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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고시엔 관전기] ①교육의 장, ‘순수야구’를 다시 만나다

고시엔 고교야구대회가 펼쳐지고 있는 일본 오사카 고시엔구장.

스포츠경향에서는 최근 일주일간 일본 고시엔 야구대회를 직접 관람하고 온 김성근 전 한화 감독의 <고시엔 관전기> 3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김 전 감독이 지켜본 고시엔 대회와 일본프로야구, 오 사다하루 소프트뱅크 회장과 대화 등이 담길 예정입니다.

고시엔구장이 낯선 곳은 아니었다. 과거 지바 롯데 코치로 있을 때를 비롯해 이미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가 열리는 오사카 고시엔구장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화를 떠난 뒤 울산과 서울을 오가던 내겐, 사실 계획에 없던 여행이었다. 정준(김정준 전 한화 코치)이가 아버지를 위로하겠다는 뜻으로 내게 여행을 제안했고, 생전 처음 둘만의 여행길에 오르게 됐다. 방송 해설을 열심히 하고 있던 아들을, 괜히 구단으로 불러내 내가 미안하던 터였는데 오히려 위로를 받고 있다. 여행의 ‘화두’는 역시 야구였다. 마침 고시엔대회가 열리는 오사카로 향하게 됐다.

고시엔구장을 찾은 지난 11일에는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나온 요코하마고, 후지나미 신타로 뛴 오사카 도인고 등 야구 명문고의 경기가 줄이어 열렸다. 4경기가 쉴 틈 없이 벌어진 현장 속에서 바로 이거다 싶었던 것은, ‘스피드’였다. 선수는 물론 심판까지도, 야구장에서 걸어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공수교대를 할 때 선수들이 100% 전력 질주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어느 곳에도 머뭇거림이 없었다. 예컨대 삼진을 당해도 타석에서 벤치로 바로 뛰어 들어갔다. 내야수가 실책을 해도 그 자리에서 아쉬움을 표하거나 자기 감정을 나타내느라 시간을 소모하는 일이 없었다. 야구를 하면서 기본적으로 배우는 것들이지만, 우리 학생야구에서는 어느 정도 희미해진 문화라는 생각에 꽤 새삼스러워 보였다.

감독이 그라운드로 나오는 일도 없다. 선수들에게 전달할 내용이 있다면, 특정 선수를 내보내 대신 하도록 한다.

심판 항의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나중에 물어보니 판정에 대한 미련을 푸는 곳이 따로 있었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벤치 뒤에 작은 방에 3인이 모인다. 이 곳에서는 대회 본부 심판위원장과 경기를 펼친 지역 심판위원장이 미니 토론을 한다. 가령, 요코하마 대표와 오사카 대표의 경기였다면 두 지역 심판위원장이 해당 경기 판정에 대한 복기를 한다. 두 지역 심판위원장은 해당학교에 그 내용을 알려 혹여 ‘판정 때문에 졌다’는 오해 여지가 없도록 배려한다. 고시엔은 선수들에게는 ‘꿈의 무대’나 다름 없다. 경기 외적인 아쉬움을 남기지 않도록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프로야구 감독을 한 덕분에 일본 고교야구연맹의 배려를 받을 수 있었다. 연맹 사무국장인 다나베씨가 우리를 대회운영본부로 안내했다. 그 곳에서는 20명 가까운 사람들이 자기 파트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일기예보를 통해 고시엔 상공을 체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변 교통상황을 살피는 사람도 있었다. 신기했던 건 경기장 주변 20㎞ 안쪽으로 낙뢰가 들어오면, 경기를 중단시키는 점이었다. 그만큼 선수 안전을 우선시했다. 경기 전후 양쪽 학교 선수들 몸상태를 체크하는 것도 그랬다.

입장 티켓이 매진된 가운데 빈 자리가 나오길 기다리는 팬들.

연맹에서는 대회를 위해 트레이너 8명을 따로 고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경기 전 양쪽 학교 선수들을 몸상태를 일일이 체크한다. 혹여 부상 여지가 보이면, 출전을 막을 수도 있다. 경기 뒤에도 선수들 몸 상태를 다시 살핀다. 곧바로 스트레칭 같은 정리 운동을 시킨다. 경기 중 마시는 물도 연맹에서 직접 관리했다. 선수별 번호가 적힌 물병을 직접 공급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자칫 외부에서 갖고온 음료수를 마시고 탈이 나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선수 안전은 퇴근 길까지 이어진다. 경기가 끝나면, 선수들은 대회 본부에서 제공한 차량을 타고 움직인다. 해당 버스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봤더니, 커튼을 쳐 놔 그 안을 볼 수가 없었다. 버스는 한동안 출발하지 않다가 경기 밖으로 가는 통로 쪽 신호가 떨어질 때 그제서야 달려나갔다. 좌우로 꺾는 법도 없이 일단 직진을 한 뒤 일정 거리를 지난 뒤에야 각각 숙소로 간다.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한 조처라고 했다.

경기장 안팎을 살피니 엄청난 관중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들로 보였다. 그날의 관중은 4만7000명. 경기별로 바뀌는 알프스석(응원석) 누적 관중까지 더하면 더 많아진다. 관중석 빈자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팬들도 경기장 밖에 상당히 많았는데, 그곳에 머물다 보니 점차 그 열기의 이유와 대회 운영 시스템이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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