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일본·대만 기자들에게 비쳤던 이승엽, “왜 은퇴하나요?”

삼성 라이온즈 팬들이 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이승엽이 9회초 수비를 들어서자 휴대폰으로 불빛을 연출하고 있다. 2017.10.03 / 대구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이승엽(41·삼성)의 은퇴경기로 열렸던 삼성-넥센전.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던 ‘살아있는 전설’ 이승엽의 은퇴는 아시아 야구의 경쟁자였던 일본, 대만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경기 전 이승엽의 기자회견장에는 100명이 넘는 취재진이 몰렸다. 그 가운데서는 직접 야구장을 찾은 일본, 대만 기자도 있었다.

국내 취재진의 질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2002년부터 한국야구를 취재한 일본의 무로이 마사야 기자는 ‘일본 팬들에게도 한 마디 해달라’라고 부탁했다. 어찌보면 이승엽은 일본 야구팬에겐 애증의 선수다. 수많은 한·일전에서 비수를 꽂은 이승엽이지만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인기구단인 요미우리에서 4번 타자로 사랑받았던 때도 있었다.

이승엽은 “일본에서 8년간 뛰면서 좋을 때나 안좋을 때나, 2군에 머물 때나 응원해주신 열성적인 팬들 많이 있었다. 그 분들에게도 이렇게 감사 메시지를 전할 자리가 돼 감사드린다. 팬 여러분께는 다 만족 시켜드리지 못했지만 열심히 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꼭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무로이 기자는 ‘일본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곧바로 질문을 이었다. 그러자 이승엽은 “열심히 했지만 생각한 것보다 훨씬 못미쳤다. 2군에 있던 시간도 많았고 폭발력 있지도 못했다”고 일본에서의 경력을 평가했다. 이승엽은 삼성에서 자유계약선수(FA)가 된 2004년부터 지바 롯데, 요미우리 자이언츠,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8년간 일본에서 뛰었다. 요미우리에서 4번 타자로 41홈런(2006년)을 치던 전성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승엽에겐 막판 부상 등으로 긴 슬럼프 속에 도전을 마감한 것이 더 쓰라린 상처로 남은 듯 했다. 결국 이승엽은 2012시즌을 앞두고 친정팀 삼성으로 컴백했다.

하지만 이승엽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본에서 많이 배운 일본 경험이다. 42살까지 뛸 수 있었던 비결도 일본에서 경험을 통해 나태해지면 안되겠다고 느꼈기 때문”이라면서 “일본에서 많은 공부를 하고 왔다. 성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한 대만 매체의 질문은 ‘이승엽 선수는 국제대회에서 항상 잘했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갔나’였다. 이에 이승엽은 “태극마크를 달면 대한민국을 대표해 뛰는 자리다.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실패나 실수가 있었지만 극적인 순간 홈런, 안타를 칠 수 있었던 비결은 대한민국만의 끈끈한 선후배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한국이 단기전에 강하다”며 자신을 내세우기 보다 대표팀의 분위기를 선전의 이유로 꼽았다.

여전히 경쟁력을 보여주는 시점에서 은퇴를 결정한 것 역시 그들의 시선에서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했다. 이승엽은 “내가 물러나지 않으면 구단에서 은퇴시점을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은퇴는 2년 전부터 계획한 부분인데 팀 성적이 좋다면 더 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러나 팀이 지난 두 시즌 9위로 마쳤다. 고참으로 책임을 느꼈고, 이제 팀이 변화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내가 은퇴함으로서 2군에서 1군만 바라보면서 뛰는 선수들이 주인공이 될 기회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이 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넥센 히어로즈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를 끝낸 후 은퇴식을 갖고 있다. 2017.10.03 / 대구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대만 취재진은 또 ‘다시 태어나면 야구하지 않겠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정말인가’이라는 질문도 했다. 수없이 받아봤을 이 물음에 대해서도 이승엽은 불편한 내색없이 “지금 스타가 됐을 때는 너무나 행복하다. 야구선수로서 그라운드에서 누린 행복이 정말 크다. 그러나 과정은 너무 힘들었다. 보통 노력으로는 되는 것은 아니다”며 “다시 만약 기회가 온다면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담담하게 털어놨다.

KBO리그 전설이지만 이승엽의 속깊은 얘기에 외국 기자들 역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로이 기자는 자신의 칼럼을 통해 “수많은 극적인 홈런과 성실한 인품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킨 이승엽이 유니폼과 ‘국민타자’이라는 갑옷을 벗고 그라운드를 떠났다”고 적었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