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한국 마라톤 큰별 서윤복 옹 별세

한국 육상의 큰 별이 졌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인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세계를 제패했던 한국 마라톤 영웅 서윤복 옹이 27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1923년 서울에서 태어난 서윤복 옹은 24세이던 1947년 4월 19일 보스턴 국제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25분 39초의 당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세계 4대 마라톤 중 하나인 보스턴 마라톤의 사상 첫 동양인 우승이었다. 그는 한국과 태극기를 세계적으로 알린 첫 스포츠 스타였다. 당시 김구 선생은 서윤복 옹에게 ‘족패천하’(足覇天下: 발로 천하를 제패하다)라는 휘호를 써줬다. 서윤복 옹은 1993년 경향신문 컬럼에서 “이 조그만 체구로 어떻게 큰 서양인을 이겼냐”면서 “우리의 태극기를 해외에 휘날리게 한 장한 청년이라며 휘호를 써주셨다”고 회고했다. 그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어렵고 힘든 시절에 국제마라톤 대회를 제패, 한국의 존재를 세계만방에 알리고 국민에 희망을 안겼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을 제패했을 당시 고 서윤복 옹. 대한체육회 제공

고인은 일본 강점기 일본인들이 입던 헌 옷을 입고 동대문에서 헌 스파이크 운동화를 구해 직접 손질해 훈련에 매진했다. 보스턴 마라톤 참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갈 때는 미군 군용기를 얻어타고 갔다. 당시 우리나라 육상대표팀 감독은 일제식민지 시절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고 손기정 옹이었다. 서윤복옹이 우승하자 두 사람은 서로를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 출전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서윤복 옹은 이후 현장과 행정을 두루 맡아 한국 육상을 이끌어왔다. 보스턴 마라톤을 비롯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마라톤 선수단 감독,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선수단 감독과 단장을 지내며 현장에서 후배 양성에 힘을 썼다. 대한육상경기연맹 집행부로 이사, 전무이사, 부회장 등을 거쳤다. 1961년부터 17년간 서울시립운동장장으로 일했으며, 1978년부터 4년간 대한체육회 이사로 전국체전위원장직을 수행했다.

보스턴 마라톤을 제패하고 김구 선생을 만난 서윤복. 왼쪽부터 서윤복 손기정 김구 남승룡. 경향신문DB

대한체육회는 서윤복 옹이 한국 스포츠 발전에 남긴 공적을 기려 2013년 대한체육회 스포츠영웅에 선정한 바 있다.

한국 마라톤 거목 서윤복 옹의 별세에 후배 마라톤인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황규훈 삼성전자 육상단 감독은 “모든 육상인의 존경을 받았던 분이다. 선수들에게 항상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선수 이전에 훌륭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밝혔다. 그는 “선생님은 병상에서도 늘 침체된 한국 마라톤의 부흥을 기원했는데 후배로서 그 뜻을 받들지 못해 죄송하고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서윤복 옹의 장례는 대한체육회장으로 거행된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2호에 마련됐다. 선수와 지도자들을 위해 태릉선수촌과 진천선수촌에도 임시분향소를 설치한다. 발인은 6월 29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도 안성에 있는 천주교 공원묘지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