탄과 스위스가 전력이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돈구는 “어떤 분들은 스위스를 이긴 카자흐스탄을 우리가 이겼으니 스위스도 해볼 만하지 않느냐고 하신다. 이런 계산법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승리가 욕심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라커룸 얘기를 다시 꺼냈다. 그는 “라커룸에는 ‘큰 꿈을 가져라’는 글귀가 붙어 있어요. 1승이 아니라 그 이상도 욕심이 나요. 감독님이 바꿔놓은 가장 큰 변화는 승리에 대한 마음가짐”이라고 말했다.

하나씩 하나씩 바꿔가면서 작은 기적을 일궈낸 백지선호가 과연 내년 2월 평창에서 더 큰 기적을 일궈낼 수 있을까. 올림픽 1승, 객관적으로는 머나먼 꿈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걸 현실로 바꾸기 위해 백지선호의 당돌한 아이들은 오늘도 빙판위에서 고된 싸움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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