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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수의 책 읽는 아틀리에] 온전한 나를 위한 세상 모든 책과의 대화 ‘다른 생각의 탄생’

intro

천지수는 화가다. 로마국립미술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2003년에는 ‘지오반니 페리코네’ 이탈리아미술대전(La pittura 4 edizione ‘Giovanni Pericone’)에서 대상을 받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아티스트로서 갈증을 느낀다. 그러던 2008년, 그녀는 혈혈단신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리고 탄자니아에서 암석벽화 복원작업에 참여한다. 사자처럼 지낸 그 2년간의 아프리카 생활은 천지수가 예술가로서 자기정체성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천지수에게 아프리카는 ‘맹렬한 생명’ 그 자체였다. ‘천지수의 책 읽는 아틀리에’는 사자의 영혼을 가슴에 새긴 화가 천지수가 ‘책의 밀림’ 속에서 매일매일 미술적 영감을 사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열두 번째 책은 장동석의 <다른 생각의 탄생>(현암사)이다.

<꿈의 놀이-20170716> 45.5x53㎝ Oil on Canvas

“결국 읽는다는 행위는 내밀한 자기와의 대화이며, 오롯이 혼자만의 황홀경으로 들어가는 참 좁은 길입니다.”

때로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인해 며칠씩 공들여 책을 읽는다. 출판평론가 장동석의 신작 <다른 생각의 탄생>을 읽을 때도 그랬다. ‘혼자만의 황홀경’이라는 말에 나는 즉각 반응했다. 가슴이 뛰었다.

그는 읽는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인간의 본성이자 사람됨을 증명하는 중요한 삶의 방식이 바로 읽는 행위”라고.

어쩌면 ‘읽는다’는 것과 ‘오르가슴’은 가장 닮은 감각일지 모른다. 두 개의 감각 모두 지금 여기 내가 살아 있음을 온 몸으로 실감하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다른 생각의 탄생>은 고전부터 비교적 최근의 책들까지 저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읽어 온 기록들을 모은 책이다. 책은 주제에 따라 크게 3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첫 장부터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여기에서의 키워드는 ‘읽기, 공부, 예술, 여행, 그리고 모험’이다. 저자는 인간이 문자를 발명한 후 세상에 나온 거의 모든 책들은 대개 이들 다섯 가지 주제의 범주 안에 넣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가 바로 ‘나를 다르게 만드는 것들’이라고 한다.

‘대체 책을 얼마나 많이 읽으면 저렇게 범주를 가늠할 수 있을까?’ 나는 <다른 생각의 탄생>을 읽는 내내 아뜩했다.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표현대로 ‘오롯이 혼자만의 황홀경’에 나는 수시로 드나들었다.

나는 <다른 생각의 탄생>을 그리고 싶었다.

그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쓰고, 읽는다는 행위’를 ‘그리고, 본다는 행위’로 한번 바꿔보고 싶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행위를 가장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행위로 버꾸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책은 모든 사람의 비밀스러운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는 유일무이한 통로.’ 저자가 쓴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을 잡아챘다. 책을 쓰고 읽는다는 것과 그림을 그리고 본다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라는 것을 나에게 깨닫게 만든 문장이기도 했다.

내 앞에 놓인 캔버스가 마치 거울처럼 느껴진다.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 하지만 제대로 비춰지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그림을 그리면서 황홀경에 들어가기란 쉽지 않아서 나는 아주 좁은 통로를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붓을 들고 거울에 흐릿하게 비춰진 나 자신과 내밀한 대화를 시작한다. 동트기 직전 새벽의 색이 우선 떠오른다. 나는 이 시간을 사랑하기에 늘 이 시간에 그림을 그린다. 창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들은 밤새도록 온 우주를 밝히며 놀았다. 그러나 이제 여명의 시간이 왔다. 아직 남은 별들은 아쉬운 듯 마지막 빛을 내며 간밤의 축제를 기억한다. 나는 이 순간을 포착해 별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얼른 붓을 들어 별들을 향해 하늘로 날아가는 나비와 집을 그린다. 나비는 나의 ‘자아’일 것이 분명하다.

그림 아래의 지평선 끝 새하얀 빙하처럼 보이는 것은 ‘책들’이거나, 그 어떤 것일 수 있다. 책처럼 그림에도 정답은 없다. 물론 그렇다. 정답은 없어야 한다. 없다는 것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모든 사유는 정답이 없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정답이라는 것을 가지고 시작하는 모든 사유는 틀림없이 틀린다. 그런 사유는 없다.

<다른 생각의 탄생>에 등장하는 책 중에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이 있다. 이 책을 쓴 이광주 교수는 “한 권의 책을 통해 ‘일탈을 음모하고 꿈의 놀이’를 경험한다”고 말했다. 내가 ‘서평을 그리는 놀이’를 시작한 것도 바로 나로서는 비밀스러운 일탈의 음모였고 꿈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과 독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감상자 사이에는 묘한 마법의 길이 있다. 프랑스 작가 샤를 단치는 <왜 책을 읽는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책에 조언을 부탁하는 대신 책 속의 보물을 훔쳐내야 한다.”

이 문장이 나에게 알리바바의 용기를 준다. 구텐베르크의 은하계가 펼쳐질 커다란 문 앞에서 나는 붓 한 자루 들고 서서는 큰 소리로 외친다.

“열려라 참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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