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황금 추석연휴, 여기 어때①] 사색하며 돌아보는 ‘청정고장 인제’

가을이 익어가는 원대리 자작나무숲.

10월2일이 임시공휴일이 되면서 9월30일부터 10월9일까지 10일간의 황금연휴가 생겨났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이렇게 긴 연휴는 없었다. 그런 만큼 뭇사람들의 머리는 벌써부터 복잡할 듯싶다. 어떻게 하면 이번 황금연휴를 정말 금쪽같이 보낼 수 있느냐는 ‘고민’ 때문이다. 그 해답 중 하나는 여행이다. 그동안 일상생활에서 지친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는 데 여행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을 선택했다면 첫 행선지로는 강원도 인제를 첫 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다’던 두메산골 인제가 이제 서울에서 1시간30분이면 넉넉히 도착할 수 있는 ‘코앞의 명소’가 된 까닭이다.

백담사의 가을 풍경

■가을이 익는 시인의 마을

머나먼 두메산골이 지척으로 변했다. 가 보고 싶었지만 쉽게 가지 못해서 추석 같은 명절 때나 가 봤던 ‘사촌형님 집’을 닮은 인제. 그곳으로 가기 전에는 공부가 먼저다. 아는 만큼 보이니까!

인제(麟蹄)는 “기린의 발굽”을 뜻한다. 여기서의 기린은 아프리카 사바나의 목이 긴 동물이 아니라 ‘사슴의 몸에 소의 꼬리, 말의 발굽’을 가진 상상 속 동물이다. 재주와 능력이 뛰어난 아이를 가리키는 ‘기린아(麒麟兒)’의 그 기린이다. 남북으로 타원형인 지형이 마치 기린의 발굽을 닮은 듯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 인제다.

인제는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96개이고 전체 면적의 90%가 산과 강인 산악마을이다. 설악산 단풍이 통상적으로 9월 중순 대청봉 정상을 중심으로 시작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10월 초순께에는 인제에도 단풍이 찾아들 게 분명하다. 단풍으로 둘러싸인 인제! 이것만으로도 가을 여행지로 충분하다.

박인환문학관

인제는 시인의 마을이기도 하다. ‘명동백작’ 박인환이 인제면 상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박태원, 이상, 김수영, 김경린 등과 함께 일제강점기와 전후시대를 걸친 ‘모던뽀이’의 대표였다. ‘모던뽀이’들은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몇 해 만에 전쟁으로 모든 것이 황폐화된 서울. 그 중심지인 명동에서 술과 담배 그리고 문학으로 그 아픔과 시련을 달랬다. 서른 살 나이에 술에 빠지고 술에 취해 어느 날 훌쩍 세상을 떠난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은 그래서 더욱 아리다. 1956년 어느 날 명동의 한 술집에서 술에 취한 박인환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써내려 갔다. 옆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극작가 이진섭이 감탄하며 즉석에서 곡을 붙였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즉석에서 노래를 불렀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의 가수 나애심이 불렀다고도 하고, 테너 임만섭이 불렀다고도 한다. 최불암의 모친이 운영하던 ‘은성’이 그 무대였다.

통속을 거부하고 시대를 가로지르던 박인환은 ‘세월이 가면’을 쓴 며칠 후 세상을 떠난다. 사흘간 통음하고 집에 돌아온 그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생명수를 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떠났다. ‘사람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라더니…. ‘명동샹송’으로 불리는 ‘세월이 가면’은 그 뒤 오누이로 오해받는 박인희가 불러 크게 세상에 알려졌다. 인제군 상동리 생가터에 조성된 ‘박인환문학관’에 가면 그의 시와 노래를 흠뻑 감상할 수있다.

박인환문학관에서 46번 국도를 타고 내설악을 향해 가다 보면 백담사를 만난다. 백담사는 ‘민족시인’ 만해 한용운의 생애가 각인돼 있는 사찰이다. 1896년 설악산 오세암에서 출가한 한용운은 1905년 백담사에 입산해 득도했다. 88편의 시를 묶은 <님의 침묵>은 그의 사상과 생애의 응집이다.

백담사는 내설악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사람이 범접하기 어려운 곳이어서 스님들의 수행처로는 오히려 적합했다.

만해마을

수행처와 도피처! 이음동어(異音同語)다. 백담사는 만해(卍海)와 일해(日海)의 기묘한 동거를 목도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5공 청산’의 시대적 요구 속에 전두환이 백담사로 도피한 때가 1988년 11월23일이었다. 몇 개월만 버티면 될 줄 알았던 그의 유배생활은 국민적 압박으로 1990년 12월30일까지 769일 동안 이어졌다.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다며 성북동 집을 북향으로 만든 만해와 5·18은 폭도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전 재산 29만원짜리 일해. 전두환이 머물렀던 극락보전 앞 화엄실과 만해기념관의 거리는 불과 십수미터다.

인제는 통기타 저항가수 김민기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그가 ‘늙은 군인의 노래’를 만든 때는 1976년이다.

“나 태어난 이 강산의 군인이 되어/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나 죽어 이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내 청춘….”

1980년대 학생들이 ‘군인’을 ‘투사’로 바꿔 부르면서 ‘데모송’으로 분류돼 금지곡이 된 비운의 노래다. 하지만 이 노래는 김민기가 속한 부대의 선임하사에게 바친 일종의 헌정곡이다. 정년을 앞둔 선임하사가 30년 군생활을 마감하는 심경을 격하게 토로하자 감수성 예민한 김민기가 만들어 준 곡이다. 작곡료로 받은 막걸리 두 말은 내무반원들과 나눠 마셨다.

정년을 앞둔 ‘심란한 늙은 군인’과 세상물정 모르는 ‘빨갱이 대학생’이 근무하던 부대는 인제군 원통면의 보병부대였다.

■명태와 고속도로

명태만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생선은 없다. 얼리면 동태, 말리면 북어다. 말려도 내장과 아가미를 빼고 4~5마리를 한 코에 꿰어 말린 것은 코다리라 부른다. 하얗게 말리면 백태, 검게 말린 것은 흑태, 딱딱하게 말리면 깡태다. 새끼는 노가리다. 한겨울에 일교차가 큰 덕장에 걸어 눈을 맞으며 얼고 녹기를 스무 번 이상 반복하면 살이 노랗고 연해지며 쫄깃하고 깊은 맛이 난다. 이것은 황태다. 최고급 명태로, 숙취 해소와 간장 해독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대까지 명태는 한반도에 널려 있었다. 최고기록을 세운 1940년의 어획량이 27만톤이었다. 연간 총어획량의 16%에 달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지천에 널렸다’고 할 수 있다.

관혼상제에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인기품으로, 창자와 알을 창난·명란젓으로 만들어 먹어 버릴 것이 하나 없는 생선 명태. 그 ‘국민 생선’ 명태가 주산지인 동해에서 자취를 감췄다. 지구온난화 탓이 크다. 한류성 어족인 명태가 수온상승 때문에 러시아 위쪽으로 올라간 것이다. 주어획처였던 강원도 고성에서는 이제 명태 대신 오징어를 잡는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했다. ‘동해 명태’가 없으면 ‘러시아 명태’다. 이름은 그렇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예전에 동해에서 놀던 녀석들이 바닷속 환경 탓에 러시아 쪽으로 이사를 간 것뿐이다.

인제군 용대리는 대한민국 최대의 명태덕장이다. 눈이 많이 내리고 한랭한 지역이며 일교차까지 커서 천혜의 덕장으로 꼽힌다. 미시령을 넘어온 매서운 바람이 황태를 더욱 꾸덕꾸덕 말려 준다. 용대리 주민들은 해마다 겨울철이면 23만1000㎡의 덕장에 명태를 내건다. 국내 총생산량의 70%가 용대리에서 나온다.

한계령의 가을 풍경

그러나 최근 청정관광 고장인 인제가 신음하고 있다. 서울~양양고속도로(동서고속도로) 개통 이후 영동과 영서를 잇던 44번 국도의 통행량이 60% 줄면서 국도 주변 휴게소와 황태판매장, 야영장, 래프팅 시설 등 모든 분야의 고객이 감소해 상권이 힘을 잃고 있다. 미시령터널의 개통 이후 미시령 옛길이 유령도로처럼 변하고 아름답던 미시령휴게소마저 관광객의 발길이 끊겨 폐쇄한 아픔을 또다시 겪게 된 것이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사람들은 속도를 얻었다. 하지만 얻은 것이 있으면 잃은 것도 있게 마련. 은빛비늘의 아름다운 북한강, 두물머리의 몽환적 풍광, 내설악의 수정 같은 계곡이 서울과 동해안을 2시간 내에 연결해 주는 편리한 도로에 밀려날 위기다. 고성의 명태에 이어 인제의 황태도 없어질지 모른다.

정부가 10월2일을 임시공휴일로 삼은 것은 국민에게 휴식을 주고 내수를 진작하기 위함이다. 그 의미에 딱 맞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인제로의 여행이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