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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김보름 “내 머리속엔 온통 평창올림픽…설렘보다 긴장감 더 크죠”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빙속 여제’ 이상화가 건재하고 남자 장거리의 간판 이승훈이 버팀목이 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기대주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그런 기대주들 가운데 대표적인 주자가 바로 김보름(24·강원도청)이다. 한국 여자 중장거리 종목의 간판으로 올라선 김보름은 현재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는 선수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김보름을 지난 11일 훈련장이 있는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에서 만났다. 바깥은 싱그러운 5월의 향기로 가득했지만 김보름은 훈련장에서 끊임없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평창’이라는 단어 밖에 없었다.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간판 김보름이 스포츠경향 창간 12주년 특집 인터뷰를 하며 손으로 하트를 그리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올림픽? 설레임보다는 긴장감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은 지난 8일 소집돼 현재 태릉선수촌에서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김보름은 다르다. 태릉선수촌이 아닌, 그의 모교 한국체대에서 따로 훈련을 하고 있다. 김보름은 “지금은 밖에서 따로 훈련을 하고 있다. 나한테 맞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표팀에는 아마 시즌이 시작되는 겨울 쯤에 들어갈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렇다고 김보름이 특별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김보름, 이승훈 등 몇 명의 선수들이 대표팀에 양해를 구하고 밖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관한 질문을 가장 먼저 던졌다.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김보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동계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주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올림픽이 훨씬 큰 대회 아닌가. 이름부터 다르다. 무엇보다 내가 아직 올림픽 메달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크다.”

김보름하면 떠오르는 종목은 역시 매스스타트다. 그는 2016~2017시즌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여자 매스스타트 부문을 세계 랭킹 1위로 마쳤다. 지난 2월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도 금메달을 따냈다. 자타가 공인하는 ‘매스스타트의 여제’다. 팬들 역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공식 종목으로 채택된 매스스타트의 첫 올림픽 금메달을 김보름이 가져오기를 바라고 있다.

김보름 역시 누구보다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갈망한다. 하지만 세계 1위인 그도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 열린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에 그쳤듯, 경기는 늘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메달권이랑 좀 더 가깝기 때문에 나도 기대를 많이 하고는 있다. 자신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메달을 딸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도 없다. 올림픽에 대한 설레임보다는 긴장감이 더 클 것 같다. 워낙에 큰 경기이기도 하지만, 매스스타트라는 경기 자체가 변수가 많은 종목이다. 상대 움직임도 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경기하면서 긴장감을 늦추면 안 될 것 같다.”

팬들이 보내는 성원과 기대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하고 있다. 김보름은 “내게 보내주는 기대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너무 신경쓰고 의식을 하면 스스로 더 긴장될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간판 김보름이 스포츠경향 창간 12주년 특집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집에 못 가는 건 아쉽지만…

올림픽을 준비하는 대부분 선수는 집에도 가지 못하고 합숙을 하며 훈련에만 몰두한다. 이유는 오직 하나. 올림픽 메달 때문이다. 김보름 역시 평창 동계올림픽을 생각하면 한가로이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다.

“확실히 운동에 시간을 많이 뺏기니까 못하는 것들이 많기는 하다. 시즌 끝나고 두 달 정도 쉬어서 요즘에는 가고 싶은 곳도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했다. 하지만 못하는 것들이 많다고 해서 특별히 아쉬운 점은 없다.”

어쩌면 운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정해진 운명의 길인지도 모른다. 굳이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김보름이 나서야 할 대회들은 많다. 그런 김보름을 지탱해주는 것은 바로 좋은 성적이다.

“스케이트는 내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다. 운동을 하면서 아쉬운 부분들도 많지만, 그 아쉬움은 좋은 성적이 나오면 다 잊을 수 있었다. 이젠 이런 생활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도 우리와 다 똑같다. 다들 일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살지 않나.”

그래도 딱 하나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가족을 자주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김보름의 집은 대구에 있다. 주말을 이용한다고 해도 부모님을 자주 볼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김보름은 “집에 자주 못가는 것이 많이 아쉽다. 한 1년에 세 번 정도 밖에 가지 못한다. 추석이나 설날 때도 시즌이라 함께할 수가 없다. 물론 전화도 잘 안하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가장 보고 싶은 사람들과 자주 함께 할 수 없다는 그 아쉬움까지 담아 김보름은 평창에서의 선전을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전쟁터다. 평창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김보름은 아쉬움을 감추고 다시 냉정해졌다.

“지난 시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도 따고 랭킹 1위로 마무리를 했다. 하지만 올림픽 무대에서는 1등을 한다는 욕심을 가지고 시작을 하면 안된다. 욕심을 버리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물론 금메달 나오면 좋겠지만, 내가 만족할 결과가 나오는 것이 우선이다. 최대한 메달권에 들려고 노력하겠다.”

▶ 김보름은 누구?
김보름(24·강원도청)은 한국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이상화, 이승훈과 함께 금메달을 기대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김보름은 대구 문성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원래는 쇼트트랙 선수였다. 성화중, 정화여고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한 한국 쇼트트랙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래서 2010년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꿨다.

종목 전향 후 3개월 뒤 열린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여자 3000m에서 은메달을 따며 이름을 알렸고, 이후 매스스타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이 부문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 중 한 명이 됐다. 2016~2017시즌에는 여자 매스스타트 월드컵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했고, 세계선수권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평창에서 여자 매스스타트 금메달을 김보름에게 기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매스스타트는 스피드스케이팅의 세부 종목으로, 3명 이상의 선수가 동시에 출발해 레인 구분 없이 순위를 가린다. 4·8·12바퀴를 돌 때 1~3위에게 각각 5·3·1점을, 마지막 바퀴를 돌 때는 각각 60·40·20점을 부여하며 이 점수들을 합쳐 최종 순위를 결정한다. 여자는 25바퀴, 남자는 35바퀴를 돈다. 경기 방식이 쇼트트랙과 비슷해 한국 선수들이 특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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