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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파적인 씨네리뷰] ‘파리의 밤이 열리면’ 생고생도 낭만이 된다

■한줄 평 : ‘한 여름밤의 꿈’ 같은 영화, 웃음은 글쎄

“인생은 과감한 모험이든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헬렌 켈러)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그러나 파리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파리는 매일 자정, 1920년대의 어느 여자와 낭만적인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고(<미드나잇 인 파리(2012)>), 19세기 말 가난한 시인이 뮤지컬 가수와 비극적인 사랑을 나누는 공간(<물랑루즈(2001)>)이기도 하다. 왠지 파리에서라면 생고생도 낭만이 될 것 같다.

영화 ‘파리의 밤이 열리면’ 공식 포스터. 사진 찬란.

<파리의 밤이 열리면>(Open at Night, 감독 에두아르 바에르)은 파리 에뚜알 극장 운영주 루이지(에두아르 바에르)가 연극 첫 공연의 막을 올리기 위해 하룻밤 동안 고군분투 하는 소동극이다. 루이지는 꼬여가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무작정 극장 밖을 나와 과감한 모험을 택한다.

극 중 루이지에게 닥친 문제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공연을 하루 앞두고 극장의 직원들은 밀린 월급에 항의하며 파업을 하고 일본인 연출자는 무대에 올릴 실제 원숭이를 찾아오라고 한다. 하필 이런 시급한 때에 그의 든든한 ‘백’인 동료 나웰(오드리 토투)은 아들의 생일이라며 일찍 가봐야 한단다. 하는 수 없이 루이지는 직원들에게 밀린 월급을 줄 돈과 연극 무대에 오를 원숭이를 찾기 위해 인턴 파에자(사브리나 와자니)와 파리의 밤을 헤맨다.

신념 있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파에자는 ‘허허실실’에 즉흥적인 루이지와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는 캐릭터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콤비로 다니며 ‘공조’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극 중 연극에 필요한 원숭이를 데리고 파리의 밤거리를 걷는 파에자(사브리나 와자니)와 루이지(에두아르 바에르). 사진 찬란.

영화는 ‘파리’가 지닌 이미지를 잘 요리했다. 새벽녘 찬란한 햇살이 가득한 센 강, 노을에 잠긴 몽마르뜨, 에펠탑의 화려한 불빛, 방센 숲의 동물원, 자물쇠를 걸면 영원한 사랑이 이뤄진다는 퐁데자르 다리 등 주인공 루이지의 동선을 따라 등장하는 파리의 명소가 눈을 즐겁게 한다. 단기간 벌어지는 이야기를 길게 늘인 점, 수미상관 구조를 통해 ‘사건 해결’의 플롯을 취한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파리의 밤이 열리면’에는 에펠탑 전경을 포함해 파리의 명소가 곳곳에 등장한다. 사진 찬란.

그러나 풋! 하고 웃을 수 있는 유쾌한 영화는 아니다. 예상치 못한 전개로 골치를 앓는 상황이 짜여진 각본처럼 97분 내내 이어진다. 쉬어갈 틈이 없다는 게 아쉽다. 카메라는 극 초반부터 후반까지 루이지의 이동 동선을 좇는다. 대사와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음향 효과는 최소화했다. 담백한 작품이라 한국형 코미디물의 ‘양념’을 예상했던 관객에게는 숨차고 지루할 수 있다.

<파리의 밤이 열리면>은 인내심을 요하는 영화다. 병렬식으로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에 한 치 앞도 예측 불가다. ‘프랑스 영화’ 하면 흔히들 ‘우울하다’, ‘극적인 요소가 적다’, ‘잔잔하다’고 말한다. ‘칸 영화제’로 대변되는 예술 영화의 나라라는 이미지와 60년대 누벨바그(nouvelle vague, ‘새로운 물결’이라는 의미의 급진적, 좌파적 운동)의 영향을 받아서다.

영화는 이러한 흐름을 깨는 대중성을 띄면서도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중간자적 입장의 작품이다. 로드 무비라는 점, 하는 것마다 꼬이는 상황을 통해 공감을 유도한다는 점이 대중적이고, 판타지가 아닌 현실성 짙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네 인생을 반영한 점이 철학적이다.

사진 찬란.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다. 칸 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보기도 했던 배우 에두아르 바에르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그는 각본을 쓰고 루이지 역으로 출연하며 1인 3역을 자처했다. 그가 오드리 토투와 <좋은 걸 어떡해>(2002) 이후 두 번째로 선보인 호흡을 보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재미다. 지난 22일 국내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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