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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호의 PM 6:29] ‘2097안타’ 박용택, 다시 꺼내본 16년 전 ‘약속’

LG 박용택. 이석우 기자

박용택(38)은 그날의 대화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LG 입단 첫해인 2002년 봄의 어느 날, 스쳐가듯 나눈 인터뷰의 잔상 정도만을 떠올렸다.

그때의 박용택은 롤모델로 장종훈을 꼽았다. 장종훈의 홈런을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장종훈의 성실함에 주목했다. 장종훈처럼 리그 통산 기록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선수가 되고 싶어했다. 당시만 해도 장종훈은 공격 부문 통산 기록을 여럿 손에 쥐고 있었다.

지난 21일 잠실 LG-롯데전이 끝난 뒤 이른 저녁, 박용택과 그때 얘기를 다시 나눴다. 박용택은 스물 세살 적 자신에 대한 기억을 다시 끄집어냈다. “그냥 막연히 LG 트윈스 유니폼만 입고 야구 오래 오래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에 비춰 보면 박용택은 목표를 향해 참 잘 달려왔다. 박용택은 통산 안타 2097개를 때리고 있다. 3개만 보태면 리그 통산 최다안타 2위인 장성호(은퇴·2100개)와 타이를 이룬다. 그보다 더 높은 자리에는 2318개를 때리고 은퇴한 양준혁만이 기다리고 있다.

박용택은 양준혁의 기록을 깰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선수로 떠올라있다. 현역 선수로 박용택를 추격하는 이승엽(삼성·2065개)은 은퇴를 앞두고 있다. 그 다음 주자로는 정성훈(LG·2044개), 박한이(삼성·2030개) 정도만이 보인다.

박용택은 이미 꿈을 거의 이룬 듯도 보인다. 그런데 지난 16년 세월을 더듬기 시작하자 자신에 대한 ‘칭찬’보다는 ‘아쉬움’을 화두로 올린다.

박용택은 20대 선수 시절은 실패의 연속으로 기억했다. 그는 “30대에는 완벽한 선수가 되자”고 매번 다짐했다고 했다. “20대에는 감이 좋을 때면 정말 잘 치다가다고, 감이 좋지 않으면 내가 봐도 야구선수 같지 않았다. 내 것을 모르고 야구를 했다”고 했다.

박용택은 서른을 훌쩍 넘긴 최근 3~4년 사이로 전에 없던 ‘눈’이 생겼다고 했다. 이를테면 타격이 잘 되지 않을 때, 자신을 볼 수 있는 진단 능력이 생겼다. “내가 지금 이런 자세구나, 또 이런 모습이구나, 하는 문제점 파악이 가능해졌다. 물론 그걸 그 자리에서 바로 고칠 수는 없지만 내가 내 자신을 알게 되면서 그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고 했다.

아쉬움은 그 대목에서 다시 시작된다. 박용택은 “요즘 드는 생각은. 훨씬 힘이 좋고 훨씬 스피드 좋은 그 시절에 이런 기술과 눈이 있었다며 어땠을까 하는 것”이라며 “조금 더 빨리 눈을 떴다면, 아마도 훨씬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그런데 그렇게 전개된 개인 야구사에 관한 얘기의 끝 자리에는 ‘양준혁의 기록’이 있지 않았다. 박용택은 동문서답 같은 대답을 했다. 어쩌면 16년 전 LG 유니폼을 입을 때만 해도 오래지 않아 이룰 것으로 여긴 목표가 너무 긴 시간 자신을 기다리게 해서 일지 모른다.

박용택은 “편히 보자면 그래도 웬만한 건 거의 해본 것 아닌가 한다. 남은 꿈은 LG 유니폼 입고 꼭 우승 해보는 것”이라며 마지막 질문에 답했다.

운동선수에게 우승은, ‘한풀이’ 같은 것이다. 박용택 또한 지난 16년의 풍성한 개인 기록보다는 우승반지 없는 허전한 손가락이 더 크게 보인 모양이다. 최다안타 기록에 대한 목마름에 대한 더 깊은 얘기는 자연스럽게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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