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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파적인 씨네리뷰] ‘그 후’ 결국 그래도, 홍상수는 ‘홍상수’다

■편파적인 한줄평 : 홍상수 감독이 돌아왔다!

아이러니에 대한 교과서가 있다면 바로 영화 <그 후>(감독 홍상수)가 아닐까. 뜻하지 않은 상황들이 빚어내는 역설이 웃음을 자아내고, 그 웃음의 여운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홍상수 감독의 천재성과 여유가 작품 안에서 빛을 발한다.

영화 ‘그 후’ 포스터, 사진 (주)영화제작전원사

<그 후>는 명망 높은 평론가이자 출판사 사장 ‘봉완’(권해효)이 불륜에 빠졌던 여직원과 헤어진 이후 아내 ‘해주’(조윤희), 새로 온 여직원 ‘아름’(김민희)과 얽혀 벌이는 소동을 다룬다.

<그 후>에는 불륜 스캔들에 시달렸던 홍상수 감독이 한층 마음의 여유를 찾은 것 아닌가 하는 장면들이 녹아있어 눈길을 끈다. 홍 감독은 불륜에 관한 소문 혹은 사실들을 마치 떡 주무르듯 비틀어 자유자재로 영화에 녹여낸다. 자신의 치부(가 될 수 있는)를 대놓고 무기로 사용했다는 점을 볼 때 아티스트로서 이미 경지에 오른 듯 하다.

실제 사랑하는 사이인 김민희가 극 중 불륜 소동의 피해자인 ‘아름’으로 분해 “전 남 얘기 관심없어요” “세상의 모든 것이 영원하다는 것을 믿어요”라고 말하거나, 봉완의 아내 해주에게 머리채를 잡혀 한바탕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에선 묘하게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가 관음과 상상의 장르이기에 가능한 재미다.

특히 마지막 시퀀스에서도 그의 사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세상 떠들썩한 소동 이후 오랜 만에 아름이 다시 봉완을 찾아가지만, 봉완이 그에 대해 엉뚱한 얘기만 늘어놓자 “저 기억 못하죠?”라며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장면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미화해 기억하는’ 인간의 간사함을 비꼰다. 이를 홍상수 감독의 사적 스캔들에 연결시키면, 그가 전하고픈 메시지로 변주돼 관객의 고정관념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마치 ‘너희도 어차피 잊어버릴 거다’라는, 달관의 장광설이 읽힌다. 자신의 스캔들을 여봐란 듯 영화 속 장치로 이용한 셈이다.

전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와 다른 점도 바로 이것이다. 전작이 불륜에 대한 해명·미화 등으로 점철됐다면, <그 후> 속 ‘홍상수 화법’은 산뜻하고 유쾌하게 변했다. 불륜 이면의 얘기를 제3자의 시선으로 가볍게 터치하며, 누구나 편한대로 생각하는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스캔들’이란 인지부조화의 장치로 활용했다. 애인 창숙(김새벽)과 이별한 후 우울한 날을 보내던 봉완에게 어느 날 아내, 애인, 새 여직원 아름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면서 인생 최대 고비를 겪는 내러티브는 객관적 시점이라 더욱 관객의 웃음보를 자극한다.

이번 작품에 등장한 세 여성 캐릭터 대비도 볼 만하다. 남편의 불륜 잘못을 상대 여성에게 전가해 다짜고짜 머리채부터 잡는 아내 해주, 사랑의 환상에 빠진 소녀 같다가도 어느 순간 봉완의 아내를 간교한 꾀로 속여 불륜을 감추려는 여직원 창숙, 불륜 상대로 오해받아 억울하게 당했지만 할 말은 다 하고마는 신념 강한 여성 아름 등 <그 후>의 여성 캐릭터들은 저마다 강렬한 개성을 보여주며 우유부단한 지식인 봉완의 지지리도 못난 면을 한껏 부각시킨다.

홍상수 감독의 배우 선택은 탁월했다. 봉완을 연기한 권해효는 애초부터 지질한 문학인이었다는 듯 열연인지 실제인지 모를 연기를 펼쳤다. 오히려 김민희의 연기가 권해효로 인해 더욱 살아난 듯한 느낌이다.

창숙을 연기한 김새벽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순진한 외모가 유부남 사장을 이리저리 조종하는 캐릭터와 맞물려 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한동안 수위 조절을 못 하던 홍 감독의 절제력은 <그 후>로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작품 곳곳에 농을 치고 수묵화처럼 담백하면서도 여운 깊은 영화 한 편을 완성했으니 말이다. 마치 의뭉스러운 선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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