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안현배의 그림으로 보는 인류학] 신비한, 매혹적인, 위험한, 외로운 시간과 공간 ‘밤의 공원’

밤의 공원, 조제프 리플 로내, 1892년작, 38.4×46.2㎝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느 날 수업 후 학교 앞 카페에서 쉬고 있던 과 동기인 이탈리아 친구가 교수님께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발표 수업에 맞는 주제를 못 찾아 헤매는 중이었죠. 대학원 수업이라는 게 항상 남들이 잘 안 다루고 낯선 주제를 선택하는 부분에서 시작합니다.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 친구가 그런 소리를 했습니다.

“‘밤’을 해 봐. 밤을 그린 그림으로….”

‘그게 뭔 소리야’ 하는 저나 이탈리아 친구와 달리 교수님은 동의한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시다가 “모더니즘 이전에는 밤이 주인공인 적이 없었지. 빛이 주인공인 적이 없었던 것처럼”이라고 한마디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숙제를 시작한 친구 덕분에 우리는 19세기 후반에 밤을 주제로 한 그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모더니즘 시대 이전에도 밤을 그린 경우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근대 이전 그림의 주제는 항상 신화나 역사화들이었죠.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시점이 밤이라는 경우가 아니라면 밤이라는 시간을 일부러 그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근대 이후 모더니즘이 개인의 감성과 개성을 존중해 주면서 예술에 대한 개념이 바뀌자 비로소 예술가들이 다루는 주제나 시선이 다양해졌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시도가 있고 그런 예술가들을 19세기 후반부터 이미 모으고 지웠한 무대가 바로 프랑스의 수도 파리, 유럽 각지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공기를 찾아 도착했던 곳이었습니다.

오늘 그림의 제목은 ‘밤의 공원’입니다. 밤이 그 자체만으로 주인공이 된 것은 특이한 시도라 할 만했습니다. 짧은 변화의 시간에 당연히 밤을 다룬 그림은 특이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그림은 그때 이 친구가 중요하게 썼던 작품입니다. 조제프 리플 로내라는 헝가리 작가의 이 작품은 파스텔로 환상적인 색깔을 내고 있습니다.

“19세기 내내 동구권 유럽의 예술가들은 거의 모두가 파리에 와서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파리에서 새로운 경향을 접하거나 미래를 알고 싶어했다. 특별히 동구권 예술가들은 파리로 오기 전에 독일에 도착해서 미리 문화충격을 받게 되는데, 이 그림의 작가 리플 로내도 비슷한 경우였다. 부다페스트 남부에서 1861년 태어나 자란 로내는 그가 파리로 가는 도중에 들른 독일의 뮌헨에서 그 당시의 모던 예술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게 된다. 1866년 마침내 파리에 도착한 로내는 그와 같은 헝가리인인 화가 문카시의 아틀리에에서 파리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의 파리 생활에서 로내는 특별히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시도를 찾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던 그가 본인의 그림에 새로운 길을 찾게 된 것은 짧은 여행 덕분이었죠.

“1889년 여름은 그에게 중요한 변화가 있던 시간이었다. 브루타뉴 지방의 퐁타방에서 짧게 머무르는 동안 그는 폴 고갱을 만나게 되는데, 고갱은 그에게 새로운 표현법을 일깨워 주면서 로내의 예술세계를 바꿔놓았다. 1893년 나비파들과 함께 전시회에 참가한 로내에게 사람들은 ‘헝가리 나비파’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수많은 화가들 중에서도 현대 예술에까지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폴 고갱은 중요합니다. 생활에 찌든 대도시 파리에서 벗어나 뭔가 순수하고 자연적인 에너지를 찾아 떠난 퐁타방이라는 마을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동안 그를 존경하는 여러 후배들이 찾아옵니다. 1888년에는 젊은 화가 집단이 고갱을 스승으로 삼아 이스라엘어로 예언자를 의미하는 ‘나비’라고 자신들을 부르기도 합니다. 이 나비파는 이제까지의 예술과는 다른 길을 찾겠노라고 신비하고 상징적인 의미들을 사용하거나, 아시아의 색감에 가까운 시도를 하죠. 로내는 이 운동에 참가해 ‘헝가리 나비파’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미술사라는 공부 속에 화가의 작업은 이렇게 분석됩니다. 능력이 뛰어난 젊은 헝가리 화가가 독일에 도착해서 교육을 받고 파리로 옮겨와 신예술을 배우고, 자기색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동료들을 만나 끝내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내는 것. 어쩌면 미술사도 인간의 인생을 이해하는 과정일 듯합니다.

“로내의 이 파스텔 그림은 ‘검은색 시대’라고도 불리는 그의 파리 체류 시절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떤 공원 숲 한쪽의 밤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이 그림 속에는 인간의 흔적이 전혀 없다. 그림 구성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는 가로등과 뒤에도 나타나는 작은 가로등 불빛들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지만, 멀리 보이는 모던한 도시의 풍경과 이 공원의 모습 사이에 간격을 일깨워 주고 있다. 마치 유령처럼 서 있는 나무의 줄기들은 그림에 리듬감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불분명한 공포와 매혹을 같이 부여한다.”

로내는 이것과 비슷한 그림을 여럿 그리면서 밤의 색깔에 대한 연구를 합니다. 그가 그린 밤 속에는 19세기 후반 예술가들이 느꼈던 막연한 불안과 그러면서도 새 시대를 향하는 묘한 기대감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언자로 불리던 자신의 동료들에게 이렇게 어필했겠지요.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