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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현장체험]E채널 ‘내딸의 남자들’ FD 체험기, 가족 예능을 만드는 가족 같은 사람들

가족예능의 진화는 어디까지 계속될까. 초보 아빠들의 육아예능, 노총각 아들의 ‘세상만즐’을 관찰하는 엄마들의 이야기에 이어 딸의 연애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아빠들의 파파라치 예능이 등장했다. 지난 20일 오후 10시 50분 첫 방송된 E채널 예능프로그램 <내딸의 남자들>의 이야기다. 연예계 내로라 하는 ‘딸바보’ 아빠 4인이 딸의 연애와 일상이 담긴 영상을 관찰하며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는다.

부녀사이 금기시 돼온 연애 이야기가 낱낱이 공개되는 현장은 어떨까. 기자는 지난 17일, <내딸의 남자들>의 두 번째 스튜디오 녹화현장을 찾았다. 이날 촬영분은 4,5,6회 분량으로, MC 배우 신현준, 방송인 이수근, 가수 리지와 아빠 출연자 배우 정성모, 개그맨 최양락, 그룹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 성우 안지환이 미리 촬영된 딸들의 영상(VCR)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었다. 서울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녹화현장에서 기자는 FD를 맡아 일일 스태프 체험을 했다.

본지 손민지 인턴기자가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E채널 ‘내딸의 남자들’ 녹화현장에 참여해 카메라를 모니터링 하고 있다. 사진 E채널.

■2주에 한번 열리는 반상회

오후 2시 30분. 녹화 준비 막바지에 현장이 분주했다. 기자에게 임무는 촬영장에 필요한 소품을 준비하는 것. 스태프들이 사용할 책상과 의자를 부지런히 세트장에 옮겼다. 카메라와 음향 장비는 이미 세팅돼 있었다. 출연자들이 앉을 의자 옆에 물통을 두고, 이전 촬영에서 쓰고 남은 배경 소품인 와인병을 제 자리에 배치했다.

<내딸의 남자들>은 E채널과 외주 업체인 ‘씨그널’의 협업으로 이뤄지는 프로그램이다. 그때문인지 스태프들은 철저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을 이해하고 기계처럼 움직였다. 작가들은 대본을 살폈고, 카메라 감독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출연자를 가장 잘 잡기 위한 각도를 조정했다. 코디와 매니저는 출연자의 컨디션을 살피고 의상을 입혔다.

유독 돋보였던 건 출연진들의 호흡이었다. 그들은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근황토크를 이어갔다. 반상회에 참석한 주민들처럼 친근했다. ‘아빠’들은 ‘딸 같은’ 리지를 향해 “밤 늦게 돌아다니지 말고 일찍 다녀라” “늦으면 부모님께 꼭 연락드려라” 등 잔소리를 퍼부었다. 리지는 이에 주눅들지 않고 아빠들에 맞서 ‘딸 다운’ 항변을 했다.

본지 손민지 인턴기자가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E채널 ‘내딸의 남자들’ 녹화현장에 FD로 참여해 슬레이트를 치고 있다. 사진 E채널.

■슬레이트도 빵빵 터지는 현장

오후 3시, 드디어 녹화가 시작 됐다. 아홉 대의 조명이 기자를 향했다. 카메라 열 대와 일곱 명의 출연진, 그리고 서른 여명이 기자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주목받고 있다는 느낌에 식은 땀이 흘렀다. 감독의 신호가 떨어지는 걸 확인하고 촬영장 가운데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내딸의 남자들, 슬레이트 치겠습니다. 하나, 둘, 셋!”

순간, 슬레이트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클랩스틱이 클래퍼보드에 닿지 않아 NG가 났다. “슬레이트로 NG내는 걸 보는 건 첨이네.” 옆에서 누군가가 한 마디 했다. 그 말과 함께 “하하하” 현장에 스태프들의 웃음소리가 함께 터졌다. 기자 덕분에 녹화가 활기차게 시작됐다.

■아빠와 딸의 세대공감 프로젝트

한 자녀의 영상을 보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20분 정도였다. 출연자들은 영상이 멈출 때마다 프롬포터에 나오는 대본을 보고 정해진 멘트를 자연스럽게 그들의 언어로 소화해냈다. 프롬포터에는 작가가 정한 질문들이 떴는데, MC가 이를 아빠들에게 묻고 답변을 유도하는 식이었다.

8명의 작가들은 대본과 실제 녹화되는 멘트를 비교하며 쉬지않고 메모했다. 뭘 적냐고 물으니 4년 차 됐다는 작가의 입에서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출연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말하는지 적어요. 다음 대본 쓸 때 반영하려고요.”

PD는 적절한 타이밍에 손을 들어 신호를 주고, 한쪽 구석에 있던 스태프가 이를 보고 영상을 틀었다. 톱니바퀴처럼 합이 딱딱 맞는 게 신기했다.

본지 손민지 인턴기자가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E채널 ‘내딸의 남자들’ 녹화현장에 일일 FD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 E채널.

딸들의 대범한 스킨십이 화면에 나오자 아빠들의 말이 많아졌다. 영상이 끝나면 아빠들끼리 토론이 벌어졌다. 딸의 적극적인 면모에 기함하면서도 다른 아빠들의 짖궂은 발언엔 ‘발끈’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딸 바보’였다. 외국인 남자친구와의 연애, 소개팅 남과의 데이트 등 딸의 연애사에 아빠들은 마치 자기 일인 듯 걱정하고 공감했다.

이들의 후끈한 대화를 잠시 식히는 건 MC들의 몫이었다. 신현준은 차분한 진행으로 전체의 중심을 잡았고, 리지는 각 영상이 시작되기 전 호기심을 유발했다. 이수근은 재치있는 발언으로 현장의 윤활유 역을 했다. 이들은 아빠들에게 맞장구치기도 하고 딸들을 감싸기도 하며 줄을 잘 탔다.

프로그램은 세대공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아빠들은 딸의 영상을 보며 자신의 연애시절과 다른 점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딸이 왜 그렇게 행동했다고 생각하는지 추측하며 생각의 차이를 좁혀나갔다.

■휴식이 아닌 휴식

오후 5시, 녹화 후 첫 휴식 시간이 왔다. 기자의 옆에 앉아있던 정예인 막내 작가는 그제야 경직된 몸을 풀었다. 그는 “촬영이 2주에 한번 진행되는데도 잠을 잘 시간이 거의 없어요. 스튜디오 바로 전날까지도 대본 쓰고 소품을 준비하느라고요. 다른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일 걸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스태프들은 본 촬영이 아닌 준비시간에 더 바빴다.

쉬는 시간은 이어질 촬영을 위한 재정비 시간이었다. 작가들은 휴대폰을 들고 다음 VCR 촬영지를 섭외했고, 조연출들은 영상 파일을 백업했다. 막내작가가 급하게 메인작가에게로 가서 이야기를 하기에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1시간 지연됐어요” 라고 답하며 타임테이블을 보여준다. 펜으로 빼곡히 필기가 돼있다.

이렇게 촬영이 지연되면 촉박해지는 것은 연출팀이다. 녹화 내내 세트장 맨 뒤 어둠 속에 파묻혀 있던 조연출이 빛으로 나와 바쁘게 움직였다. 막내 조연출은 카메라 감독들에게 메모리 카드를 받아 넥스토디(파일 백업기)에 넣고 백업을 했다. 그는 그가 A4 용지에 깨알같이 적어놓은 기록들을 보니 영상의 파일 이름, 용량, 제목 이런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제대로 적지 않으면 편집 때 꼬일 수 있거든요. 정확히 해야해요.”

본지 손민지 인턴기자가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E채널 ‘내딸의 남자들’ 녹화현장에 FD로 참여해 작가들과 함께 프롬포터를 보고 있다. 사진 E채널.

■어둠 속 빛나는 조연

오후 6시가 넘어가니 녹화장이 어두워졌다. 출연자들이 앉아있는 세트장 한 가운데만 조명으로 밝게 빛났다. 그때 기자의 눈에 들어온것이 스태프들의 복장이었다. 대부분 회색, 검정색 계열의 의상을 입고 있었다. 막내 작가는 이를 “빛 반사를 막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그는 정해진 지침은 아니지만 스태프들이 암묵적으로 촬영에 지장을 안 주기 위해 검정 계열의 옷을 입는다고 했다.

작가들은 VCR 영상을 보며 시청자처럼 깔깔 웃었다. “다 아는 내용 아니예요?” 기자가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대본과 자막을 쓰기 위해 영상을 4번 이상 봐요. 그런데 여러번 봐도 재밌어요. 출연자들이 하는 말이 너무 웃기지 않나요?”

오후 8시. 기자의 슬레이트로 촬영은 끝이 났다. 출연자들이 하나 둘 집으로 향했지만 스태프들의 일과는 끝나지 않는다. 현장 뒷 정리다. 기자는 그들을 도와 검정 비닐 봉지를 들고 다니며 쓰레기를 담았다. 녹화 준비를 할 때처럼 소품들은 다시 박스에 들어갔다. 작가들은 옹기종기 모여 녹화에서 미비했던 부분에 대해 얘길 했다. 오후 9시 20분. 수고했다는 훈훈한 인삿말과 함께 일과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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