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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황영조의 쓴소리, “한국 마라톤 부활하려면 순위 말고 기록 경쟁을 벌여야”

“구간 마라톤 대회에선 선수 전원이 투지를 갖고 엎치락 뒤치락, 다이내믹한 경기를 펼쳐야 합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동료들을 생각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기록을 단축시켜 주는 자세로 뛰어야합니다. 기록 단축 없이 팀 순위만 생각한다면, 그런 경기는 의미가 없습니다.”

한국 마라톤의 영웅 황영조(47)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은 10일 열린 제47회 대통령기 전국통일구간 마라톤 대회를 지켜 보면서 안타까움을 참지 못했다. 한국 마라톤이 진정 부활하길 바란다면 “편안함에 안주하지 말고, 죽기살기로” 더욱 치열한 노력과 경쟁을 펼쳐주길 바랐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이 10일 경기 파주 임진각의 대통령기 통일구간 마라톤 대회 골인지점에 서 있다. 황 감독은 “기록경쟁을 벌이도록 유도해야 한국마라톤이 산다”고 강조했다.
/대한육상연맹 제공

황 감독이 가장 아쉬워한 부분은 경기 기록이었다. 고교생 선수들이 겨룬 시·도 대항전에서 1위를 차지한 서울(배문·서울체고 연합팀)의 2시간 30분 33초 보다 대학·일반 선수들이 나선 팀대항전 입상팀들의 기록이 처졌다. 우승팀 한체대(2시간 31분 35초)를 비롯해 건국대, 한국전력 등이 총 47.0㎞ 구간에서 2시간 31분~2시간 32분대에 들어왔다.

전체 코스를 고교생들은 6명이 이어달리고, 대학·일반은 4명이 나눠 달린다는 차이가 있지만 선배들이 변명할 여지는 없었다. 고교생 대회로 열리던 대통령기에 대학·일반부가 추가된 2013년 이후 선배들이 후배들보다 늦게 골인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시·도 대항전에서 서울의 우승을 조련한 조남홍 감독(배문고)은 “기록과 실력이 좋은 형들이 앞서 달리며 후배들을 이끌어 주길 바랐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꼬집으며 동시에 한국 마라톤의 현실과 미래를 걱정했다.

황영조 감독은 “일부 팀에서 에이스가 못 나오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선수가 겨우 달리는 등 사정은 있었지만 그래도 선배들이 먼저 골인해야 했다”면서 “그 만큼 우리 장거리 선수들의 실력이 저하됐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황 감독은 내친 김에 후배들을 향해 쓴소리를 던지며 분발을 촉구했다.

“요즘 우리선수들은 외국선수들과 만나면 ‘해봐야 안 된다’며 아예 경쟁을 포기한다. 패배의식에 젖어있다는 느낌이 든다. 국제대회에서 당장 안 되더라도 20㎞까지 힘껏 붙어보고, 다음엔 25㎞까지 겨뤄보고 하는 식으로 도전하면서 기록 단축을 이뤄야 한다. 당장 지난 7월 런던 세계선수권에서 우리선수들이 거둔 성적은 완주한 선수 중 꼴찌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2017 세계선수권 마라톤에서 한국선수가 거둔 최고 성적은 2시간 25분 08초로 전체 완주자 71명 중 59위에 그쳤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봉주가 2000년 작성한 한국최고기록(2시간 7분 20초)은 요지부동이다. 세계신기록(2시간2분57초), 아시아 신기록(2시간 6분 16초)이 요원한 것은 물론이고 2시간 10분대 초반에 뛰는 선수조차 손에 꼽기 힘들다. 연맹에 등록된 성인 마라톤 선수들은 고작 80여명, 마라토너를 꿈꾸는 고교생 장거리 선수들은 200여명에 불과하다.

육상인들은 한국 마라톤을 살리는 과정 중의 하나로 대통령기와 같은 구간 마라톤 대회를 늘리고 키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황 감독의 말처럼 선수들이 이런 대회를 통해 고른 전력을 갖추고 경쟁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치열한 기록 싸움을 벌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육상연맹이 주최하는 대학·일반부 구간마라톤 대회는 경향신문사가 주최하는 대통령기 밖에 없다. 고교생들의 이어달리기 대회도 코오롱 구간마라톤 대회를 포함해 2개밖에 없다.

배호원 회장을 비롯한 대한육상연맹 집행부 임원들은 “내년에는 17개 시도가 전부 출전할 수 있도록 대회 활성화에 힘쓰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전력 김재룡 감독은 “구간 마라톤 대회가 3개 정도만 되더라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지도자로서 선수들이 더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도록 분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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