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홍선애·김성신의 북톡카톡] 순수하여 비겁하지 않은 ‘세상 밖으로 부는 바람’

intro

‘북톡카톡 시즌2’의 히로인 홍선애. 그녀의 직업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다. 경제와 건강, 그리고 교양 분야가 그녀의 전문영역이다. 방송인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카메라 앵글 밖에서의 홍선애는 어처구니없을 만큼의 고지식함과 독서에 관한 한 가장 순수한 열정을 가진, 조금 엉뚱한 청춘이기도 하다. 톡방의 주인장 김성신의 직업은 출판평론가다. 방송과 강연, 집필 등 온갖 수단을 통해 책의 흥미로움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그는 늘 재미를 찾는다. 책에 관한 격 없는 수다를 서평으로 기록해 보자는 ‘북톡카톡’ 칼럼도 그의 아이디어다. 책읽기가 연애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아가씨 홍선애. 꽃중년을 자처하는 수다쟁이 아저씨 김성신. 두 사람의 즐거운 책 수다, 북톡카톡 아흔 번째 이야기는 문영심의 <세상 밖으로 부는 바람>(말)이다.

성신:요즘 내가 선애를 보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네.

선애:누군가 나를 보고 노래를 떠올린다… 설레는데요? ㅋㅋ

성신:설레? 거참 허약한 심장도 다 있네.

선애:암튼 무슨 노랜지 궁금한데요?

성신:<제비꽃>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땐~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선애:“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고 싶어~”

성신:어라! 이 오래된 노래를 아네?

선애:얼마전 세상을 떠나신 조동진님의 노래잖아요. 그 아름다운 감성을 어찌 모를 수 있겠어요.

성신:음악 취향이 굉장히 올드한데? ^^

선애:아이유도 김광석 노래만 듣던데요 뭐! 그나저나 왜 저를 보면 이 노래가 떠오르시나요?

성신:내가 선애 처음 봤을 때 모습을 떠올리면, 이 노래가 같이 떠올라.

선애:제가 새처럼 날고 싶다고 했었나요?ㅎㅎ

성신:응! 말하자면! 선애는 첫인상이 되게 얌전해 보이기도 했지만, 나는 한편으로는 굉장한 에너지도 동시에 느꼈거든. 마이크를 잡고 방송을 하는 모습이 마치 새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았어.

선애:맞아요. 아나운서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그 시절에 저는 스튜디오에 앉아 매일 방송하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좋았고, 또 자유로웠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의 저는 정말 새가 돼 날아다녔어요. 그런 것을 보면 선생님은 직관이 굉장히 뛰어난 분 같아요. 독서 때문인가요?

성신:그렇게 봐줘서 고맙군. 암튼 <제비꽃>이란 노래는 한 여성의 일생을 지켜보는 바로 그런 내용이지.

선애:방금 <제비꽃> 가사를 찾아봤는데요. 우와 정말 아름답네요.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땐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고 싶어. /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 땐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 너머 먼 눈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어.

성신:정말 좋지?

선애:이거 딱 선생님이네요. 언제나 저를 지켜봐주시잖아요. 걱정하고 또 격려하시면서…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성신:잘 성장해 나가는 젊은이를 지켜보는 일은 군자의 큰 낙이라고 했어. 그 옛말을 나도 이젠 이해하는 나이가 됐네.ㅎㅎ 아무튼 이 노래를 가만히 듣다 보면 재미있는 생각이 들어.

선애:어떤?

성신:이 노래가 피천득의 1970년대 수필 <인연>에 대한 1980년대식 화답이랄까… 나는 그렇게 해석해 보기도 했지.

선애:아! 그렇게 보니 두 작품에 공통점이 있네요. 한 남녀가 평생에 걸쳐 3번을 만난다는 것부터요.

성신:피천득은 첫사랑 아사코를 만나고 나서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고 했지만, 조동진은 마지막 세 번째에도 만남을 아름답게 받아들이잖아.

선애:캬~~~ 이런 해석!!!

성신: 발표연도로 보면 <인연>은1973년이고 <제비꽃>이 1985년이거든. 그 12년 사이에 한국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법이 이렇게 진화했다는 생각도 들어. ㅋㅋ

선애:그럼 요즘의 한국 남자들은 어떻게 진화했을까요?

성신:음… 난 이거 같아. <내 꺼인 듯 내 꺼 아닌 내 꺼 같은 너>

선애:히야~ 정말 귀신같이 골라내시네요. 맞아요. 요즘 친구들은 그런 식으로 썸을 타죠.

성신:인류 역사상 가장 비겁한 형태의 사랑법이란 특징도 있는 듯.

선애:아이고 그러시다 돌 맞습니다. 사랑이 생기기 시작할 때의 설렘을 좀 더 오래 간직하고 싶은 거라고, 그렇게 긍정적이고 순수한 면도 봐주셔야 해요. 쌤~

성신:암튼 내 취향은 아니야. ㅋㅋ

선애:한눈에 반했다고 무턱대고 달려드는 것은 우리 눈에는 원시인처럼 보일 수 있어요. 무례하잖아요.

성신:그도 그렇네. 그럼 인정!

선애:쿨하기도 하셔라!

성신:옳은 이야기라면 나는 1초 수긍!ㅋㅋ 암튼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선애:또 무슨 책을 읽으셨기에?

성신:최근 한 소설을 읽었는데, 키워드가 이런 것들이야. 청춘, 열망, 불안, 좌절, 그리고 세월.

선애:왠지 굉장히 아름다운 작품일 것 같아요.

성신:내가 연휴 직전에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던 책 있지? 문영심 작가의 <세상 밖으로 부는 바람> 바로 그 작품이야.

선애:읽었어요. 그 책. 이 소설을 왜 읽어보라고 하셨는지 알겠더라고요. 저를 향한 선생님의 ‘격려’더군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선생님께 감사했어요.

성신:그렇게 읽어주었다니 나도 감사하네. 그런데 이 소설의 어떤 점이 선애에게 감동을 주었는가?

선애:‘뜨거운 열정으로 사는 사람은 과연 어떤 수준의 내면적 고통을 이겨내며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져주는 작품이었어요.

성신: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 진짜 소설이지.

선애:이 작품이 저에게 왜 큰 위로와 격려가 됐나 하면,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내면적 고통은 그저 잊거나 도피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겠다는 내 삶의 태도에 대한 대가, 즉 내 열정의 대가다. 그러니 고통을 피하지 말자. 고통과 좌절을 거름 삼아 더 성장하자!’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더라고요.

성신:정말 끝내주게 읽었군!

선애:이 소설이 저에게 던진 가장 중요한 것은 ‘끝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거죠. 우리는 보통 고통이나 좌절을 느끼면 그것을 빨리 끝낼 생각부터 하잖아요? 그런데 고통과 좌절 이후에도 인생은 계속되는 거니까, 계속 돼야 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끝없이 싸워야 한다는 것을,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며 깨달았어요.

성신:“살아 있는 동안에는 끝없이 싸워야한다.” 그렇지. 인간의 위대함은 승리가 아니라 끝이 없는 투지에 있는 것이겠지.

선애:1970~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여성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은 결코 소소하지 않아요. 굉장한 내면적 스케일이 있어요.

성신:이 작품이 자전적 성장소설이거든. 작가 본인의 이야기이기도 하지.

선애: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문영심 작가라는 분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어요.

성신:나는 실제로 만난 적이 있는데, 선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분이라는 것은 분명해.ㅎㅎ

선애:어떤 분이죠?

성신:김재규 평전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2013),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의 진실 <간첩의 탄생>(2014), 내란음모 조작사건의 진실 <이카로스의 감옥>(2016). 이 작품들이 문영심 작가의 주요 저서들인데, 이 책들 나온 연도를 한번 봐.ㅋㅋㅋㅋㅋ

선애:와~ 정말 물러섬이 없는 분이시군요.

성신:503정부와 결사적으로 맞짱을!

선애:<세상 밖으로 부는 바람>에서 자신이 던진 메시지 그대로 인생을 사는 분이네요.

성신:소설 속 주인공은 청춘 시절 자신의 열망을 다 이뤄내진 못했지만, 평생에 걸쳐 결국 단 한 발짝도 뒤로 물러서지 않잖아. 작가도 똑같더라고.

선애:질 수는 있지만, 또 못 가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도망가면 안 되는 거겠죠.

성신:나는 2013년부터 문영심 작가의 책들을 그때그때 읽어 왔는데, 그러면서 이분이 어떤 분인지 상상했거든. 그런데 내 예상이 정확했어! 이 소설 보니까 딱 알겠더라고. ㅋㅋ

선애:굉장히 순수하신 분이란 생각이 들어요.

성신:맞아. 순수한 사람만이 끝까지 싸울 수 있지. 순수하면 비겁하지 않아도 되거든.

선애:저도 순수해져야겠어요.

성신:‘좋은 비누를 써’라고, 이 시점에서 말하면 완전 아재개그지?

선애:네에~ 아재가 아재개그 하시니까 봐드릴게요. 그나저나 어떻게 해야 순수할 수 있을까요?

성신:욕망보다는 야망을 품고 살면 되지 않을까? 욕망은 무엇인가 ‘가지려는 마음’이라면, 야망은 넓은 곳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이잖아? 그러니 길을 만들며 걸어가면 되겠지.

선애:역시!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