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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배의 그림으로 보는 인류학] 일상이 예술이 된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물랭 들 라 갈레트의 무도회,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 1876년 작.

오늘 소개해 드리는 그림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입니다.

“물랭 드 라 갈레트는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 있는, 요즘은 클럽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도회장이었다. 당시 젊은층들에게 인기를 끌던 유행의 장소였다. 그리고 이곳은 르누아르의 아틀리에 옆 골목에 위치한다. 이 그림의 작지 않은 크기(131×175㎝)는 화가의 의욕적인 도전을 상징한다. 흔히 역사화를 그리는 사이즈의 화면에 일상생활의 모습, 야외에서 열리는 현대적 유흥을 그린다는 것은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일이었다.”

모딜리아니와 피카소, 툴루즈 로트렉과 반 고흐 등 19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들은 모두 몽마르트에서 자신의 예술을 통해 그들의 성공을 위해 도전했죠. 언덕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골목들 사이에 ‘물랭 드 라 갈레트’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1870년대의 어느 주말 오후 르누아르의 그림에서 이 장소는 따뜻한 햇볕과 음악 소리, 사람들의 웃음과 이야기 소리로 가득했고, 우리는 그의 그림을 통해서 그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1877년 인상파 그룹전에서 처음 소개됐습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다수는 르누아르의 친구들이기도 했는데, 왼쪽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춤을 추다가 만나서 서로 주소를 교환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을 보여 줍니다. 이 그림은 밝은 색채감을 지닙니다. 또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불규칙하게 만들어 내는 흔적과 춤추는 사람들의 운동감을 묘사하기 위해 붓터치는 의도적으로 선을 뭉개고 있죠.

“이 그림에 나오는 인물들과 사물들은 모두 몇 번의 붓질이나 점 몇 개만 가지고도 충분하다는 듯 마무리를 과감하게 생략해서 표현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그림이 여러 번의 연구를 통해 인물 배치와 광선 등의 구도를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작품은 놀랍도록 활기차게 춤추는 생동감을, 그리고 서로를 유혹한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는 남녀간의 설렘을 다뤘다.”

발표 당시 지나치게 밝은 물감을 사용했다는 사실과 마무리되지 않은 듯 보이는 선 처리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오르세도 지적하듯 역사화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크게 캔버스 화면을 채우는 그림이 없었다는 이유로 그해 인상파 출품작들 중에서도 특별히 비난받은 그림입니다. 하지만 벌써 몇 년째 해오던 인상파의 새로운 도전은 비난하는 쪽의 반대에서 그림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따라서 파티 장면은 인상파들이 시대간의 대립을 극복하고 모더니즘의 대표가 됐을 때 그 부정적이던 특징은 오히려 인상파의 개성으로 인정받으며 그들 운동의 깃발로 자리하게 됩니다.

“물랭 들 라 갈레트가 처음으로 전시된 곳은 1877년 인상파의 3차 전시회 입구였고, 곧 사람들에게 가장 화제가 되는 그림으로 자리했다. 20년 후 르누아르의 친구 구스타브 카유보트가 국립미술관재단에 기증하면서 이 그림은 마침내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게 됐다.”

현재 남은 흔적들만 봐도 르누아르가 이 그림을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이 소장하고 있는 초기 습작에서부터 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스케치들과 오르세 소장 이후 다시 똑같은 제목과 구성으로 작게 그린 스위스 개인 컬렉션에 이르기까지 다른 그림들에 비해서 비교적 긴 시간 동안 르누아르는 이 작품의 완성을 위해 애썼죠.

이 시절 프랑스는 결코 편안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배했고 이후 코뮌의 비극, 그리고 불안정한 미래였죠. 하지만 여기 젊은이들의 일상은 그 속에서도 밝고 행복합니다. 남녀가 만나고 다음 데이트 약속을 잡고, 또 춤을 추는 모습이 담긴 시끄러운 소리가 그려진 이 르누아르의 그림은 여태까지 몰랐던 일상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습니다.


미술사학자 안현배는 누구?

서양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가 예술사로 전공을 돌린 안현배씨는 파리1대학에서 예술사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예술품 자체보다는 그것들을 태어나게 만든 이야기와 그들을 만든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라와 언어의 다양성과 역사의 복잡함 때문에 외면해 오던 그 이야기를 일반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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