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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설경구 “뭘 찍어도 ‘강철중’? 자기복제하다 사라질 것 같았다”

“뭘 찍어도 ‘강철중’(영화 <공공의 적> 주인공) 같았죠? 상업 영화만 쫓아다녀서 그래요. 같은 캐릭터를 계속 써먹고 소리만 지르고. 연기는 평범해졌죠.”

이토록 담담하게 자기검열할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 배우 설경구는 자신의 단점을 놀랍도록 솔직하게 꺼냈다. 그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배우 설경구, 사진제공 쇼박스

설경구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연기적인 자기복제에 대한 고민과 그 대안이었던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감독 원신연)에 대한 애정을 모두 표현했다.

■“자기복제 10년, 이대로 사라질 것 같았다”

1999년 한 배우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영화 <박하사탕>로 무명의 설움을 단번에 날린 설경구였다. 이후 그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공공의 적> <오아시스> <광복절 특사> <실미도> 등 그의 이름을 내건 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성공은 곧 안일함을 선사했다.

“당시 여러 작품을 너무 달려서 지쳤었죠. 쉽게 가고 싶었어요. 그래도 관객은 들었으니까요. 그렇게 10년이 갔고, 제 속에도 갈증이 쌓이더라고요. 이러다간 소리 소문없이 사라질 것 같았어요.”

스스로 반성도 했다.

“수년을 비슷한 모습으로 뻔뻔하게 출연했으니 절 보는 관객의 피로도도 얼마나 높아졌겠어요. 저도 피곤한데, 관객들은 말할 필요가 없죠.”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선물처럼 온 작품이 <살인자의 기억법>이라고.

“치매에 걸린 연쇄살인범이라니, 만만치 않은 캐릭터였고 어려웠지만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본을 받은 순간 출연하겠다고 결정했죠. 제게 온 게 감사할 정도였으니까요.”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속 설경구.

■“늙기 위해 땀복 입고 다이어트”

노력은 배반하지 않았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건 오로지 ‘설경구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큰 공을 세웠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쏟아져도 그의 연기력을 의심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을 정도였다.

“극 중 70대로 설정됐지만 특수분장으로 얼굴을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 직접 살을 빼 늙기로 결심했죠. 탄수화물도 끊고 땀복 입은 채 땀만 뺐어요. 웨이트 트레이닝도 절대 안 했죠. 4~5일간 라면 2개로 버티기도 했어요. 배우는 첫 장면에서부터 신뢰감을 줘야 하는데, 그렇게 찍었더니 나름 설득력 있게 나왔더라고요.”

다이어트 때문에 설현 등이 참여한 고사 뒤풀이도 제대로 못 즐겼다며 푸념했다.

“어쩔 수 없었어요. 잠시 얼굴만 비치고 집에 바로 갔죠. 먹으면 살찔까봐요. 그래서 김남길과 설현이 빨리 오길 기다렸어요. 배턴 터치하고 가려고요.”

그럼에도 살이 빠지니 카타르시스를 느꼈단다.

“하루하루 얼굴에 변화가 있으면 캐릭터에 접근해간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그런 카타르시스마저도 없으면 힘들어서 이걸 어떻게 하겠어요? 하하.”

■“50대에 아이돌급 인기? 감사하면서도 부끄러워”

최근 설경구에겐 또 하나의 키워드가 생겼다.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 이후 ‘아이돌급 팬덤’이 생긴 것이다. 그룹 워너원에게만 있을 줄 알았던 지하철 광고 조공이 이뤄지는가 하면, 가는 곳곳에 엄청난 환호성이 뒤따른다고.

“나이 50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어요. 그걸 바라고 영화를 찍은 게 아닌데 과분하게도 많이 응원해주시니까요. 지하철 광고도 설마 할까 싶었는데, 막상 실현되니 감사하면서도 부끄러워요.”

스타로서 인기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한 터라 더욱 뜻깊은 지금이다.

“한땐 제 팬카페 회원도 3만 명 넘게 있었죠. 하지만 늘 똑같은 연기에 떨어져나간 팬들도 있고, 결혼을 하면서 루머에 등진 분들도 많았어요. 그래서 저도 팬카페를 잊고 살았는데, <불한당>으로 칸을 다녀온 뒤 제 팬들의 화력이 어마어마해졌다는 소식이 들리더라고요. 하하.”

10년간 오르막과 내리막을 겪은 그는 배우로서 태도도 달라졌다. 전엔 관심도 없던 ‘캐릭터의 얼굴’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안주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도 깨달았다. 앞으로 몇 년 뒤 그는 또 어떻게 변해있을까.

“예전 신영균 선배가 식사를 하면서 맡고 싶은 캐릭터와 작품에 대해 열정적으로 얘기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이게 배우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죠. 물론 저 역시 나이가 들면 선택의 폭도 좁아지고 도전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겠지만 작품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만큼은 안 식길 바랍니다. 외모는 늙어도 눈은 안 늙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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