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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파적인 씨네리뷰] ‘이게 나라냐’…‘대립군’ 외침, 왜 가슴을 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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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장 유행했던 문장을 꼽자면 ‘이게 나라냐’다. 이젠 농을 할 정도의 우스갯소리로 들리지만, 당시엔 모두를 무력감에 빠뜨린 현실 풍자의 키워드였고 다시 일으켜 세운 각성의 외침이었다. 국민은 다시 뭉쳤고 세상을 바뀌었다. 이 말은 영화 <대립군>(감독 정윤철) 속 민초들에게도 나라를 일으키 세운 주문이 됐다.

<대립군>은 1952년 임진왜란 당시 분조를 겪은 조선의 힘 없는 세자 ‘광해’(여진구)와 대립군 ‘토우’(이정재), ‘곡수’(김무열) 등 민초들의 얘기다. 조선왕조실록과 선조실록 등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름없는 민초들을 스크린 위에 부활시켰다.

영화 ‘대립군’ 포스터,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목이 불특정다수의 ‘대립군’인 만큼 이 작품은 ‘광해’보다 제 이름조차 쓸 수 없는 백성에 포커스를 맞춘다. 철없는 세자 광해가 피란을 떠난 뒤 ‘성군’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이 영화의 굵직한 줄기를 이루지만, 그를 움직이고 가슴 뛰게 하는 건 ‘백성’이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진다.

이를 위해 정윤철 감독은 그동안 다양한 콘텐츠에서 다뤄진 ‘광해’를 작품 전면에 배치하는 것 대신 토우, 곡수, 조승(김원상) 등 이름마저 생소한 캐릭터들을 뚜렷하게 표현하는 데에 공을 들였다. 정치엔 전혀 관심 없던 이들이 국난 속에서 ‘나라의 운명이 곧 내 운명’이라는 사실을 러닝타임 130분 동안 자연스럽게 깨달아간다.

무엇보다도 <대립군>이 보는 이의 공감을 얻는 것은 대한민국 현주소와 다를 바 없는 구성 덕분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제 한 몸 살겠다고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와 그 옆에서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겠다는 심산의 고관들, 더 이상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땅에서 또 다시 꿈을 꾸고 미래의 초석을 다지는 백성들에게서 2017년 대한민국을 마주할 수 있다.

물론 ‘또 시국 풍자냐?’라며 벌써부터 식상한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다. 그간 ‘대통령 재임 중 탄핵’이란 사상초유 사태를 맞이하면서 <더 킹> <특별시민> <보통사람> 등 시국을 떠올리게 하는 여러 작품들이 등장했기에 당연한 반응일 수 있다. 그러나 <대립군>은 시대 배경을 달리하면서 차별성을 획득하는 묘수를 썼다. 다른 작품들이 현대 사회의 썩은 권력에 스포트라이트를 댔다면, <대립군>은 조선시대 민초들에 집중해 예상 가능한 전개를 피했다. 이뿐만 아니라 ‘주권’의 개념이 희박했던 왕권 시절에도 평범한 사람들이 나라를 일으킨다는 설정에 관객은 감정이입을 넘어 뭉클한 감동을 받는다.

배우들의 호연도 눈에 띈다. 이정재는 마초적인 캐릭터를 마치 제 옷 입 듯 소화했고, ‘유약한 광해’를 표현한 여진구의 해석도 영화에 잘 녹아들었다. 특히 2인자 ‘곡수’를 주연만큼이나 존재감 있게 만들어낸 김무열은 ‘재발견’한 수준을 넘어선다. 현실 속 ‘사랑꾼’ 이미지를 툭툭 내뱉는 거친 말투로 완전히 지우고, 극 중 노래를 한 곡조 뽑을 땐 뮤지컬 배우다운 매력을 발산한다. 배우로서 가진 재능을 모두 쏟아부은 듯하다. ‘곡수’의 한 서린 노래에 ‘광해’가 춤을 추며 전란에 지친 백성을 위로하는 장면이 영화가 끝나도 머리에서 내내 지워지지 않는다. 오는 3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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