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박상미의 고민사전] 나를 믿어 주는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의 핵심 주제는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 사람의 타고난 성질은 변하기 힘든 것일까? 진화심리학자들은 유전자와 후천적 경험이 5:5 정도의 비율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얼마든지 좋게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변하겠다는 자신의 의지와, 주변 사람들의 믿음과 응원이 만났을 때, 타고난 유전적 성질을 극복하고 변화할 수 있다. 후천적 경험의 질이 높을수록 사람은 지금보다 나은 모습으로 변화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재소자들의 인성교육을 오래 하다 보니, 일반인들에게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악한 사람은 정말 안 변하죠?’이다. 그러면 내 대답은 ‘아니요’이다.

교도소 수업이 끝나면, 곧 퇴소하시는 분들이 나와서 인사를 한다. 그럴 때면 울컥 눈물이 난다.

“저, 내일 퇴소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한 마음 갚을 길이 없네요….”

“아니요.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것이 있다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더욱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또다시 남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을 거라 믿기에,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꼭 한다. 그러면 상대의 표정에는 ‘나의 도움을 원하는 사람도 있구나. 나도 누군가를 위해서 해 줄 것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자존감이 가득 퍼진다. 퇴소 후에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또 수감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바른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다. 교도소 안에서 과거를 반성하고 종교를 접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분들을 자주 만난다.

가족이 한 명도 없어서 영치금도 없었고, 퇴소하는 날도 쓸쓸하게 혼자 교도소 문을 나서는 사람들을 볼 때는 마음이 무겁다. ‘저 사람이 처한 상황이, 어쩔 수 없이 다시 범죄의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도소 건물을 바라보며 큰절을 올리고 씩씩하게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불안이 사라지고 그의 미래를 기대하게 된다.

퇴소 후에 힘들게 번 돈을 들고 와 “나처럼 가족이 없는 재소자들의 영치금으로 넣어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재소자를 위해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퇴소자도 있다. 변화된 그들은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다시 찾아왔노라 말한다.

재소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은 ‘그랬구나’다. 누구도 귀 기울여주지 않았던 각자의 사연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 줄 때 사람은 변한다. 사람 안 변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그들을 대할 때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재소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은 다 그렇다.

어릴수록 변화 가능성은 크다. 하와이 군도 북서쪽에 <쥐라기 공원>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카우아이 섬이 있다. 폭포가 정말 아름다운 환상적인 섬이다. 한때는 이곳이 ‘지옥의 섬’이었다고 한다. 다수의 주민이 범죄자, 알코올 중독자, 정신질환자였고, 청소년들은 그런 어른들을 보고 배우며 똑같이 자라고 있었다.

이곳에서 1954년부터 학자들이 ‘카우아이 종단연구’를 시작했다. 카우아이 섬에서 태어난 신생아 833명이 30세 성인이 될 때까지 성장과정을 추적하는 엄청난 프로젝트였다. 그들의 가설은 이랬다.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은 비행 청소년, 범죄자, 중독자의 삶을 살 가능성이 클 것이다’. 우리의 통념과 다르지 않았다. 심리학자 에미 워너라는 사람은 833명 중에 극단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크고 있는 고위험군의 청소년 201명에게 집중해서 그들의 성장과정을 추적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중 72명의 청소년들은 활기차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성취해 가며 바르게 잘 자라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들이 잘 자랄 수 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 아이들 곁에는 무조건 믿어주고 공감해 주고 응원해 주는 어른이 최소 한 명은 있었다. 내가 만난 재소자들의 대부분은 그런 어른이 한 명도 없던 사람들이다. ‘나를 믿어 주고 공감해 주고 응원해 주는 한 사람의 힘’은 어떤 환경에서도 반듯하게 잘 살아 갈 수 있는 비결이자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이다. 나의 ‘한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한 사람’인가?

‘문화치유 전문가’ 박상미는?

‘문화치유 전문가’로 불리는 박상미씨는 문화치유 교육센터 ‘더공감 마음학교’와 ㈜더공감 커뮤니케이션의 대표다. 경찰대학교 외래교수로 있으며, 법무부 교화방송국에서 전국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영화치유 강의를 하고, 교도소와 소년원에서는 <문화치유학교>를 연다. 저서로는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의 힘> <마지막에는 사랑이 온다> 등이 있다. 고민상담은 skima1@hanmail.net으로….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